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22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아일수 Jul 14. 2023

I'm happy for you

내가 좋아하는 담백한 영어문장

"엄마랑 이모랑 현서랑 동물원 갔었잖아. 또 가고 싶어. 그럼 행복하겠다"

4월, 조카와 함께 동물원에 다녀왔다. 그날 이후부터 조카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동물원에서 놀았던 이야기 말이다. 지금이 11월이니깐 반년 넘게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기억난다. 어느 동물이든 좋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신기해하며 좋아하던 모습. 자신이 좋아하는 공룡도 동물원에 있냐며 묻던 네 살 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천진난만함. 집에 돌아와서는 잠들기 전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재잘재잘 자랑을 해댔다. 그럼 할아버지는 귀엽다며 다 받아주기 바빴고, 엄마는 동물원에서 뭘 봤냐며 계속해서 물었다.

가끔 아주 자주 네살짜리 조카가 부러울 때가 있다. 밥만 잘 먹어도, 혼자 잘만 놀아도, 울지만 않아도 칭찬받을 수 있는 그런 나이. 우리는 마지막으로 칭찬 받았던 때가 언제였을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만큼 오래됐다는 뜻이겠지.

"난 네가 나를 만나러 나의 고향에 온게 너무 행복해"

내가 마틸다를 만나러 스웨덴에 갔을때 그녀가 입이 닳도록 하던 말이다. 그녀의 고향은 꽤나 멀다. 내가 체코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직항 비행기가 없어서 한번 갈아타고 차로 3시간은 더 들어가야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멀다. 꽃을 들고 공항으로 마중나왔던 그녀. 통화로 드디어 너의 고향에 놀러간다고 통화를 할때마다 말했지만 역시나 첫만남에도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어떻게 여기까지 올 생각을 다했냐며 좋아했다.

프라하에서 겪었던 여러 이야기를 하니 금세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내가 생각했던 북유럽 모습 그대로였던 그녀의 집. 나를 환히 맞이해준 마틸타의 부모님. 그녀만큼 영어가 유창하진 않았지만 대화는 충분히 가능했다. 그녀의 엄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곧 이스라엘 여행을 떠날거라 이야기했다. 젊을 적 일하고 자식들을 키우기 바빴기에 지금에서야 여행을 가려 노력하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참 맑아보였다. 행복한 표정이 저런 모습이라는걸 느꼈다. 여행동안 나는 낮에는 마틸다의 가족들을 만나느라 바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동네에서 왜그리 바빴는지를 생각해보면 참 따스하고 정겹다.

내가 마틸다의 동네에 놀러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가족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녀의 형제자매가 7명이나 된다는 걸 익히들어 많을 거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모두를 만날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생각하니 웃음이 피식 새어나온다.

집가던 길에 들른 햄버거 가게에서 만난 마틸다의 둘째 언니, 집에서 나를 환영해준 부모님, 나를 보려고 마틸다의 집에 찾아온 이모님, 나와 동갑이던 다섯째 오빠와 가족들. 마틸다는 늘 "너와 동갑인데 이미 결혼도 하고 애도 둘인 내 다섯째 오빠야."라고 그를 소개했다. 여긴 북유럽이니깐 가능한거라고 우린 웃어 재낀다. 나와 친구가 된 그의 딸. 차를 타고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그녀의 셋째 언니, 첫째 언니의 두 아들과 딸, 옆집 꼬마까지 만나게 되었다.

다음날엔 첫째 언니의 집에 초대 받았다. 한국에도 놀러오고 이미 나와도 친한 마틸다의 여동생. 그녀는 자신의 고등학교를 보여주고 싶다며 학교로 나를 불렀다. 그녀의 친구들도 만나고 선생님들까지 만났다. 작은 동네라 그런지 서로를 다 아는 사이라 지나가는 사람마다 다 인사를 했다. 이렇게 다 쓰고 나니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낮에는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빴고 저녁에는 그녀의 집에 딸린 사우나를 즐기며 수다떨기 바빴다. 당시 마틸다와 여동생은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이라 한창 들떠있었다. 한국에 가면 꼭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며 이야기했다. 마틸다는 한국식으로 따지면 2년 정도 늦게 대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늘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면 그녀는 말했다.

"한국에서 살 수 있어서 행복해. 그 전까지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대학에 가지 않았거든."

나에게 대학은 당연히 가야하는 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언제나 나와 의견이 달랐지만 늘 그녀를 보며 하나씩 배워나갔다.

'I'm so happy for you'그녀와 만날 때면 하루에 한 번씩은 말하게 되는 영어문장. 좋은 일이 생기면 당연스레 말하게 되는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 담백할 수 있을까. 영어로 행복이란 단어는 부담스럽지 않고 아무런 생각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탄한다.

어릴 적 나는 슈퍼에서 초콜릿 하나 사들고는 좋아 날뛰며 행복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었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참 간단명료했다. 하지만 서른 언저리가 다 된 나는 행복하다라는 단어에 수없이 많은 기준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가, 이 돈으로 풍족한 삶이 가능한가, 직장에 다니며 얼마나 알찬 여가시간을 할애하고 있는가 등등. 이 수없이 많은 조건들 속에서 내 마음에 들어차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아니.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행복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삶 곳곳에 숨어있는 이 행복들을 너무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아닐까.

keyword

아일수 소속 직업 회사원

이탈리아에선 한량, 체코에서는 가이드, 베트남에서는 여행사매니저. 소프트웨어 회사를 거쳐 광고회사까지. 지금은 영국까지 와버렸네요.

구독자 22

작가의 이전글 정말 겨울이 끝나면 영국을 좋아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