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고, 시간도 없다...44세 중년 아저씨의 다이어트 실험 보고서
20년 차 월급쟁이다. 열심히 살았다. 그 결과 내게 남은 건 훈장이라기엔 거대한 40인치의 허리둘레다. 성인병 진입 단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난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지금부터 하는 기록은 운동할 시간도 없고 돈도 없는데 자식 생각하면 오래 살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술과 담배를 즐기고 야식과 폭식을 반복하는, 변명만 가득한 중년의 자기 반성문이자, 미래 계획서이며, 실패에 대한 복기이고, 건강한 몸을 되찾기 위한 경제적 측면의 실험 보고서다.
작정하고 살을 빼려니 살만 빼면 되는 게 아니었다. 여러 고민이 딸려 왔다. 바로 시간과 돈이었다.
생활비, 딸 학원비, 아들 치료비, 은행 대출금, 각종 보험료 등이 빠져나가면 월급통장은 순식간에 텅텅 비었다. “월급은 들어오는 게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것”이란 우스갯소리를 매달 체험하며 노후준비는커녕 카드값 구멍 안 나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시간 내기도 힘들다. 야근할 시간, 회식할 시간, 혼자서 맥주 마실 시간은 있는데 운동 다닐 시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려고 마음 먹으면 못할 것도 없다. 일단 먼저 긁고 보는 카드를 이용해 피트니스센터를 등록,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으며 단기간에 살을 뺄 수도 있을 것이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시간 역시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담을 안고 가긴 싫다. 그렇다고 부담스러운 게 싫어 40인치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지도 않다. 뭔가 해야 한다. 그래서 시작하기로 한다. 실험. 나 자신이 실험물이 된 공개적 실험.
내가 알고 있는, 알아야 하는, 몰랐지만 알게 된 여러 다이어트 정보를 토대로 나 자신에게 실험해 보기로 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경제적 측면’이란 절대 조건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규칙을 따르기로 했다. 혼자서 결심하면 작심삼일로 끝날지도 모르니 공개적 글쓰기를 통해 의지를 다지기로 했다. 혹시 작심삼일로 끝날 상황이 ‘쪽 팔려서’라도 작심 삼십일이 되고, 작심 삼백일이 될지 모르니까.
이 연재를 마칠 때쯤이면 즉 이 실험이 끝날 때쯤이면 경제적으로 큰 부담 없는 살 빼는 법을 찾으면서도 소지섭(아내가 사랑하는) 부럽지 않은 몸매로 변해있을지 모른다. 실험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실패에서 얻는 게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다. 배 나온 중년 아저씨의 경제적 측면을 고려한 다이어트 실험기. 오늘부터 1일이다.
다시 내 소개를 정식으로 한다. 나는 1977년생으로 44세다. 친구와 직장동료의 부고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나이다. 결혼식장보단 장례식장에 더 많이 다닐 나이다. 장례식장을 다녀올 때마다 “앞으론 나도 건강을 챙겨야지”라고 마음을 먹지만 그때 뿐이다.
키는 177cm. 24년 전 군입대 신체검사에선 178.2cm였고 아이들 데려간 동네 소아과에서 쟀을 땐 176cm였다. 팩트만 보면 확실히 키가 줄고 있다. 자세의 문제이거나 뼈 건강의 문제일 것이다.
몸무게. 이것까지 공개해야 할까 망설여진다. 하지만 작심 삼 일이 안 되려면 명확하게 드러내고 알몸이 돼야겠지. 그래 밝히자. 92kg다. 얼추 0.1톤이다. 지인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그렇게 안 보이기 때문이다. 내 살은 배와 허리, 엉덩이에 집중적으로 모여있다. 허리가 40인치다. 전형적인 ET 라인. 겨울엔 옷으로 숨길 수 있는 부위여서 사람들은 내 배가 이만큼 나왔다는 걸 잘 모른다.
사실 이 나이까지 운동도 해 볼 만큼은 해 봤다. 수영, 헬스, PT(Personal Training), 크로스핏, 필라테스, 스피닝은 물론 아내를 따라 에어로빅장에도 따라갔던 경험이 있다. 식이요법도 해 볼 만큼 해 봤다. 간헐적 단식(16시간 금식, 22시간 금식), 닭가슴살과 야채 위주 식단, 무염식단, 단백질쉐이크 섭취 등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살을 빼는 노력을 안 해 본 게 아니다.
하지만 요요의 마수는 엄청났다. 한때 98kg까지 치솟았던 체중은 혹독한 다이어트를 거쳐 80kg까지 내려갔다가 슬금슬금 다시 올라가 90kg을 넘기고 92kg에 안착했다. 40인치에 이르는 배둘레햄 때문에 옷을 입어도 태가 안 살고 그러다 보니 편안한 청바지나 후줄근한 트레이닝 바지만 찾게 됐다.
건강도 문제다. 몇 년 전에는 대장 종양 수술을 했고 콜레스테롤 수치는 300을 넘긴 지 오래다. 체지방률은 30%가 넘고, 중성지방 수치도 178에 이른다. 작년 회사 건강검진에서 간 건강 적신호 경고를 받았다.
나는 건강해야 하고 오래 살아야 한다. 누구인들 건강하게 오래 살지 않아도 되는 삶이 있겠나. 하지만 난 더더욱 건강하고 오래 살아야 한다. 아들 때문이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간 지적장애인 아들 때문이다.
2009년 9월 7일, 쌍둥이를 임신한 아내는 임신 28주에 들어선 그날 밤 양수가 터졌다. 1.06kg의 딸과 1.69kg 아들을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다. 먼저 태어난 딸은 우렁차게 울었지만 뒤따라 나와야 할 아들은 한 시간 동안 아내 뱃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출산 순간 호흡이 멎었다.
아내 말에 따르면 침묵이 가득한 분만실 안에서 얼마 간 시간이 흐른 후 “에~”라며 아주 작은 소리로 아들이 첫 호흡을 뱉었단다. 그 한 번의 호흡으로 아들은 살아났지만 뇌출혈 등 후유증으로 발달장애인이 됐다.
12살 사내아이라면 한참 말 안 듣고 폼 잡을 나이다. 하지만 내 아들은 지금도 아기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고 그런 아들 덕분에 매일 웃을 수 있다. 장애의 시간이 내겐 예쁨의 시간이다. 이 녀석이 웃을 때면 그 웃음을 오래도록 지켜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든다. 그리고 딸. 발달장애인 동생을 두고 부모인 내가 모르는 스트레스와 아픔을 숨기고 있을 딸의 행복도 지켜야 한다. 그 모든 것을 지키려면 난 오래 살아야 하고 건강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지만 반대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난 시간과 돈을 마음대로 쓰고 투자하지 못한다. 가장의 무게와 아빠의 무게, 그리고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의 무게를 모두 짊어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의 방법으로 시작한다. 적게 쓰고, 아껴 쓰고, 맞춰 쓰는, 김재범식 다이어트. ‘쓰쓰쓰 중년’. 회식 많고 술자리 많은 내가, 운동할 시간도 없고 돈도 없는 내가, 그러면서도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살을 빼고 배를 집어넣어야 하는 내가, 앞으로 어떤 방법들을 통해 어떻게 변화돼 갈지 나도 기대가 된다.
오늘부터 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