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에 2명 누구야?"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우리 반은 43명이었다. 첫 중간고사 시험 성적표를 보고 크게 물었다. 창피함도 없던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관심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겠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내가 변하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중반부터였다. 놀기만 할 줄 아는 딸이 심히 걱정 된 엄마가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과외 선생님. 선생님은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주셨고 나는 서서히 공부하는 재미를 깨달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입시를 오랫동안 준비하며 기초 체력을 쌓아온 친구들과 나는 체급부터 달랐다.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수능 결과는 4년제 지방 캠퍼스 대학교에 합격 통지. 그럼에도 모의고사 최하 등급을 맞던 내가 2년 만에 이뤄낸 결과치고는 아쉽긴 했지만 대견한 결과였다.
그때 나는 두 가지의 선택지 위에 서야 했다.
<지방이지만 4년제 대학교 vs 전액 장학금 받는 2년제 대학교>
친구들은 당연히 지방이지만 서울 소재 대학교의 제2 캠퍼스인 4년제 대학교에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 당시만 해도 나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한 2년제 대학교에는 공무원 아카데미라는 별도 시설이 있었다. 학과와 상관없이 약간의 테스트를 거쳐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고 무료로 수업을 듣고 공무원 준비를 할 수 있게 학교 측에서 지원해주는 곳이었다. 어차피 공무원 준비하는 건 똑같은데 굳이 4년제를 다녀야 하나? 결국 나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년제에 들어갔다. 솔직히 말해서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그때 2년제에 들어간 건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 그 이후의 일들이 다이나믹하게 진행되는데 2년 내내 전액 또는 반 이상의 장학금, 2학년 때 미국 교환학생으로 선발, 이후 편입 준비하여 서울 소재 대학교의 3학년으로 입학 등. 불과 3년 사이 내 시야는 더욱 넓어졌다.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는 길에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선택이 맞나?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곤 한다. 오늘의 점심 메뉴에 대한 아주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배우자를 고르는 신중한 선택까지.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선택지들은 포기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후회는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후회가 된다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 제자리 걸음이 된다. 아니, 오히려 퇴보하는 꼴이다. 지금 당장은 아쉬움이 따라오는 선택을 하더라도 뭐든 끝까지 가봐야 안다. 류시화 시인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에세이의 제목이 떠오른다. 그렇다. 좋은지 나쁜지는 당장 아무도 알 수 없다. 내가 어떤 길을 만들어가느냐에 따라서 훌륭한 선택도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 법. 어떠한 선택이든 그걸 최선으로 만들어갈 힘은 나에게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