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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범 Mar 21. 2020

제대로 물 먹었다!

집에서도 물 먹고 회사에서도 물 먹고... 배터져 죽겠다.

다이어트 3일차. 돈 적게 쓰고 다이어트하는 시작은 ‘물 먹기’부터.


트레이너들이 강조하는 말이 있다. “살 빼려면 우선 물을 많이 드셔야 한다.”

성인 남성 기준으로 25kg당 1리터를 먹어야 한단다. 92kg인 난 하루 대략 4리터를 마셔야 한다. 그래서 마셨냐고?


이게 절대 쉽지 않다. 먹어도 먹어도 들어가지 않는 게 물이다. 고역이다. 술 마실 땐 술술 열리는 목구멍이 ‘이번에 들어오는 건 물이다’란 걸 인식한 순간 닫을 준비부터 한다. 입 안 가득 들어찬 물 한 모금을 뱃속으로 집어 삼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이건 반드시 경험해 보기 바란다.


하지만 물만 먹어도 살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이미 이 방법으로 살을 빼 본 적 있다. 우선 배가 부르니 밥을 덜 먹게 된다. 간식도 덜 먹는다. 그리고 신진대사가 빨라진다. 당연하게도 소변이 자주 마렵게 되는데 그게 신진대사를 촉진시킨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사진 왼쪽이 2017년 당시 98kg이었을 때 몸이다. 인생 최대 몸무게다. 오른쪽 사진이 이후 100일 만에 18kg을 감량하고 찍은 프로필 사진이다. 이 과정에서 물 마시기가 한 몫을 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3월 18일 몸무게까지 까발리며 공개 다이어트를 선언했기 때문에 쪽 팔려서라도 물을 마셔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 큰 머그잔으로 두 잔씩 물을 들이켰다. 일일 할당량 중 일단 500mg 정도는 집에서 채우고 나가는 셈이다.


문제는 회사에서다. 우리 모두 그렇지 않나. 점심 먹기 전까지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업무에만 매달리는 패턴. 목 마르면 커피 한잔. 또 목마르면 음료 한 잔이 일반적이다. 난 그나마 건강 생각한다고 홍삼액을 하루 한 번 먹은 정도. 그랬던 것이 할당량을 채우려니 하루에 몇 번이고 정수기 앞을 들락거려야 했다.


오죽했으면 정수기 앞에서 만난 다른 계열사 직원이 물 많이 마신다며 아는 체를 했을 정도다. 총각이었다면 정수기 앞에서 꽃피는 로맨스를 꿈꿨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배둘레햄 40인치 중년 아저씨, 쌍둥이 아빠. 무엇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아내의 남편이다.


다른 계열사 직원이 건네는 살가운 인사말에도 “아. 예예”라며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인상 잔뜩 찌푸린 채 먹기 싫은 물을 억지로 밀어 넣는 데만 집중했다.    


다이어트 2일째 2.5리터.

다이어트 3일째 3리터.  


할당량에는 미달했지만 나름의 최선은 다했고 오늘이 4일째다. 오늘은 등산 예정이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정은 아니지만, 설악산 천왕봉 등정도 아니지만 집 근처 북한산 둘레길이 내겐 딱 에베레스트이고 설악산이며 한라산이다. 오늘은 물 마시기 할당량이 무난히 채워질 듯 하다.


그런데 물 마시기부터 실행하고 있는 중간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원치 않았는데도 제대로 물 먹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갑자기 이뤄진 조직 개편 내부인사에서 제대로 물을 먹었다. 배부르다 못해 복장이 터져 죽을 맛이다. 이런 물은 곤욕도 아니고 고역도 아닌 그냥 고문이다. .


인사발표 후 지체없이 사표를 던지고 나간 동갑내기 부장의 텅 빈 책상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다이어트를 시작해 물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이렇게 큰 물을 직접 먹여주시다니 회사에 고마워하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물은 제발 내가 알아서 먹을게요. 이렇게 먹여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일도 손에 안 잡혔다.

오늘 밤에 혼자서 진탕 퍼마실까, 승진해서 입이 귀에 걸린 선배에게 비싼 회를 쏘라고 해서 그의 지갑을 거덜낼까, 집에 가서 치킨 두 마리를 배달시켜 혼자 다 먹어버릴까.


쌓이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핸드폰을 꺼냈다. 쇼핑이다. 나도 쇼핑으로 스트레스 풀어버리는 거다. 나도 돈 쓰면서 스트레스 풀겠다. 캬캬캬.

그래서 그토록 좋아하는 시계를 샀을까? 늘 한 벌 더 있었으면 했던 가죽자켓을 질렀을까? 아니면 비싸서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명품 운동화를 결재해버렸을까?


실내 자전거를 질렀다. 그것도 새 자전거가 아니라 요즘 푹 빠져있는 중고거래 어플에서 채팅을 통해 같은 동네 주민이 쓰던 자전거를 5만원에 사기로 했다. 참 소박한 내 주머니에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새털처럼 가벼운 내 급여 통장에 고마워해야 할지. 나중에 로또 당첨되면 집안에 개인 헬스장을 차려 버릴 테다.


사실 집에도 실내자전거가 있지만 안장은 덜그럭 거리고 한 쪽 페달은 위태로울 정도로 부서지기일보 직전이다. 멀쩡했던 우리집 실내자전거를 이 상태로 만들어놓은 건 기운 쎈 천하장사 우리 아들이다. 지적장애인 아들은 높은 곳을 좋아하고 우리 집에서 제일 높은 곳인 실내자전거 안장 위를 자신의 보금자리처럼 생각한다. 이놈(실내 자전거)이 지금까지 버틴 것만도 용하다.


50kg가 넘는 녀석이 자전거 안장 위에 위태롭게 올라서 천장에 머리를 붙이고는 “우이~ 우이~”라며 타잔 함성을 내지르는 게 일과다. 덕분에 자전거는 맛이 갔고 나는 회사에서 물 먹고 분노로 이글거리는 김에 실내자전거를 ‘겟’했고.  


퇴근 후 차를 몰고 달려가 자전거를 가져왔다. 알고 보니 바로 우리집 근처 주민. 1만원을 더 깍아 4만원에 가져왔다. 승진 탈락 선물인 이번 자전거. 대박이다. 안장이 없는 서서 타는 실내자전거다.


아들이 또 안장 위에 올라가 망가트릴 것을 대비해 일부러 서서 타는 것을 골랐는데 집에 와 3분간 시험운행을 해봤더니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예전 피트니스 센터에서 했던 ‘스피닝’ 같은 효과를 내는 자전거였다.


적게 쓰고, 아껴 쓰고, 맞춰 쓰는 김재범식 다이어트 ‘쓰쓰쓰’.

정리한다. 3일 동안 물 마시기를 시작했다. 돈? 안 들었다.

집에서 하는 본격 운동 위해 중고물품 거래 앱에서 실내 자전거 구매했다. 4만원 들었다.


몸무게는 91.5kg. 3일만에 0.5kg이 빠졌다.

물 먹기를 시작한 덕인지 마음고생을 한 덕인지 아침에 화장실에서 큰 녀석을 비워낸 덕인지 확실치 않다.


아직 작심 삼 일 마수에는 걸려들지 않았다.

제대로 물도 먹었겠다. 나는 다이어트 의지로 불타오른다. 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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