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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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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인 Feb 14. 2023

나를 가장 따뜻하게 해주는 것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이 오면 힘들다. 특히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맞으면 평소에도 차가운 나의 손과 발은 아프다고 느낄 정도이다. 아무리 추워도 활동이 많은 낮시간은 참을 만 하지만 저녁시간, 신체활동이 거의 없는 늦은 밤시간에는 차가워진 몸이 잘 녹지 않는다. 특히 나의 발은 냉동실 안에서 단단하게 얼어있는 아이스팩에 맞먹을 정도로 차갑다. 잠자리에 들어가서도 발이 따뜻해지기 전에는 쉬이 잠들지 못하는데 그래서 대부분의 겨울밤에는 이불속에서 언 발을 녹이다가 긴 시간이 지나곤 한다.

최근 며칠 동안은 발이 너무 시려서 그동안 떠놓은 뜨개양말을 꺼내 신고 있다. 여러 켤레의 양말을 떠두었지만 애지중지 아낀다는 마음으로, 신고 난 후 손세탁이 귀찮다는 이유로 그동안 서랍장에 넣어두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버리고 요즘은 하나 둘 꺼내 신으며 따뜻함과 포근함을 즐기고 있다. 외출을 할 때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신는다. 뜨개 양말은 보온효과도 좋지만 직접 뜬 양말의 화려하고 포근한 디자인이 나의 기분을 설레게 한다. 아무도 보지 않을 텐데 집에서도 예쁜 뜨개양말을 꺼내 신고는 내 발을 보며 혼자 즐거운 기분에 빠진다.


지금은 실내에서도 양말을 자주 신지만 예전에는 발이 아무리 차가워도 발과 양말 사이의 틈, 그로 인한 마찰력이 싫어서 실내에서 양말을 신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다. 외출할 때, 그러니까 신발을 신을 때에는 양말과 발 사이의 공간을 신발이 허용하지 않고 꼭 잡아준다는 느낌이라서 어떤 양말을 신더라도 발의 피로가 덜했다. 그러나 양말만을 신을 경우에는 양말이 발에 미치는 작용들을 고스란히 받게 되는 것 같았다. 수면양말과 같은 따뜻하지만 반들반들한 양말을 신으면 바닥이 미끄럽기도 하고 발이 양말 안을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고, 편물이 거친 양말은 발을 디딜 때 지압효과가 있나 생각할 정도로 발바닥이 배기는 느낌을 견디기 힘들었다. 차라리 양말을 신지 않을 때에는 맨발에 닿는 단단한 바닥의 느낌이나, 부드러운 러그나 이불이 피부에 직접 닿는 느낌이 좋았다. 아무 매개가 없이 외부의 영향을 나 스스로 받아들이는 느낌. 생각해 보면 발은 참 예민한 부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뜨개를 시작한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은 것은 뜨지 않는다는 마음은 늘 한결같았다.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었지만 쓰임새를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 버려지는 작품들을 보면 오랜 시간 고생한 보람을 찾지 못해서 허탈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뜨개 양말을 뜨기 전에는 이것이 과연 실용적일까 고민했다. 미끄러울 것 같고 편물이 올통볼통해서 발에 배길 것만 같은 뜨개양말은 결국 관상용 작품으로 남아 생을 마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초보시절 두어 번 양말을 떴는데 뜨개기법을 배워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으로 떴었기 때문에 헐렁하다 싶을 정도로 크고 못생기게 완성이 되었었다. 신어보니 양말은 발에서 뱅글뱅글 돌았고 발바닥이 바닥에 닿으면 '쭈우욱'은 아니지만 '찍' 정도로 미끄러졌었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뜨개양말이란 예쁘고 포근한 느낌만을 추구하는 심미적인 차원의 작품이구나, 하며 다시는 뜨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양말은 애물단지가 되어 한동안 양말장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결국 내 곁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몇 년 전 뜨개 친구들에게서 뜨개양말의 유용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다시 한번 양말을 떠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양말용 실과 바늘을 준비해서 발에 꼭 맞는 제대로 된 양말을 떴다. 처음에는 얇은 실과 바늘로 뜨개 하는 것이 많이 어렵고 불편했지만 양말을 이렇게 떠가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즐거움도 컸다. 그렇게 완성된 양말을 신은 첫날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 파란색의 뜨개양말은 발에 꼭 맞았다. 발바닥에 편물로부터 비롯된 약간의 오돌토돌한 불편함은 금방 잊혔고 도톰하고 보드라운 느낌이 내 기분을 설레게 만들었다. 맘에 드는 새 옷을 처음 입었을 때처럼.

그 이후로 여러 켤레의 양말을 만들었다. 털실로 만든 양말은 차가운 나의 발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나는 양말 뜨개 모임에 참여해서 다른 뜨개인들과 함께 다양한 디자인의 양말을 만들며 내 발에 잘 맞고 편한 스타일을 찾아갔다. 뜨개 양말은 참 신기했다. 신기 전에는 편하지 않을 것 같고 편물 사이로 공기가 드나들어 추울 것 같은데 신어보면 그렇지 않다. 추운 날 외출할 때 신으면 공산품 면양말과는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따뜻하고 포근하다. 양말만 신은 실내에서는 발이 바닥에 닿으면 폭신폭신한 느낌이 들어서 발이 마치 카펫이나 이불 위를 내딛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사실 지금까지는 뜨개양말을 많이 신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 이것은 뜨개양말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같은데, 내가 뜨개를 할 때에 자꾸만 화려한 색의 실을 고르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옷을 입더라도 회색이나 검은색, 또는 짙은 색의 양말을 신는 게 가장 편한데 내 양말은 참으로 알록달록 화려한 색이다. 화려하고 귀여운 양말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지만 외출할 때는 선뜻 골라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집에서는 뜨개양말을 신기가 자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좋은데 헤지거나 구멍이 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 양말을 그토록 아끼다니 참으로 세련되지 못한 마음이다.


추운 날이 지속되니 요즘 나를 가장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보니 뜨개양말이 생각났다. 무언가 준비된 답이라면 다른 사람의 온기나 따뜻한 말 한마디를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요즘의 나에게는 어떤 복잡함이나 계산 없이 그저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양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금도 내가 신고 있는 것, 조만간 한 켤레 또 뜰 예정인 것. 더군다나 지금처럼 추운 날에는 차가운 나의 발을 따뜻하게 해주는 뜨개양말이 가장 고마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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