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나무 May 13. 2022

04. 대장 나무

프로젝트 [런던이라서, 그러나]



얼마 전, 그에 관한 기사가 떴다. 맙소사. 그가 무려 3년 만에 뮤지컬로 컴백을 한다고. 3년 동안 활동을 하지 못했던 건 소속사와의 문제 때문이었고, 이제는 그곳에서 나와 최선의 해결방법을 찾고 있다고. 무엇보다 팬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그 기사를 본 나무들은 아마 나처럼 그의 이름을 아련하게 읊조리지 않았을까. '대장...' 하고 말이다. 그렇다, 팬이라면 그를 이름 대신 '대장'이라고 부르는 가수. 그는 박효신이다. 


가수 활동 20년이 훨씬 넘은 그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고 유명한지, 그의 대표곡들은 무엇인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우리나라 노래짱(?) 남자가수 '김나박이'에서 '박'을 담당하는 그이니까, 말해 뭐해. 그래도 하나만 덧붙여 소개하자면, 3만 명이 훌쩍 넘는 그의 팬클럽 공식 이름은 '소울 트리'라는 것. 이곳에선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무'라고 지칭하며, 박효신은 나무들 중의 대장이어서, '대장 나무' 혹은 '대장'이라고 불린다는 것. 조금 쑥스럽지만 나도 내 이름 뒤에 '나무'를 붙이고, 그를 대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에 하나다. 




내가 아름나무가 된 건, 2016년 중요한 시험을 마치고 예기치 못한 번아웃을 겪던 그해 가을이었다. 삶의 공허와 무기력에 힘겨웠던 그때, 나는 그의 콘서트 티켓을 운 좋게 얻게 되었고, (돌이켜보니 진짜 운이 너무 좋았다.) 아무 기대 없이 공연장으로 향했다. '거기 가면 야생화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겠다' 딱 그 정도였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던 기대감. 설렘.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뜨거워졌던 그곳의 열기. 팬들의 함성. 어린 왕자 같던 그의 모습. 가수는 노래에 집중하고, 팬은 그의 소리에 집중하던 순간순간들. 그리고 그가 콘서트에서 전달하던 메시지. 공연이 끝나고 인파에 파묻혀 그곳을 빠져나오던 그날 밤, 나는 그때 번아웃을 떨궈냈고, 이 가수에게 폭 빠지게 되었다. 


콘서트 후유증이겠거니 했던 나의 덕질(?)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는데, 그 이유가 분명했다. 처음엔 말할 것도 없이 그의 피지컬과 다정한 말투, 팬들에 대한 사랑, 노래할 때의 멋짐 폭발(?) 등이 이유였다. 그런데 좀 더 검색해보니, 뭐야 이 사람, 왜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거야. 그는 그냥 가수가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가수고, 더 나아가 그것으로 음악을 지어내는 아티스트였던 것이다. 천재가 노력을 하면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사람. 데뷔 후, 창법도 여러 번 바꿀 정도로 음악에, 그러니까 자기만의 것에 몰입하는 사람. 속으로 삼킨 아픔들은 얼마나 많았던 건지 그는 '야생화'를 부를 때마다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 그는 여리지만 연약하지 않은 사람. 애처롭게 피어나 거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결코 쉽게 시들지 않는, 눈물이 거름이 되어 기어코 자라나는, 그런 야생화이다. 



이 야생화를 향해 불타던 팬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사그라들었지만 마음 한편엔 항상 그를 향한 응원의 불빛을 은은하게 켜놓고 지내왔다. 분명 그랬는데. 몇 달 전 그 은은하던 불빛이 더 따뜻하게, 아주 갑자기, 이곳 런던에서 지펴졌다. 그때는 지난 학기가 한창 바쁘게 돌아가던 즘이었고,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힘에 부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만 연속적으로 늘어지던 날들. 응원이 필요했던 나날들. 이럴 때면 전에도 그랬듯이 어김없이 대장의 노래를 듣는다. 그런데 웬걸, 음악만 들을 줄 알았던 내가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이번엔 '멜론'에서 '유튜브'로 넘어가 있었다. 역시 대장은 라이브 영상이지. 그중 내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은 건, 2019년 여름 Lovers Concert 영상이었다. 

콘서트 첫 공연 날, 대장은 공연이 시작되기 1시간 전에 신곡을 하나 발매했는데 곡의 이름이 공연 타이틀과 같았다. 바로 '연인'. 콘서트는 'Where is your lover?'라는 문구와 함께 그가 '연인'을 부르면서 시작되고, 나중엔 팬들과 다 함께 그 곡의 후렴구를 부르면서 끝이 난다. 

오 나의 사랑아 내 연인아 넌 나의 기쁨이야. 

대장이 전하려던 메시지는 단순 명쾌했다. 우리가 서로에게 연인이 되면 좋겠다고. 남녀가 사랑하는 그 연인을 넘어서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따뜻한 사이었으면 좋겠다고. 결국 그는 이 곡도 팬을 위해 쓴 것이었다. 

'여러분이 저의 연인이에요, 오늘 저의 연인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마지막 고백에 팬들은 자연스럽게 연인의 후렴구로 화답을 했고, 그는 그 순간 감동하고 행복해했다. 콘서트 후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사랑이 가득했다고. 너무 따뜻했다고. 공연장을 나오면서 모두가 연인을 불렀다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눈물이 자꾸 났다고. 나의 불타던 팬심이 조금 사그라져있을 동안, 그는 그의 아픔에서 더 벗어나 위로와 사랑을 전하고 있었구나. 그를 향한 내 마음의 온도는 더 따끈해졌고, 나는 그렇게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지나갈 동안 그의 노래를 들으며 과제를 하고, 학교를 다녀오고, 밥을 먹고, 청소를 했다. 그리고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힘을 내었다. 그는 알까. 런던에 그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하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걸.   



'I'm your friend'라는 곡에선 그는 나무들에게 이런 말을 남겨놓았다. 


'이 노래를 부를 때
넌 나보다 키가 큰 나무가 돼 줄래' 


나는 '연인'의 브릿지로 이곳에 답을 남겨두고 싶다. 

너의 그 슬픔과 기나긴 외로움에는 모든 이유가 있다는 걸
너의 그 이유가 세상을 바꿔갈 빛이라는 걸


오랜만에 뜬 기사에 대장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곳곳에서 공연 포스터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Ed sheeran과 Corinne Bailey Rae와 2 Cellos가 공연을 한단다. 포스터 앞에서 공연을 예매할까 잠시 망설이다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대장이 8집 앨범을 내고, 콘서트를 여는 상상. 그러면 난? 아마 바로 티켓을 예매하고 한국에 갈 테지. 좀 더 주책맞게 그곳에 가는 상상까지 해본다. 아마 나무들과 대장 나무는 눈물을 뚝뚝 흘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연인'의 2절 가사처럼, 서로를 바라볼 것이다. 


쉽게 위로하지 않고

서둘러 웃지 않아도

고요히 물드는

눈빛으로 알 수 있는 

이렇게 너와 나 아마도 우리는   


연인



작가의 이전글 03. 한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