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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 Marine Aug 22. 2023

전자결재가 주는 사직서의 무게를 실감하다

[2화. 마침표_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INTRO]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결국 퇴사를 하자!! 마음을 굳히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아쉽지만 마음먹었다고 바로 당장 결재를 올려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퇴사를 하기 위해서는 간결하면서도 복잡한 '결재'라는 절차가 필요했고, 최종적으로 대표이사님에게 사인을 받기까지 또 적게는 몇 주, 길게는 몇 개월이 걸릴지도 아무도 알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냈다.


회사의 규모가 조금만 커져도 관리해야 하는 임직원의 수는 수천수만 명에 이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간결해진 전자 결재 시스템을 활용해 효율성 있게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다. 퇴사자들도 메뉴얼에 맞게 전산으로 다 관리되어 있었지만 이렇게 간결해진 시스템이라고 해도 그 결재라인에 사인을 해야 하는 임원들을 모두 만나 한 단계 한 단계를 넘는 대면 과정이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담당임원(상무)에서부터 담당본부장(전무), 담당파트장(사장), 대표이사님까지 모두 사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 간결하지만 전자결제가 주는 사직서의 무게를 실감했고, 약 2달간의 길고 긴 시간 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만 비로소 회사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다.



퇴사절차 ; 전자결제시스템

1. 담당임원(상무) : 인수인계에 필요한 모든 사인을 받아야 하는 사람 지정

입사를 하게 되면 많은 물품을 지급받는다. 데스크톱 본체와 모니터 2개, 키보드, 마우스를 설치해 주시며 받은 물품에 대한 책임 사인을 제출하게 되어있다. 퇴사할 때 마찬가지로 지급받은 물품을 전산 관련 부서에 반납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업무상 주고받았던 모든 메일과 기록 등의 자료들을 USB에 넣고, 프로젝트와 관련된 내용과 담당직원 협력업체 등 모든 기록들을 작성해서 전달을 하고 결제를 받아서 첨부파일로 결재를 올려야 하는 과정을 거쳤다. 담당 PM으로써 관리하고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있기에 여러 차례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했다.


2. 담당본부장(전무) : 최종적으로 인수인계 확인 후 퇴사 결정에 가장 첫 번째 결재자

내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10년간 몸담았던 직전 회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전무님이다. 직전 회사를 너무 오래 다녔던 걸까? 대부분의 디자인을 이끌어가셨던 사람들이 퇴사하여 조직과 경쟁력 등등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에게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갈증이 있었고, 전무님이 본부장으로 이직하시고 종종 식사자리를 가지며 좀 더 좋은 디자인을 해보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동종업계, 경쟁업체 였지만 좋은 이직조건을 받게 되어 결심해던 것 같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보니 면담의 시간이 상당히 많이 소요되었다. 업무시간 외 사적인 자리까지 포함하여 2-3주가량의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대화를 통해서 결국 최종사인을 받았지만, 나에게는 항상 고마운 선배님이자 힘이 되어주시는 분 이셨다. 개인적인 힘든 나의 상황과 조직이 가려는 방향성과 맞지 않는 걸 본인을 포함하여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다음으로 펼쳐지는 나의 인생에 더 나은 길을 이끌어 주고 싶어 함께 고민을 해주시기도 하셨다.


3. 담당파트장(사장) : 실제로 파트 전체를 총괄하시기 때문에 나의 퇴사에 실질적인 최종 결정 결제자

이직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전무님과 처음으로 파트장님 방에서 인사를 하고 면담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나의 이력서를 보시고 새롭게 시작하는 조직에 실무를 이끌어갈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해주셨던 기억이 있고, 이력서만 보아도 건축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고도 해주셨다. 밀접하게 나와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가에서도 최고점의 평가를 해주시기도 하셨고, 조직이 가려는 큰 방향을 말씀해 주시며 내가 하는 디자인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고 할 수 있게 해 주신 분이셨다.


나의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많은 부분에 대해서 시간적 제약을 다 허용해 주시겠다고 하셨고, 휴직을 통해서 해결하고 복귀하는 게 어떠냐는 말씀도 해주셨고, 새로운 조직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이미 마음이 많이 정리된 상태였기 때문에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였고 2주간의 긴 시간 동안 면담을 하면서 결국 의사를 존중해 주신다고 하시며 결제를 해주셨다. 개인적으로 법적인 일과 마음을 치유하면 자리를 비워두고 뽑지 않을 테니 다시 재 입사한다는 약속을 지켜달라고 꼭 당부하셨다.


4. 대표이사님 : 모든 행정적인 종료를 마무리하는 최종 결재자

나는 임원으로 입사를 한 게 아니기 때문에 나와는 큰 인연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이직을 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여러 가지 조건들을 몇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쳐가며 모두 수락해 주셨고, 항상 디자인 회의에 들어가면 회사가 나아가고자 했던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인사이트를 주셨던 멋진 건축가라고 기억이 될 것 같다. 면담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다행히 큰 어려움 없이 바로 결재를 해주셔서 빠르게 마무리해 주셨다.


퇴사를 해본 모든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직서 한 장을 받기 위해서 결제하는 시스템이 어려운 게 아니라 사람과의 인연을 마무리해야 하고 여러 가지로 마음 쓰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퇴사가 참 쉽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는 퇴사라는 게 참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각자가 느끼는 퇴사라는 시간의 무게는 다르지만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에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여전히 함께 했으면 하는 몇몇 선/후배들이 있기에 '사직서'라는 종이 하나에 불과하지만 나에게는 많은 상황과 감정이 섞여있는 아주 무거운 결재서류였다.



NOTE
사직서가 회사와 내가 끝을 말하는 마지막 서류이지만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동료분들과 인연이 되었던 분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알게 해 준 값진 서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사직서를 쓰고 난 후에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무거운 마음을 이제는 벗어버리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이루어 나가실 분들과 함께 마무리를 하는 과정에 대해서 나누고 싶은 글이었습니다. 작은 공감이 되셨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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