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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람 Jul 18. 2024

감정의 우선순위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다. 그래서 내 감정 변화에 무책임해지지 않기 위해 숨 쉴 때마다 나 자신을 성찰해 왔다.


 

'이것은 온전한 나의 기분인가?'

'남이 만들어낸 기분인가?'

'혹시 학습된 기분인가?'

'나는 지금 이 기분을 느껴야 마땅한가?'



내가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면 상대방은 정당한 수준의 화를 낸다. 나는 이에 응당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줄곧 그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분노'한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상처를 받고 있다는 억울함. 다른 이에게 꼼짝없이 고개를 숙이고 혼이 나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부끄러움. 이전까지도 괜찮았던 나의 기분을 망쳤다는 원망. 이 불썽사나운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어 마음이 들끓는 데에 대한 혼란스러움. 그야말로 '근본 없는 감정'이다.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이 상황에서 올바르지 못한 감정이라는 것만은 확실한 지금. 나는 또 한 번 성찰을 한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자존심을 세워 상대방에게 내 의견만을 고집하고 있지 않은지, 자존심을 굽히지 못해 상대방에게 도리어 성을 내고 나쁜 말을 돌려주고 있진 않은지. 사람이라면 자존심이 나설 때와 나서면 안 될 때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그 교묘한 간극 사이에서 자존심 하나를 잣대로 판단하지는 않아야 한다. 감정과 이성 그 둘 중 무엇이 앞서냐의 문제가 아니다.



앞의 상황에서 내가 느꼈던 '분노'라는 감정은 '자존심'을 내세운 우선순위 밖의 감정에 불과하다. 그 말인즉, 분노는 내가 잘못한 게 분명한 이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나와서는 안 되는 감정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분노가 먼저 튀어나온다면 아마도 이는 학습된 감정일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나를 공격했다'는 생각에 오직 분노하여 험한 말과 자기주장만을 내뱉고 불통하는 모습. 어디서 많이 본모습이 아닌가. 사람은 자신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학습된 경우일 때가 많다. 분노는 정당한 수준의 상대방의 반응이라는 전제 조건 하에서는 불필요하고도 변조된 감정이다. 따라서 자존심을 세워서 득이 될 상황인지 세울 필요가 없는 상황인지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감정을 조절하고 인정하는 일은 그 감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해도 어려운 일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은 남에게 상처를 입힐 의도가 없는 자신의 실수에 책임을 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직시하고 충분히 소화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빗나갈 수 있는 비수들을 상대방에게 내다 꽂아서는 안 된다. 분노가 튀어나오려거든 입을 꼭 다물어야 한다. 그러나 불통하겠다는 의사를 알리기 위한 입다물기는 위험하다. 나의 잔재를 수용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양분으로 쓸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두 걸음 나아갔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뻔한 탓에 한 걸음 뒤쳐진다. 그럼에도 다시 반 걸음을 나아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감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올바르게 감정을 소화하는 것. 오늘도 매 순간 삶을 통해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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