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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범 Apr 08. 2020

툭 하고 넘어져 톡 하고 부러진 내 발

중족골 골절로 인한 한 달간의 반깁스, 다이어트는 어쩌지?

4월 2일, 다이어트 16일차. 


특별할 것 없던 직장인의 하루. 광화문에서 외부일정 소화 후 바쁘게 다음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순간 왼발이 허공을 딛는 느낌이었다. 몸 전체가 휘청했다. 그리고 난 덤블링 자세로 앞구르기를 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벌어진 완벽한 몸 개그. 아픔보단 쪽팔림이 더 컸다. 


주변 반응 때문에 더 쪽팔렸다. 근처에 있던 전경이 다가와 “괜찮으세요?”라며 부축을 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괜찮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는 데 묘하다. 통증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 정수리까지 치고 올라온다. 평소에도 발목을 자주 접질러서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통증 강도가 기괴할 정도로 강력했다. 


회사에 보고하고 병원행. 인대가 늘어났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날벼락같은 한 마디.


“골절입니다”

“네? 그냥 접질린 건데요?”

“여기 보세요. 골절이잖아요. 보이시죠?”

“넘어졌다고 뼈가 부러져요? 제가 무슨 골다공증도 아니고”

“골다공증 와도 이상할 나이 아니에요. 수술해야 할 거 같은데...”

“네????????”


‘중족골 골절’이란다. 발가락과 연결된 뼈, 위치는 대략 ‘발 날’ 부분. 44년을 살면서 처음 들어 본 뼈 이름이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몸 개그 한 번 했다고 뼈가 부러지다니. 이건 코미디이거나 악몽이다. 수술을 위해 큰 병원에 가야 한단 말에 1도 고민 않고 동네 종합병원으로 직행.


엑스레이를 또 찍고 다시 만난 의사. 


“음…. 이 정도면 수술 안 해도 되겠네요”

“진짜요? 어휴 감사합니다”

“이 정도 부러진 건 뭐”

“그럼 어떻게 해요?”

“반깁스하고 다음 주에 한 번 더 오세요”

“그럼 붙는 거죠?”

“붙으면 다행이고, 안 붙어도 할 수 없고요”

“네? 안 붙을 수도 있다고요? 저 운동해야 하는데….”

“안 붙어도 일상생활은 해요. 불편해서 그렇지. 나중에 물리치료나 잘 받아요.”

“아니 그래도 선생님?????!!!!!!!”


그렇게 반깁스를 했다. 최소 4주는 해야 한단다. 고통이 심해 절뚝절뚝 걷는 것도 힘들다. 목발도 했다. 겨드랑이가 아프고 팔에 힘이 들어가서 죽을 지경이다. 



다이어트고 뭐고, ‘쓰쓰쓰’고 뭐고, 다 망했다. 

그나마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운동도 못하게 됐으니 무섭게 닥쳐올 요요의 마수를 어떻게 피해야 할까. 결국 이번 생에 0.1톤을 넘기고야 마는 것인가. 


사실 이번 일은 어쩌면 예견된 사고였을 수도 있다. 그동안 밥 먹듯 발목이 접질러왔다. 이유는 아내의 말 속에 있다. 


“상체는 터미네이터인데 하체는 걸그룹이니”


거울 속 내 몸이 딱 그랬다. 아내는 우락부락한 상체와 달리 얇디얇은 내 하체를 보며 놀리기 일쑤였다. 알면서도 난 상체운동만 집중했다. 서서 타는 자전거로 유산소 운동을 한 뒤엔 근력운동으로 팔굽혀펴기 400~600개를 일주일에 3회 이상씩 했다. 사실 나는 팔굽혀펴기라면 1000개 이상도 할 수 있다. 물론 한 번에 하는 게 아닌 회당 30회씩 전체 세트 수 총합이다.


인간은 반복의 법칙 속에서 성장한다고 했던가.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난 팔굽혀펴기 10개도 간신히 하던 약골 중에 약골이었다. 하지만 반복과 반복 덕분에 지금은 팔굽혀펴기 괴물이 됐다. 이런 반복의 이유는 어린 시절의 열등감에서 시작됐다.


어릴 적 내 별명은 ‘짱구’. 때로는 ‘대갈장군’. 때로는 ‘왕머리’. 때로는 ‘가분수’. 때로는 ‘대갈왕’이었다. 머리에 관한 온갖 수식어가 내 별명이었다. 


머리가 얼마나 크길래 이런 별명이 붙였냐고? 크다. 국내에서 맞는 모자는 당연히 없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이런 날 ‘천재’라 불렀다. 그 시절 머리가 크면 공부를 잘한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재 맞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달까. 더 이상 알려 하면 다친다. 


