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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사 Jan 14. 2023

하늘의 별따기 = 덴마크에서 취업하기 1

당신 정도의 구직자는 이 곳에 차고도 넘친답니다 .

집도 구해졌겠다, 일 년간 체류할 수 있는 서류와 행정 처리도 모두 끝났겠다. 나는 '워킹 홀리데이'의 워킹을 위한 Job이 간절히 필요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돈으로는 서너 달 정도 일없이 살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놀고먹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한국의 경우 대다수의 구직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반면 덴마크의 경우, 특히 외국인 구직자들은 원하는 회사나 업장에 직접 CV가지고 방문해 취업 의사가 있음을 강력히 표현하는 것이 구직 확률을 높이는 것이라 들었다. 아무래도 두발로 찾아가는 모습의 노력과 외노자의 외국어 능력을 함께 확인할 수 있기에 그러한 듯했다.


Alberslund 동네 도서관에서 CV 만드는 중


집에서 만들어 온 샌드위치, 도서관 앞 벤치에서 자주 먹곤 했다.


직접 찾아가 일일이 CV를 돌리기 위해 먼저 재정비된 영문 이력서가 필요했다. 나는 2주 동안 주말 하루 이틀을 빼고는 매일 같이 Albert Slund의 동네 도서관을 찾거나, 가끔은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공공도서관에 방문해 이력서를 가다듬고, 커버레터를 새로 쓰고 수정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수정할 수 있었던 영문 커버레터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Copenhagen Main Library, 나중에는 이 곳이 나와 워홀러 친구들의 방앗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손으로 건네받는 이력서가 곧장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부업으로 전시 포스터와 책자를 디자인했던 경험을 살려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력서를 이쁘게 편집까지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커버레터는 영어로 작성한 후 한국에 있는 분들께 영문 감수까지 부탁한 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음속에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불타올랐고, 이력서만 완성되면 100장도 돌리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자소설을 집필했다.


2주 정도 시간이 되니 CV는 프린트만 하면 될 정도로 흡족할 수준이 되었고, 플라잉 타이거 코펜하겐에서 이력서를 담을 파일 봉투와 네임택을 구매하여 일일이 지원하고 싶은 곳의 이름을 써두었다. 나의 한국에서의 경력을 살려 전시 공간과 미술관 위주로 지원할 예정이었는데, 최악의 경우 소정의 수고비만 받거나 무료로 일을 해야 하더라도 경험값이라 생각하고 일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문 CV


플라잉 타이거 코펜하겐에서 구매한 봉투들과 홀더, 네임택들


덴마크에서도 코펜하겐은 세계 정상급 미술관들과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내가 지원할 곳은 차고 넘치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력서는 프린트만 하면 되었는데, 코펜하겐 시내에도 인쇄소는 몇 곳 없었고 온라인으로 검색한 후 찾은 한 곳에서 인쇄하게 되었다. 덴마크 물가야 워낙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종이 한 장 뽑는데 흑백 인쇄는 장당 약 600원, 컬러 인쇄는 장당 약 1,200원 정도였다. 물론 장수가 많아질수록 단가가 줄어들긴 했지만, 이력서와 커버레터 2장, 줄이고 줄인 포트폴리오 5장을 한 번의 지원마다 제출한다고 했을 때 한 곳을 지원하기 위해 대략 7천 원(흑백+컬러) 정도의 비용을 써야 했다. 취업을 위해 이 정도 돈도 못 쓰랴싶었지만, 구직이 길어질 수록 얘기가 달라지긴 했다.


나는 인쇄소에서 우선적으로 10곳에 지원할 만큼의 부수를 출력했다. 집으로 돌아와 구매해 둔 색색의 봉투들에 이력서를 담았고, 각각 지원할 곳의 이름을 네임택으로 달아주었다. 그리곤 방문하여 이력서를 전달할 땐 뭐라고 입을 뗄야할지 할 말들을 타이핑한 후 외우기 위해 거울을 보고 달달 연습하였다. 이 정도면 됐지하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잠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설레는 건지 긴장이 되는 건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한참을 설치고야 잠에 들 수 있었다.


