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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수 Dec 03. 2020

나는 동생의 간병인이 되었다.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가족들의 의견에 나는 자연스레 그의 간병인 노릇을 했다. 그나마 시간이 많은 대학원생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아빠는 나의 학교 시간표를 외웠다. 아마 아빠가 된 후로 처음일 것이다. 수업이 없는 날이면 나를 병원으로 태워다 줬다. 그리곤 밤새 옆을 지킨 엄마를 출근시켰다. 나는 자영업자인 아빠가 이럴 때 좋은 거라며 분위기를 바꾸려 실없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동생 옆에서 내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직은 밥을 먹을 수 있었고 걸어다는 거에 대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걸 사다 주며 옆에서 자잘하게 도와주는 일뿐이었다. 그 외에 나는 티비를 보거나 낮잠을 잤고, 간간히 과제를 하기도 했다. 4인실이었기에 아니면 중환자가 많아서 그랬는지 꽤나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이었다.


연년생이던 동생과 나는 성향은 많이 달랐지만 어렸을 때부터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같은 학교를 다녔다. 같이 하는 활동들이 많아서였는지 우리는 꽤 친했다. 동생의 친구들은 누나와 논다고 하면 왜 같이 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지만, 우리는 잘 어울려 놀았다. 아마 누나가 둘이나 있었던 환경이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덩치도 큰 편이라 늘 자신이 오빠인 양 행세를 했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둘 다 대학생이 됐을 땐 유명하다는 식당엘 찾아다니고,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동생을 조르고 졸라 함께 쇼핑을 가서는 이 옷은 어떤지, 저 옷은 어떤지 물어봤다. 영화를 보고 싶을 때면 티켓을 사주겠다는 제안으로 함께 영화관에 가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절친한 친구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터지는 이야기를 하자면, 동생이 군입대를 하기 일주일 전쯤이다. 한동안 친구들을 만나느라 바빴던 동생. 모처럼 가족끼리 저녁을 먹고 난 후 군대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한참 동안 '너는 이제 자유로운 생활 다 살았다.', '너는 머리빨인데 이제 어쩌냐.' 라며 동생을 놀려댔는데,

"이제 너 군대 가면 나는 누구랑 놀아."

순간 2년 동안 절친한 친구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엉엉 울며 가족들 앞에서 소리쳤다. 온 가족들은 당황하며 배꼽을 잡고 웃어젖혔다.


동생이 있는 병실.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집에 가는 나에게 가져다 달라던 만화책을 한 권씩 집어 들고선 한 권씩 읽고 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나는 여전히 그 책 재밌냐며 물었고, 나의 연애사를 동생에게 털어놓았다. 나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은근히 내 편을 들어준다. 병원에서 와서 하는 일이라곤 이렇게 동생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뿐이다. 처음 간병을 시작하고 며칠은 동생의 얼굴만 보면 눈물이 났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이 보여주던 모습과는 달랐지만, 나에게 백혈병이라는 단어는 끔찍하게도 무서웠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다. 여느 20대와 다를 바 없던 그였는데,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그는 더 무섭겠지, 그는 더 두렵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울음을 꾹 참았다. 그런데 동생이 나를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핑-돌았다. 내가 잘 운다는 걸 아는 동생은 그러려니 모른 척해준다.


나는 늘 우리 가족이 평범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건강한 부모님과 하나같이 모두 건강했던 자식들. 내가 초등학교 때 아빠의 사업이 조금 힘들어졌지만, 금방 회복했다. 언니의 짧은 방황기가 있었지만, 아이가 생긴 후 철이 든 언니의 방황기도 끝이 났다. 엄마와 나의 주도 하에 대화를 많이 하는 가족들. 평범하다는 단어의 기준이 참 애매모호하지만, 나에겐 우리 가족이 참 평범했고 좋았다.


전화벨이 울린다. '할머니'라는 세 글자가 화면에 떠있다. 옆에 앉아있는 동생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그대로 수신거부 버튼을 누른다. 이제 시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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