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일수 Sep 28. 2020

휘둘리지 않는 연애를 한다는 것

나를 사랑해야 우리를 사랑할 수 있다.


H가 집들이를 했다. 이사는 오래 전에 했지만 바쁜 나 때문에 약속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 드디어 만났다. 그들은 E와의 재회 그리고 새로운 직장에 대해 물었다.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나는 베트남에 있었다. 그래, 참 힘들었던 삶이었지. 누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된다고 그러던데, 아무래도 이 경험은 미화되긴 글렀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여행업에 종사했던 나는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서의 삶이 싫어서였다. 음식도 맞지 않고 겨울을 선호하는 나에게 동남아는 최악이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들어왔을 무렵 지긋지긋한 이 전염병이 전세계로 퍼지게 되어 판데믹이 시작되었다. 더이상 여행이 불가능해지고 나는 자연스럽게 반쯤 실업자가 되었다. 다니던 회사는 최대한으로 지원해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8월, 나는 백프로 실업자가 되었다. 부모님은 이런 상황에서 실업자가 되는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주어 부담감은 크지 않았다.


그래. 드디어 장거리 연애를 청산하고 E를 만났는데 당분간 함께 시간을 보내자,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즐겼다. E와 장거리는 끝냈지만 같은 도시에 사는건 아니라 여전히 3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가야지 만날 수 있다. 차가 많이 없는 요일과 시간대에 주로 운전을 했기에 부담은 없었다. 우리는 초반 사람들이 없는 주변 도시를 둘러보며 꽤나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실업급여를 신청하며 구직활동이 필요하다길래 입사 지원을 몇군데 넣고 면접을 봤는데 이게 웬걸. 취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의 백수 생활은 2주만에 끝나버렸다. 난 취업이 됐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짐을 챙겨 E에게 향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그는 내가 집에 있자 놀라며 네가 왜 여기 있냐 물었다.


"나 취업했어!"


그때 그는 무슨 헛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는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날 축하해줬다. 그리곤 물었다.


"정말 일을 해야겠어? 그럼 우린 이제 언제 볼 수 있는거야? 그냥 조금 더 쉬면 안돼?"


운전하는 내내 나또한 같은 생각을 수십번 했었다.

'이제 언제 만날 수 있지, 주말만 볼 수 있는건가, 휴가가 많지도 않을텐데 평일에 얼굴보긴 힘들겠지, 그냥 조금만 더 쉴까.'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내가 또다시 연애에 휘둘리고 있구나...! 남자친구가 있을 때면 나는 늘 '우리'의 일을 먼저 생각했다. 그러다 슬슬 '나'에 대해 소홀해졌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나는 만남을 선호했지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가 일을 해야하는 이유는 내가 집착하지 않고, 내 삶과 우리의 삶을 균형 잡아야 하기 때문이야. 너랑 노는게 제일 좋지만 난 우리한테만 집착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


이미 나의 과거를 알고 있는 E는 단번에 이해했다. 그리곤 새롭게 시작할 일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을 시작하기 전 뭘할지 계획을 세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사람은 나와의 관계를 위해 꽤나 많은걸 이해해주고, 새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프라하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왔다. 그리곤 내가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도 나를 찾아왔다. 내가 베트남에 있었을 땐 언제나 옆에서 위로해줬고, 프랑스에선 자기가 경험한 모든걸 보여주고 싶어했다. 이젠 내차례인가. 내일부터 함께 있을 생각에 또 기분이 좋아진다.






작가의 이전글 어디까지 괜찮은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