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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햇살 Mar 18. 2024

장난감과 책

기억에 남는 장난감

어린 시절 특별히 갖고 싶었던 장난감은 화려한 바비 인형을 제외하곤 없었다.

아이가 셋이었고 장난감을 사도 똑같은 걸 꼭 세 개씩 사야 했기에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상 장난감에 노출이 적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엄마가 돈을 아끼지 않으셨던 게 있었으니 바로 반짝반짝 빛이 났던 각종 전집이었다.

장난감은 몰라도 책은 아낌없이 사주신 덕분에 놀이나 숙제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늘 방 이리저리 늘어져있던 책들 사이에 엎드리고 누워 독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파란색 하드커버에 싸여있던 세계 명작 전집이었다.

책을 읽으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세계 곳곳, 하늘, 바다, 사막을 누비기도 하고 왕자나 공주가 되어보기도 했다. 상상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다른 차원으로의 신비한 여행을 하기도 했다.

하도 읽어서 책이 너덜너덜해진 덕분에 종류별, 출판사별로 책의 속지를 붙이고 엮는 방법이 다르다는 소소한 발견도 참 재미있었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공책이나 스케치북에 종일 앉아 그림을 따라 그리기도 했다.

한 날은 집에 엄마 지인분이 놀러 오셨는데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멀찌감치 보며 “애가 공부를 열심히 하네. 나중에 큰 사람이 되겠어.” 하시는 말을 들으며 머쓱해했던 나와 달리 슬며시 미소 지으시는 엄마의 표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책을 읽다 지겨우면 동생들과 책으로 의자, 징검다리를 만들며 역할극 놀이를 했다. 거기에 얇고 큰 이불과 봉제 인형, 소꿉놀이 장난감 몇 개 만 있으면 충분했다. 우리의 아지트를 만들어 그 안에 책으로 온갖 상상의 건물을 건축했다. 유럽의 성을 만들기도 했고, 전래 동화 속 초가집을 쌓아 올리며 놀이에 흠뻑 빠져 놀았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아이들의 비싸고 좋은 장난감이 부럽지 않았다.    

  

어린 시절 책은 나에게 늘 즐거운 놀이이고 상상이고 경험이었다.

동생들과의 소중한 시간이기도, 엄마의 사랑이기도 하다.

책은 내게 기억에 남는 장난감. 그 이상의 추억이다.   

 

Book and doors are the same thing.

You can open them and you go through into another world.

책은 문과 같다.

그것을 열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Jeanette Winterson



이미지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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