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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인 Feb 14. 2023

올해의 계획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은 연말연시가 되면 늘 묻는다.

'올해 계획이나 목표가 뭐야?'

나는 남편이 대답으로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안다.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원할 것이다. 목표를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면 더 좋다. 남편은 올해는 더 진지하게 묻는다. 아이들은 많이 컸고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불안감이 커지는지 우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글쎄. 오랫동안 생각해 보아도 그에 대한 대답으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은 ’잘 모르겠다.‘밖에 없다. 이 순간만큼은 어쩐지 내가 목적의식 없이 그저 먹고 자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한 달을 보내고 일 년을 보내는 그런 무의미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적당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사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시기가 되면 나는 늘 마음이 불편하다.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한해의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은 부담감 때문이다. 꼭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연말 연초에는 그런 일들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이때쯤에는 왜 자꾸 인스타에서도 ‘성공을 위한 O가지 계획' '성공한 사람들의 ~한 노력'과 같은 피드가 자꾸 뜨는지, 이때만큼은 미래를 위한 계획을 뭐라도 생각해 내야 한다고 나를 다그친다. 한 달 치만 쓰고 늘 처박아두면서도 연말이 되면 꼭 구입하는 새 다이어리처럼, 머릿속도 나름의 정리를 해야 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어도 예전에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쉬웠다. 학생 때는 올해는 꼭 성적을 얼마큼 올려야지, 라든가 방학 때는 무엇을 해야지와 같은 목표 설정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취업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바라보아야 했으니 목표를 향해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업무 실적이나 연봉등의 성과위주로 목표를 세우는 것이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간단했다. 목표 완수가 아니라 설정이 쉬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는, 특히 몇 년 전부터 가정주부로의 삶을 살게 되면서 나의 계획이란 나 자신이 이룰 결실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이나 성적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양육자나 조언자가 나의 가장 큰 역할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기대 없이 그 역할에 충실하면서 한동안 나의 삶이 그런 식으로 굴러가다 보니 이제는 나만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 어려워진 것만 같다. 아이가 없는 내 시간, 남편이 없는 나의 생활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올해의 계획을 세우려다 보니 지금은, 특히 육아를 배제한 내 삶의 목표를 세우려는 올해는 예전처럼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것들로 쉽게 설정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내가 생각해 낸 것은 건강하기, 행복하게 살기, 취미생활 즐기기와 같은 두루뭉술한 것들로만 채워지게 되었다. 이것이 최고의 가치 있는 목표라고 여기지만 달리 보면 계획 없이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것들도 구체적인 활동이나 목표를 세워 수치화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려는 것에 어떤 숫자를 대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올해는 구체적인 어떤 계획을 세우긴 세워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뭘 목표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래오래 고민하다가 꼭 해야 하나? 성공한 사람들은 계획하고 반성하고 우선순위를 만들어 집중한다는 데, 나도 매일을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 굳이 기간을 1년씩 길게 잡지 말고 일단 오늘을 살고 오늘 잘못한 걸 반성하고 내일 잘 살면 되지 않을까? 오늘을 반성해 보자면 읽기로 계획한 책을 미뤄두고 뜨개만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을 반성한다. 내일은 뜨개 시간을 줄이고 오늘 못 읽은 분량까지 책을 더 읽어야지. 이렇게 반성하고 계획하면 되겠지? 단순하게 생각한다.


아 난, 또 이런다. 대책 없는 한 해가 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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