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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수 Nov 06. 2020

예상치 못한 조합

계절이 바뀌기 전에 얼굴 한 번 보자


자주 만나는 대학 동기들이 있다. 동기라는 단어보다는 친구라는 단어로 그들을 칭하고 싶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한참이고, 따지고 보면 한 명은 우리보다 한 학번 높은 선배이다, 예술대학에서 선배는 깍듯하게 모시는 이쯤이면 친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한번도 그냥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친한 친구들이 누구야, 라는 물음에 그들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종종 내 글도 읽는거 같은데, 나인가? 라고 생각이 들면, 응 그게 바로 너희들이야.


나의 대학 4년 내내 짝꿍 K. 인원이 많지 않은 학과였고, 여자들이 많아 여고를 졸업한 나는 지겹게 또 여대를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역시나 재미지고 그만큼 탈도 많았던 4년. 입학식에 신입생이 다 모여있는데 학번이 뒷번호인 나와 K는 어떨결에 인사를 했다. 예쁘장하기로 유명했던 그녀. 그 후에도 뒷번호라는 이유로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솔직히 언제 그녀와 친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지하철로 통학을 한다는 것이 우리가 친해진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처음엔 반반한 얼굴만큼 깍쟁이같은 성격일거라 생각했지만, 요즘 예쁜 애들은 왜 얼굴도 예쁜데 성격까지 좋은지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 그녀를 볼 때마다 왜 쟤는 예쁜데 성격까지 좋고, 정말 열심히 살기까지 한다. 비유를 하자면 전날 새벽까지 술마시고 그 다음날 혼자 멀쩡하게 9시 정각에 출근하는 그런 스타일. 하지만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그녀를 한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세상 누구보다 긍정적인 사람. 물론 스스로는 긍정적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고, 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 그녀는 가장 긍정적인 사람이다.

2014년, 우린 우연하게도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었다. 이런 곳에서 만나면 더 반가우니 약속을 잡고 만나러 가려는데, 약속 당일 만날 장소를 정하려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여행이란게 다 계획이 틀어지고 그러는 거겠지, 라며 그녀와 만나지 못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바로 그녀였다! 핸드폰을 잃어버려 친구 전화로 나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이런 극진한 정성까지 다해 우리는 무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만나게 되었다. 당시 연애를 하고 있던 사람과 함께 나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핸드폰을 어떻게 찾아야 되는지 말해주는데, 그때 그녀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은 했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의 반응. 만약 나에게 그런 상황이 닥쳤다면 온갖 짜증을 다내며 누군가를 탓하고 있을게 뻔하다.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 집에 가는길 나는 전남친에게 내 친구의 성격 대단하지 않냐며 자랑했던게 아직도 기억난다. 근데 문득 궁금해지네. 전남친이란 작자는 왜 아직도 내 친구와 페이스북 친구를 하고 있는걸까. 전남친아 너만은 잘지내지마라.

아무튼 그녀는 회사 생활도 긍정적으로 잘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역시나 속사정은 있는 법.


다음은 같은 한번이었던 J. 초반에는 그저 한명의 동기였다. 그녀를 볼 때마다 참 그윽한 분위기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설명은 못하지만 그냥 내 느낌이다. 오며가며 인사를 하고 지내던 그녀였는데, 엠티에서 그녀와 많이 친해졌다. 같이 어울리던 동기들이 불참한 엠티. K와 둘이서 뻘쭘하게 있는데 J와 같은 방에서 지내며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때 W와도 친해졌다. 우리는 그 후 학교 끝나면 같이 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고, 마지막 학년에는 같이 팀플을 함께 하기도 했다. 특히 이 둘은 내가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나를 많이 위로해줬던 사람들이다.

참 차분한 W. 화내는 모습이 상상조차 안되는 성격이다. 동갑내기에 뭔가 통하는게 많아 한동안 둘이서 자주 어울려 다녔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자면 W는 CC였다. 그녀는 내가 모를 줄 알고 어느 날 비밀처럼 말했지만,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비밀연애였다. 연예인들 연애 기사에서 많이 보는 시차를 두고 비행기 타기 이런 느낌이랄까. 교실에 앉아있으면 한명이 들어오고 바로 뒤에 다른 한명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사실 그때부터 이 커플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J는 프랑스어에 빠져 프랑스에 워킹홀리데이까지 다녀왔다. 사실 난 워홀하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정해진 것 하나 없는 곳에 가서 생활을 해야하니 용기가 없다면 어찌 저런 대단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 당시에 프라하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약속했지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가깝고도 먼 당신. 종종 우리는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그녀가 힘들어 할때면 같은 상황에 놓인 또다른 나처럼 느껴져 괜히 마음이 쓰였다. 그래도 전화를 하고 나면 늘 기분이 나아진 그녀를 볼 수 있어 내가 조금은 힘이 됐나? 라는 생각에 혼자 웃음짓게 된다. 아기자기한 성격을 가진 그녀는 많이 메모를 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전화통화에서 주고 받았던 말들을 기록해 보여줬을 때면 그때의 풍경이 떠오른다. 카페에서 전화통화를 하던 나와 파리 거리 한복판에서 전화를 걸었던 너.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주기적으로 만난다. 네 명이 시간을 맞추려면 미리미리 약속을 잡아야 한다.내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 동안에도 그녀들을 만남을 유지했다. 그들은 각자 출판업계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전히 책을 가까이 두는 사람들. 카메라를 가까이 하고 책은 멀리하고 있는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같은 공부를 해서 각자의 취향대로 있는게 살아가고 있다.

모임에 따라 대화 주제가 다른데 이 친구들은 늘 책과 출판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내가 이쪽으론 아는게 없어 가만히 듣고 있는 역할이다. 그럴 때면 괜스레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그들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그들만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각각 다르지만 또 한데 모여있으면 제법 잘 어울리는. 우리의 조합을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속에 껴있는 나조차도 신기할 때가 많다. 이 만남이 더 좋은 이유는 따라가기만 하면 멋드러진 곳들을 소개준다. 어쩜 그리들 맛있는 식당과 카페를 잘 찾는지. 그들을 만나고 오면 내 지도에 하나씩 하나씩 저장을 해둔다.

그래서 우리 언제 또 모이는거야?



                                                                                , 빼어날 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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