이런 머리 크기는 아들에게도 그대로 유전됐다. 아들이 발달장애임을 알게 된 사람들은 머리가 커서 발달장애가 왔냐고 묻기도 했다. 아니다. 머리 크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날 닮아 머리가 큰 거고 발달장애와는 별개다. (아들 어릴 때 사진이다) 



머리는 컸는데 어깨는 또 좁은 편에 속했다. 워낙 머리가 크다 보니 좁은 어깨가 더 좁아 보였다. 물론 머리에 관한 모든 별명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없어지긴 했다. 키가 크면서 머리와 몸의 비율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됐고, 몸집이 크니 주변에선 내 머리 크기를 잘 가늠하지 못한다. 오래 봐야 보인다. 큰 머리. 


하지만 어린 시절 머리가 커서 슬펐던 아이는 가슴에 남았고, 어른이 된 난 그 시절 받았던 상처를 치유라도 할 것처럼 어깨를 키우는 데 집착했다. 어깨뼈가 자라날 수는 없지만 근육을 키우면 어깨가 벌어질 것은 자명했다. 그 생각은 팔굽혀펴기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몸무게보다 중요한 건 몸의 전체적인 비율이고 

다이어트보다 중요한 건 건강인데 

모든 이론적 지식을 알면서도 상체 키우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는 동안 얇디얇은 발목은 하중을 이기지 못해 수시로 접질러졌다. 

결국 내 몸무게를 못 이겨 눌린 발등뼈가 부러지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하체 힘을 길러야 한다. 걸그룹 다리를 탈출해야 한다. 

깁스를 푸는 순간부터 시작될 내 과제다. 


그러면 다이어트는, 쓰쓰쓰는 어떻게 할까?

이대로 모든 걸 놔버리면 진짜 다 놔버릴 것만 같다. 

마침 운동만이 아닌 식이요법도 병행하기 위해 홈쇼핑에서 다이어트 도시락도 주문한 상태였다. 


오래 전, 이번엔 PT를 받으며 다이어트를 했던 적도 있었는데 당시는 트레이너가 권유하는 대로 철저한 식단을 지켰다. 매 끼니 잡곡밥을 기본으로 하고 닭가슴살, 소고기, 연어 등의 단백질을 주식으로, 각종 야채는 삶거나 생으로 곁들여 먹었다. 과일조차도 당분 때문에 안 먹었다.  


식단은 아내가 준비해줬는데 그때는 처음이라 정성스럽게 식단을 차려줬다. 지금은 해달라는 말도 못 꺼낸다. 안 그래도 애들 방학이 길어지면서 지쳐가고 있어 지금은 건들면 대형사고 터지는 시기다. 


게다가 지금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부담스럽다. 당시 매 끼니마다 닭가슴살과 소고기, 연어와 각종 야채 등을 마련하느라 내 식비만으로도 하루 3만원이 넘게 들었다. 한 달에 거의 100만원이 오로지 내 식비만으로 나갔다. 아내와 애들 식비는 또 따로 나가니 엥겔지수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 위해 다이어트 도시락을 주문했다. 마침 퇴근 후 홈쇼핑을 보고 있는데 다이어트 도시락이 방송 중이었다. 14개가 53000원. 개당 3800원꼴. 합리적인 가격. 하루에 두 끼를 다이어트 도시락으로 해결해도 만원이 넘지 않는다. 


주문하고 이틀 뒤 배달이 왔다. 뜯어보고 욕을 쏟아내야 하나, 웃음을 터트려야 하나 3초 정도 고민했다.

다이어트가 될 수밖에 없는 도시락 모양새. 참새 모이만큼 양이 적으니 이렇게 먹으면 누구라도 살이 빠질 수밖에. 세 개를 동시에 먹어도 배가 안 찰 양이다. 결국 도시락 한 개에 고구마 2개, 삶은 달걀 2개를 곁들여 한 끼를 때웠다. 


(한 숟가락 뜨면 밥의 4분의1이 없어지는 마법의 도시락이다.)


그래도 고구마카 컸던 덕분인지 포만감이 느껴졌다. 아침과 저녁을 이렇게 '적게' 먹고 운동을 늘려가기로 하고 있을 때 이 사단이 벌어졌다. 

식이요법 없이 운동만으로 다이어트 하려던 방법에서, 운동 없이 식이요법만으로 다이어트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애써 자위를 해본다. 이것도 실험이면 실험일 테니 한 번 해보자고. 


말은 이렇게 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툭 하고 넘어졌는데 톡 하고 부러진 내 발뼈(이름도 괴이한 중족골). 

붙어라. 붙어라. 빨리 붙어라. 


다이어트 21일차. 몸무게? 깁스로 인해 측정 불가.

다이어트 시작 후 만난 첫 번째 난관, 고난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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