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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불 Nov 03. 2023

중국 드라마에 접속되셨습니다

완벽한 중국드라마 초이스를 위한 기본적 소양 1

박카스 열 병에 우루사를 한 움큼 집어 먹은 것같이 아드레날린이 폭발했고 가슴속에서는 폭죽이 터졌다. 그렇게 첫 번째 드라마를 보내고 다시 하이에나가 되었다. 진한 여운을 잊지 못해 가슴을 부여잡고 여기저기를 기웃댔다. 중드는 티빙이 원탑이라고 하는 말을 어디서 주워듣고는 당장 티빙에 ‘내 돈을 받아주세요’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그곳은 신세계 혹은 보물창고.

    

많은 중드들이 서로 자기를 보라며 유혹의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이미 첫 번째 성공으로 한껏 솟은 어깨를 가진 중드 전문가가 아닌가. 이번 선택도 틀리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나의 첫 드라마 ‘삼생삼세 십리도화’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드라마를 고를 생각에 신중하고 찬찬한 눈으로 작품들을 훑었다. 음…. 일단 옷이 길고, 머리가 치렁치렁 그리고 뭐든지 가능한 내공.  

   

평소라면 일에 치여 언감생심 드라마는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시절이 아닌가. 합법적으로 쉬고 있는 나의 일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 학교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신이 주신 그런 기회의 날들이었다. 호기심에 못 이겨 다음 회차 다음 회차를 누르며 하얗게 세는 날을 본다 해도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틈틈이 계속 시청이 가능한 것 아닌가! 아이들은 줌 수업. 나는 중드 수업. 밥을 챙겨주며 나의 본분을 완전히 잊지 않았으니 그렇게 ‘나쁜 엄마’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침내 신중히 결정된 나의 픽. “쌍세총비”

먼저 본 사람들의 평으로는 ‘병맛 로맨스’라 했다. 병맛 로맨스라…. 로맨스면 로맨스지 병맛은 무엇일까?

호기심을 가득 담아 포스터를 보니 내 기준과도 얼추 맞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작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제목이 거슬렸다. 왜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았을까. 이게 바로 대륙의 자신감인가. 쓸데없이 시간을 끌며 구시렁댔다. 마침내 시작 버튼을 눌렀다.

     

사람들의 평이 정확했다. 그 말만 보고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딱 1화를 보고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확한 어휘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병맛 로맨스’라고 표현한 사람에게 궁디팡팡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첫 화면을 가득 채운 남주와 여주. 남주의 작은 눈은 마치 뒤로 팽팽히 당긴 듯 눈꼬리가 한껏 올라가 있었고, 아무 이유 없이 가상의 세계에 타임슬립을 한 여주는 그곳에서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게 된다.


쌍세총비 4화 티빙 직접 캡처_이 둘은 무려 남자다


딱 1화를 봤는데 이게 정말 사람들이 보라고 만든 드라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의 전개가 의식의 흐름 혹은 아무말 대잔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겨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난 중드 좀 볼 줄 아는 여자였으니까.


하지만, 회차가 진행될수록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예산의 문제인 건지 그들의 복식과 소품이었다. 우리 아들 유치원 재롱잔치에도 입히지 못하게 생긴 색깔과 스타일의 옷. 그리고 화면에 보이는 소품들. 정말 이게 최선인가. 보는 내내 창피함이 느껴지는 건 감독 대신 내가 느껴야 한단 말인가.


나와의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저 근거 없이 보여지는 드라마에 대해 나 스스로 이유를 가져다 붙여야 아이들도 팽개치고 '그런걸' 보고 있는 자신에 대해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시 시작된 ‘매직’. 한껏 치켜뜬 눈을 가진 남주는 갑자기 잘생겨 보이기 시작했고, 병맛 같던 내용이 흥미진진하게 가슴을 후려쳤다. ‘그렇지, 저거지’를 연신 외치며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18편을 하루 반나절 만에 클리어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구나.  


쌍세총비 3화 티빙 직접 캡처_남자 주인공이 멋져 보기이 시작했다

   

두 번째 작품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중드를 보기 위해서는 정신을 살짝 놓고 흐린 눈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드라마처럼 디테일이 강하고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는 한순간도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되지만, 중드는 그 반대라는 것을 말이다.     


왜 그랬을까. 듬성듬성한 서사에 말도 안 되는 설정, 조잡한 배경과 소품들. 나는 왜 그런 중드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을까?     


중년에 접어든 나는 나의 일과 남편의 일, 그리고 아이들을 건사하며 누구도 잘했다고 인정해 주지 않는, 어른이면 응당 해야 하는 그런 매일을 버티고 있었다. 가정을 꾸리고 이만큼 살아오며 힘든 일도 있었고 행복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다가올 내일도 힘들거나 혹은 행복하거나 그런 날들의 연속일 것이다. 어른으로서 잘 책임져야 하는 그런. 나는 현실에 대한 의무감과 미래에 대한 염려 속에 또 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너무 완벽한 흐름과 잘 짜인 스토리는 왠지 피로감을 주었다. 잠시나마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사진 출처_티빙(나는 저 황금 모자를 용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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