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활 중 썼던 노트들을 들춰보던 며칠 전 오후, 미래에 만날 연인을 상상하며 2014년 겨울에 썼던 글을 발견했다.
유학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이자, 타지에 홀로 서있음을 불현듯 느낄때의 선득함이었다. 아마도 모든 나홀로 유학생들이 겪을 그 감정.
‘날씨 좋은 일요일 산책을 하며 기분전환을 해봐’ 라는 선한 조언마저 가진자의 여유로 들리던 시기였다. 아마도 크리스마스 전후였겠지. 공휴일이나 명절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가장 가정적일 때고, 가족 없는 외국인들이 가장 외로워지는 시기다.
마주 보며 웃고, 손을 잡고 걸어가는 가족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 헤이그 시내 한복판에서, 타인과 타인 사이에 낀 나의 빈 공간이 마치 방망이처럼 나를 후려치는 것 같던 2014년 겨울. 그때 나는 내 방에 앉아 손바닥만한 노트에 이 대상 없는 러브레터를 쓰며 궁상맞게 훌쩍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러브레터는 마치 지금 내 곁의 M을 위해 쓰인것만 같다. 세상에 M이라는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그 때, 오로지 ‘언젠가 만날, 다만 걸음이 느려 만나지 못할 뿐인’ 그 한사람을 위해 썼던 짧은 노트. 한구절 한구절이 지금 내가 M을 보며 매일 아침 저녁에 느끼는 바로 그 감정이라, 네덜란드에 오기로 결정한 과거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잘 왔고, 잘 버텼다고.
언젠가 M이 한국어를 막힘없이 이해하게 될 때, 이걸 읽어주면 어떤 얼굴을 할까.
너를 웃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싶어.
내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게 해주고싶어.
네 눈웃음이 너무 예뻐서 너를 계속 웃게 만들어주고 싶어.
얼마나 좋을까, 네가 내 손을 잡아준다면.
네 어깨에 가만히 고개를 기대고 있으면.
네가 나에게 눈을 맞추고 너의 숨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면, 침묵마저 벅차고 설레어서 나는 네 목을 껴안아버릴꺼야.
저녁길을 너와 함께 걷고싶어.
길을 걷는 다른 가족 다른 연인들을 부러워하며
창문에 낯익은 고향의 풍경과 나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비치는 헛된 소망을 품고, 막막하게 고개를 돌리는게 아니라.
네 손을 잡고싶어.
내 빈 손에 무언가를 채워넣을 수 있다면,
그건 돈이나 명예나 성공이 아니라
그냥 네 손이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