S-tog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 길


다음 날 아침 겸 점심을 든든히 먹고 백팩에 이력서와 에너지바, 물통과 우산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첫 번째로 방문할 곳은 코펜하겐의 뉘 칼스버그 글립토텍(Ny Carlsberg Glyptoteket). 미술관 이름 중 칼스버그란 이름이 왠지 익숙지 않은가? 이곳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덴마크 맥주회사인 칼스버그사(Carlsberg)의 기부금으로 세워진 곳이었다. 내부의 아름다운 조각상과 분수로 꾸며진 실내 정원은 중세 궁전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고 미술관의 거대한 규모의 소장품들은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을 미술관으로 불러들였다. 글립토텍은 특히 회화 작품보다 조각 매체의 작품이 훨씬 많은 곳으로 유명한 조각가 로댕의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었다. 또한 간혹 선보이는 기획 전시는 중세나 근대의 유럽 회화를 감상할 수 있어 코펜하겐에서도 자주 방문했던 곳이다.


뉘 칼스버그 글립토텍(Ny Carlsberg Glyptoteket) 미술관 전경, 이미지: Wikipedia


글립토텍 실내 정원의 일부


그런데 미술관 앞에 서서 내 두 발은 왜 한 걸음도 떼지를 못하는지, 전날 밤 알 수 없는 기분은 긴장과 겁,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진 감정이었던 게 분명했다. 한국에서 면접을 보았을 때도 이 정도로 긴장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인사말과 방문 목적에 대해 할 말을 몇 번이고 연습하고 또 읽다가 겨우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스텝만 들어갈 수 있는 사무실은 따로 찾아갈 길이 없었기에, 지하에 위치한 인포데스크 겸 매표소에 이력서를 전달하고자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들고 다가갔다. 인포데스크에 있는 직원들 모두 방문자들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기다리다 겨우 한 젊은 여자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녀는 나 또한 당연한 여행객 신분의 관람객으로 생각했는지 뭘 도와주겠냐고 물었고, 나는 딸딸 외우다시피 했던 내 인적 사항과 방문 목적을 이야기하며 이력서를 전달했다. 그녀는 내 이력서를 건네받으며 덴마크어는 할 줄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영어로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내게 "여기는 덴마크이고, 덴마크어를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일을 구할 수 없을 거야. 내 뒤에 이 서류들 보이지? 다 너처럼 이곳에 일하겠다고 방문한 사람들의 이력서야. 어쨌든 전달은 해줄 테니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꺼야."라고 냉정하지만,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지만 "시간을 내주어 고마워. 좋은 하루 되길 바래" 라고 준비했던 대답을 한 후 전시를 구경할 새도 없이 도망치듯 미술관에서 나와버렸다.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었지만, 어찌 첫술에 배부르랴...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떻게든 첫 도전을 해냈다는 생각에 갑자기 긴장이 스르륵 풀리고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면서도 이 상황을 얼마나 더 겪으면 이 나라에서 내 두 손으로 노동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허기가 져 벤치에 앉아 챙겨온 물과 에너지 바를 섭취한 후 다음 목적지인 다비드 컬렉션(The David Collection)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덴마크의 변호사이자 사업가였던 인물 C.L. 다비드가 생전에 소장했던 미술 공예품을 전시하는 곳으로 8세기에서부터 19세기까지의 이슬람 미술품 컬렉션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러한 규모로는 북유럽에서 가장 큰 박물관 중 한 곳이었고 18세기 유럽과 덴마크의 순수 미술 및 다양한 매체, 더불어 덴마크 초기 현대 미술 컬렉션까지 소장하고 있었다.


다비드 컬렉션(The David Collection) 박물관의 입구, 마치 일반 주택 같이 생겼지만 내부는 무척 넚다. 이미지: Wikipedia


글립토텍에서 처음부터 씨게 맞아 그런지, 다비드 컬렉션에서는 그리 긴장되지 않았다. 아마 박물관 인포데스크의 직원이 60세는 훨씬 넘은 우아한 할머니 같은 인상이라 그랬을까? 그녀에게 이력서를 건네며 내 인사를 했고 이곳에서 꼭 일하고 싶다는 말과 덧붙여 봉사라도 가능하니 꼭 담당자에게 서류를 전달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새 미술관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내 쪽으로 다가왔고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묻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인포데스크 직원을 포함한 나머지 직원들은 포근한 말투로 내 워킹홀리데이를 응원해주었고 이왕 온 김에 전시가 무료이니 관람하고 가라고 얘기해주었다.


