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20대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취업 정보 스크랩 용도로 개설한 블로그였다. 물론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빠짐없이 기록을 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 쓴 글들은 모두 비공개 처리해 두었는데 요즘 블로그의 알람 서비스 덕에 종종 꺼내어 보곤 한다. "같은 날, 몇 년 전에 올린 게시물이에요!"라는 멘트와 함께. 마치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색이 바랜 종이에 삐뚤빼뚤 쓰인 글씨. 친정 집에 가면 아직도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이 박스 채 있다. 결혼하기 전 한 번 일기장들을 꺼내어 읽어본 적이 있다. 푸훗. 학교 숙제이기에 억지로 쓴 글, 엄마에게 혼난 후 날림 글씨로 화가 잔뜩 난 채 대충 써 내려간 글까지. 일기를 쓰는 어린 나를 상상해 보는 일은 퍽 즐거웠다.
일기란 기억에 다 담지 못할 추억들을 대신해 담아주는 보물 상자와 같다. 종이에서 인터넷 창으로, 매체만 바뀌었을 뿐 블로그에 쓴 글도 일기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10년도 더 된 블로그의 글들은 나의 지나온 걸음이었고 삶을 고민한 흔적들이었다.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나이테, 이 나이테의 폭은 일정하지 않다. 가뭄이 들거나 햇빛을 많이 받지 못한 해에는 성장이 더디어 나이테의 폭이 좁고, 반대로 강수량도 높고 햇빛을 잘 받은 해에는 폭이 넓다고 한다. 성장에 좋은 환경이건 아니건 분명한 건 나이테는 생긴다는 것이다. 나 또한 살아가며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젊어서 하는 경험은 뭐든 약이라지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그런 일들. 하지만 힘든 일들을 겪으며 한껏 위축되었던 시기에 성장이 멈추어 버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일, 저 일을 겪어보며 풍파를 견딜 수 있는 근력이 생기게 된다.
나이테의 진한 색 원이 생기는 시기는 나무가 잘 자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잘 자라지 못한 가을~겨울 사이에 만들어진다고 한다. 어쩜 자연의 법칙도 인간의 삶과 이렇게 비슷한 면이 많은지 모르겠다. 오히려 일이 잘 풀릴 때보다 어려울 때, 힘들 때 우리는 나무와 같이 진하게 나이테를 그려내고 있는 중일테다. 그러니 지금 힘들다고, 일이 잘 안 풀린다고 낙심하지 말자. 그리고 묵묵하게 기록해 가 보자. 더딘 것 같아도 분명 진하게 살아내고 있는 중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