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일탈
집 밥
내게 집 밥은 일상의 상징과도 같다. 이에 반하여 외식은 일탈의 의미를 갖는다.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대학 입학 전까지, 그러니까 20세기말까지 매일 먹던 그 당시의 나는 집 밥을 지겨워하기만 했다. 늘 똑같은 반찬과 똑같은 국 혹은 찌개, 혹은 매일 카레를 먹던지 매일 곰국을 먹던지 하는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알지도 그 사랑에 감사하지도 못했다. 철없던 나는 나의 불평이 합리적이라 믿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집 밥과 별 다름없는 학생식당 밥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야식으로 시켜 먹던 치킨, 혹은 통집에 가서 배를 채우던 술안주들이 내겐 삶의 큰 위안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입대하여 밀레니엄에 이르던 2000년도까지 군생활을 2년 2개월 할 때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밥을 먹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활은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이십 대 중반까지 나는 ‘집 밥’에 매여 살았던 것이다.
대학원생이 되고 쥐꼬리만 하지만 월급이란 걸 받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중고등학생들 수학이나 과학이나 영어 과외를 해서 매달 용돈을 스스로 벌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내가 ‘집 밥’에서 탈출했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외식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것도 몇 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2년 뒤 미국으로 가서 11년간 살게 된다. 미국 식당은 한국 식당에 비해 가격이 두 배 정도 하고 팁까지 줘야 하므로 어지간해선 외식을 할 수 없었다. 한국 음식조차 귀한 그곳에서 나는 다시 집 밥에 매여 살아야 했다.
귀국 후 드디어 한국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년간 정말 많은 음식을 섭렵했다. 궁금했던 음식들을 탐닉했다. 고혈압 환자라 양을 조절해야 했지만, 과식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음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그리고 신기하게도 요즈음 직장에서 점심 식사는 집 밥 느낌의 식당에서 해결한다. 구내식당은 옛날 학생식당을 떠올리게 해서 가급적 피하고 있다.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무한리필 한정식 집이 있는데, 반찬 여섯 가지에 밥과 국 혹은 찌개가 항상 나온다. 제육볶음이나 갈비, 닭볶음탕 등이 자주 나오는데 꽤 먹을 만하다. 가격도 착한데 무려 7,500이다. 이 정도면 가성비까지 좋은 훌륭한 점심식사인 것이다.
왜 나는 다시 집 밥으로 회귀하게 되었을까? 어릴 적 엄마가 해 준 밥이 그리워서일까? 그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특식이 더 이상 특식으로 느껴지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싶다. 맛있는 특식도 가끔 먹어야 제맛이지 않겠는가. 이 간단한 진리를 나는 마흔 후반에 깨닫게 된 것이다. 아, 이 미련함이라니.
일주일에 서너 번은 7,500원짜리 집 밥을 먹고, 한두 번은 근처 다른 식당에서 만 원 언저리의 김치찌개나 국밥 등을 먹는다. 이젠 이게 너무나 당연해졌다. 그랬더니 뭘 먹을까, 하는 고민에서 많이 해방되었다.
일상의 의미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다. 빛바랜 것들의 존재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백과도 같은 시간들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다시 감사하게 된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집 밥에서 만족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새 나는 특식을 기다리기 위한 마음이 아니라 집 밥을 맛있게 먹는 순간들을 즐기게 된 것이다. 가난했던 대학, 대학원생 시절보다 경제적 여유는 늘었지만 오히려 집 밥 먹는 것에서 삶의 안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인생 참 재미있다.
#오블완_티스토리챌린지_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