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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햇살 Mar 06. 2024

역할의 간극과 놀이동산

내가 경험한 문화 충격

십여 년 전.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행복할 거라는 착각 속에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 없을 때 즐겨. 아이 낳고 나면 상상도 못 할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라는 조언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쏟아졌다. 물론 귀 담아 듣지 않았다. 사람은 무엇이든 직접 겪어봐야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6개월간의  자유로웠던 신혼 시절. 더 마시고 놀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속에 늘 고여있다.

둘만 있었기에 꽁냥이 존재했던 그때. 짧은 반바지에 날씬하고 새초롬한 모습으로 하얀 콘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에버랜드 곳곳에서 남편이 찍어주었던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 내가 친근하지 않다. 아마도 지금의 모습과 너무 달라서일까.


아무튼 육아야 사실 말할 필요도 없이 영혼을 갈아 넣는 일이다 보니 아이를 낳기 전후의 삶은 차원이 다른 간극이 있다.

하지만 부모라는 새로 주어진 역할 속에서 실감했던 홑몸이었을 때와의 더 큰 차이는 아기띠를 하고 에버랜드에 둘이 아닌 셋이 함께 놀러 갔던 날 보고 느꼈던 장면에서였다.

아기와 함께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처음 가 본 유아 존.

수백 명의 나와 비슷한 또래 엄마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 놀이기구 앞에서 몇십 분이고 줄을 서 있던 모습이 생경했다. 자신들의 도파민이 아닌 오직 자식의 즐거움과 경험을 위해 느린 시간 속에서 인내하는 모습이 인상 적였다. 육아를 하며 자신의 것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부모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신선함이었다. 특정 무리 속에 있다 보니 유독 그들과 나에게서 부모만이 가질 수 있는 숭고한 희생과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처럼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던 얼굴. 탑승한 놀이기구 위에서조차 환하게 웃지 않는 그들을 바라보며 ‘저들도 나와 같이 생기 있는 연애도 하고 책임과 역할에서 벗어난 자유로움 속에 웃음꽃이 피던 시절이 있었겠지’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사회적 역할에서 오는 문화 차이가 유독 크게 다가 온 그날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한달매일글쓰기의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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