다비드 컬렉션(The David Collection) 박물관의 내부


다비드 컬렉션의 내부는 마치 아주 고급스러운 예술품 취미가 있는 부유한 소장가의 집에 방문한 느낌이었다. 여러 전시실을 오가는 중간중간은 마치 고급 주택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듯했고, 엄청난 규모의 소장품들은 도대체 이것들의 먼지는 언제 어떻게 닦고 관리를 하는거야 라고 생각할 만큼 감탄을 자아냈다.


전시를 모두 관람하고 인포데스크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왠지 이곳은 연락을 주지도 않을까? 하는 아무 쓸모 짝 없는 기대를 조금 하면서 말이다. 밖으로 나와보니 네모나게 모양을 내 자른 나무들이 저 멀리까지 두 줄로 서 있는 게 보였다. 구글 맵에서 확인해보니 바로 로젠보르크 성이 있는 킹스가든 공원이었다. 산책이라도 할까 싶어 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하늘이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이 변덕스런 북유럽 놈의 날씨... 곧장 우산을 꺼내 펴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모스팅 휴스(Møstings Hus)를 찍었다.


킹스가든 공원


모스팅 휴스는 프레데릭스버그에 위치한 작은 전원주택 형태의 전시장인데 건물 앞에 연못이 있어 목가적인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전시 공간이 되는 주택은 1800년대에 지어졌는데 당시 부유한 코펜하겐 시민들이 집이나 별장을 짓는 곳으로 유명한 터였다고 한다. 1809년 레스비히(Schleswig)의 하데르슬레브(Haderslev) 카운티의 군수였으며 1804년부터 독일 총리실의 의장이었던 요한 지기스문트 본 모스팅(Johan Sigismund von Møsting)이 인수한 후 1843년 사망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후 다른 사람에게 매각되었는데, 아무래도 현재 박물관의 이름은 오래 거주했던 모스팅의 이름을 따 지어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모스팅 휴스에 도착할 때 쯤이 되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다시 스멀스멀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구글맵을 켜고 따라가다 보니 웬 공원이 나왔다. 이곳은 프레데릭스베르 공원(Frederiksberg Have)이라는 곳이었는데 도심을 걷다 마주칠 수 있는 이 푸른 녹지들이 문득 덴마크 국민들의 또 다른 복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 애들이라 어른이나 카페가 아니더라도 갈 데가 많겠구나...


모스팅 휴스(Møstings Hus) 박물관, 이미지: https://frederiksbergmuseerne.dk/en/mostings/history-of-moestings/


공원을 지나 도착한 모스팅 휴스는 아주 작은 규모의 공간이었다. 따로 휴관일이라는 정보는 없었는데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전시를 교체하는 중인가? 싶어 이곳저곳 문이라는 문은 다 두드려 보았지만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전시 공간이 이렇게 작은데, 일할 사람이 필요는 할까? 그래도 준비해온 이력서가 있으니 편지를 넣는 우편함에 봉투를 넣고 귀가를 하기로 했다.


Albertslund 역에서 내린 후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여니 1층 주방에서 Catia가 인사를 건네왔다. 하루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오늘 이력서를 돌렸던 이야기를 해줬더니 카티아는 글립토텍의 여직원이 했던 말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덴마크에서 자국어인 덴마크어를 하지 못한다면 서비스직 말고의 전문직은 구하기 어려울 수 있을거란 이야기를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카티아의 경우는 자국어인 포르투갈어와, 영어와 불어를 현지인처럼 구사할 수 있었음에도 한 달째 일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카티아는 다음 주 코펜하겐 시내에서 열리는 작은 직업 박람회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귀여운 포르투갈 지지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실제로 카티아는 나보다 언니이다) 여러 분야의 중소기업이 회사 홍보와 더불어 구인을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귀가 솔깃해 어떤 일을 구하는지도 모르면서 우선은 함께 가겠다고 했다.


고맙고 다정한 카티아. 그러면서도 카티아는 온라인으로도 구직을 알아볼 수 있는 몇몇 사이트를 함께 알려주었고 나는 덴마크의 싸디싼 삼겹살로 저녁을 해결한 뒤 방에서 그녀가 알려준 Jobs in Copenhagen, Job Index, Linked in 등등을 살펴보고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싸디싼 덴마크의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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