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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Aug 20. 2022

그 반석 위에 지어져라, 나의 인생아.

Be built on the rock, my life!



  금식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 지난 6월이었다. 당시 내 속은 런던에서 가장 시끄럽게 들리는 앰뷸런스보다 더 했다. 시기, 질투, 자기비판, 비난, 죄책감, 그리고 수치심. 온갖 안 좋은 것들이 내 안을 찔렀고, 그래서 몸도 종종 아팠다. 자주 피곤했고, 쉽게 탈이 났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던 건, 4개월 동안 하지 않던 월경 때문이었다. 그때,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니, 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말아 달라고.

어렸을 때부터 크리스천이었던 게 이런 때에 드러나는 것 같다. 기왕 먹지 않는 거, 금식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으니까.  오랜만에 금식이라니, 간직하고 있던 좋은 추억이 떠올라 이거 꽤나 설레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 고향교회에서 매년 했던 전교인 3일 금식. 뭣도 모르고 참여했다가 경험했던 유익한 시간. 이 영혼의 디톡스를 또 할 생각을 왜 못했을까? 몇 번의 고난이 내 삶을 덮쳐왔을 때도 금식을 하진 않았는데, 정작 내 마음이 시끄러워 이것을 결심한 게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끊어내야 할 것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나 보다.

금식 전 날이었던 그 달 주일, 예배를 드리며 나는 주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죽겠다고, 나 자신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날, 성령의 바람이 내 안에 불었다.(그날은 하필 오순절이었고, 예배는 사람들의 기도로 뜨거웠다. 나는 그들의 덕을 본 것 같다.) 마치 금식에 대한 티저(Teaser)처럼 성령은 내게 이런 감동을 주셨다.   


“아름, 너를 괴롭히는 바늘을 바로 잡아 아름다운 수를 놓아보렴.”

바늘 때문에 괴롭다, 살려달라 외치던 내 기도에 주님은 당신이 직접 그 바늘을 치운다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단호하셨다. 너는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그리고 너는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든 채, 그 감동을 마음에 품고 금식에 들어갔다. 플래너에 야심 차게 월요일부터 수요일은 금식, 목요일부터 토요일은 보식 기간을 적고.


True freedom, 2019


당찬 포부로 시작했던 이 3일 금식은 부끄럽지만 하루 반으로 끝이 났다. (부끄럽지만 너무 배가 고파 쓰러질 것 같았다.) 3일을 채우지 못해 아쉬웠지만 하루 반의 금식도 내겐 충분했다. SNS와 다른 영상들을 다 차단하고, 계속 찬양과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었던 나의 40시간. 생각해보니 세상 소음을 차단하고 하늘의 소리에만 집중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내 영혼의 주파수는 얼마나 희미했던 걸까. 역시 금식은 영혼육의 디톡스. 나를 괴롭히던 바늘도, 그리고 옭아매던 사슬도 힘을 잃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6)

맞다. 주님은 우리에게 결박을 풀고 멍에의 줄을 끊어낼 수 있는 무기를 주셨다. 어찌나 강력했는지 이 짧은 금식을 끝낸 후, 내 몸과 마음은 가벼워졌고, 월경도 바로 시작했다. 그리고 주님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셨다. 바늘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 훈련.


With you, 2019


‘감사 제목 10가지 적기. 하루에 3가지 나를 칭찬하기. 그리고 운동하기.’

해 질 녘, 집 앞 공원에서 걷거나 뛰고, 매일 밤 그날 감사한 것들 10가지와 나를 향한 칭찬 3가지를 적었다. 이 하늘나라 퍼스널 트레이닝으로 나의 6월은 유독 즐겁게 치열했다. 노트에 모든 것을 다 쏟아낸 바람에 그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이 훈련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바늘은 나쁜 게 아니라 내가 사용할 ‘도구'라고. 시간이 흘러 8월. 지금도 가끔 손에 쥐고 있던 이 도구를 놓칠 때가 있다. 그것은 전처럼 나를 찌르려고 하지만 이젠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얼른 다시 쥘 수 있도록, 열심히 바늘을 잡는 훈련에 임한다. 매일을 기록하고, 감사하고, 나를 칭찬하고, 몸을 가뿐히 움직이면서. 아직 어떤 수를 놓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차차 진행이 되겠지, 나의 주인이 세워둔 계획 안에.


나는 집, 예수님은 이 집의 목수이자 반석. 우당탕탕 집은 간혹 시끄럽지만, 이 집이 반석 위에 지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위에서 굳건해질 테다. 사실 집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전혀 가늠이 안되지만 한 가지는 안다. 모든 것은 목수의 손안에 달려있으니 그저 목수를 바라보고 의지하면 된다는 것. 방법이라면 그것이 방법일 텐다. 이런 믿음은 조금씩 자라나고, 집은 더 깊이 뿌리를 내릴 것이다. 목수는 그 집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웃는다. 그리고 어김없이 일을 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upon the rock, 2019


/

Let your roots grow down into him, and let your lives be built on him.
Then your faith will grow strong in the truth you were taught,
And you will overflow with thankfulness.
Don’t let anyone capture you with empty philosophies and
High-sounding nonsense that come from human thinking
And from the spiritual powers of this world, rather than from Christ.

골로새서 2:6-8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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