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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Apr 22. 2024

된장국과 계란프라이



팬데믹이 지나고 영국은 오피스근무와 재택근무를 섞은 하이브리드 근무가 흔해졌고, 감사하게도 나도 이 호사를 누리고 있다. 5일 중 하루는 오피스에 가고, 4일은 집에서 일한 지도 어느덧 6개월. 팬데믹 전엔 어떻게 매일 출근을 하며 살았을까, 싶을 만큼 나는 이 근무방식에 완전히 적응을 해버렸다.


내가 재택근무를 하는 방식은 간단히 쓰자면 이렇다. 보통 아침식사를 하며 잠을 깨운 후, 9시에서 9시 반쯤부터 일을 시작하고 12시즘에 점심시간. 점심시간 후에 오후 근무를 또 연이어한 후, 운동하러 나가면서 자체 퇴근. 여기서 생겨난 습관이 있다. 바로 점심시간 사용하는 방식인데 1시간을 어떻게든 더 알차게 쉬고 싶어 하루 이틀 전에 미리 점심 메뉴를 정하고 만들어두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카레가 먹고 싶으면 전날 저녁에 2-3인분 정도 만들어두는 식. 그다음 날 냉장고에서 꺼내 덥히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간편하지.


며칠 전에도 그랬다. 전날 저녁에 채소 잔뜩 넣어 끓인 된장국을 그릇에 덜어 전자레인지에 3분 돌리니 금세 국 완성. 갓 지은 밥과 조미김, 김치, 화룡점정은 계란프라이. 식사차리는 시간이 5분이면 되니 이렇게 효율적일 수가 없다.


김 위에 밥과 계란프라이를 적당히 올려 먹고 된장국 한술 뜨니 이보다 더 근본인 한식이 있나? 너무 완벽해! 가만 보자 국을 한 술 더 뜨니 와, 이거 마음을 달래주는 맛 아니야? 혼자 난리를 떨었다.



국 한 술 더 떠 호로록 마시니 불현듯 고등학생 때가 생각났다. 열여덟.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난 타이트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여느 고등학생답게 7시 반쯤에 집에서 나와야 했고, 셔틀버스를 타야 지각을 면할 수가 있었다.


 시절 아침은  졸리고 분주했다. 쓰다 보니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지독하게  일어나는 나를 깨우던 날카롭던 엄마의 목소리, 겨우 일어나 갈아입던 남색 교복과 대충 두른 넥타이. 나를 깨우던 엄마의 원두커피 . 그런 나를 매일 반가워하며 궁둥이를 씰룩거리던,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우리 강아지들.


“셔틀 오기 전에 얼른 먹어. “


셔틀버스 오기까지 남은 시간 10분. 그 시절 엄마가 자주 건네준 아침밥은 엄마표 된장국과 밥, 그리고 계란프라이였다. 시간이 촉박한 그 와중에 먹는 밥은 왜 그렇게 달던지. 된장국과 계란프라이의 발란스는 또 어찌나 좋던지, 너무 맛있어서 밥을 두 그릇 먹다 셔틀버스를 놓친 적도 있었다.


그랬던 열여덟 소녀가 타국에서 스스로 된장국을 끓여 먹는 어른이 되었다. 된장국은 항상 그 열여덟의 기억을 상기시켜 준다. 나의 뿌리는 샌드위치와 수프가 아니라 채소된장국과 밥이라는 걸, 한식을 해 먹을 때마다 마음에 되새기며 열여덟의 그 소녀가 이렇게 자란 것도 신기하고… 그리고 엄마가 떠오른다.


혼자 고군분투하며 내 인생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열여덟 때 엄마는 몇 살이었지? 겨우 마흔셋. 너무 젊다……. 당신도 분주히 출근 준비를 하면서 잠에 취한 자식을 깨우고, 그 자식의 아침을 챙겨주는 마흔셋의 일상. 그때 엄마도 나처럼 전날 저녁에 된장국을 미리 끓여놓았을까? 나처럼 미리 메뉴를 고민하며 장을 봤을까? 애호박이 비쌀 땐 된장국 말고 김치찌개를 끓였을까?


엄마는 항상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안 줬다고만 생각했는데 문득 된장국을 먹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감히 생각지도 못할, 느끼지 못할 엄마의 사랑이 구석구석 있을 거라고. 열여덟의 아침식사를 늘 챙겨주던 마흔셋의 날들처럼.


어린 자신을 지탱해 주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사람은 그렇게 혼자 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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