종일 들어도 귀가 편한 빗소리, 우산 밖으로 내민 손끝에 닿는 비의 부드럽고 시원한 촉감, 창문에 또르르 떨어지는 귀여운 빗방울. 그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내 몸의 감각이 깨어난다.
모든 색깔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듯한 회색빛 하늘과 거리도 더욱 차분하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비가 오니 카페에 가야 한다.
커다란 창문이 있는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빗소리와 어우러지는 음악을 들으며 창 밖을 한참 바라본다.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거나 뛰어가는 사람들, 비에 온몸을 맡겨 촉촉해진 초록 나무들, 빗물이 모인 물웅덩이에 그려지는 다양한 크기의 동그란 파동을 한참 관찰한다. 분명 늘 지나다니는 길인데 다른 날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따뜻한 김이 나오는 캐머마일을 마시며 책을 읽다 어떤 문장앞에 멈춰 창밖을 보며 묵직한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맑은 날 카페에서의 즐기는 독서와는 다른 느낌이다.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해져 사람에 대한 애틋함과 미안함이 저절로 피어올라 성찰의 시간을 갖곤 한다.
유독 숲에 가고 싶은 날도 비가 한 차례 내린 날이다.
촉촉해진 숲은 맑은 날보다 더 싱그러운 공기를 뿜어낸다. 야들한 초록잎위에 앉아있는 빗방울이 영롱하게 빛난다. 비 옷을 입은 흙, 나무. 그리고 푸른 잎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