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무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범인 Jun 30. 2023

책을 읽는 시간

며칠 전에 책을 읽는 꿈을 꾸었다. 꿈속은 아직 날이 어두운 시간인지 주변이 캄캄했다. 식탁에 앉아 있는 나를 비추는 식탁등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책에 빠져있었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조명을 받아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은 생경하게 느껴졌다. 현실의 나는 비바람 부는 폭풍우 속에 있는 것만 같아서일까. 분명히 꿈속의 주인공은 나이고 낯익은 풍경인 것 같았지만 그 순간이 너무도 고요하고 편안해서 익숙하지 않은 장면인 것만 같았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최근에 잘 읽히지 않아서 폈다 덮었다를 반복하던 책이었다. 소설책임에도 철학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고 있는 책이라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었다. 평소 같았으면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을 텐데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를 붙잡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이 새로운 책을 다시 잡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요즘에 나는 책을 읽는 것을 멈추고 있으니까, 새로운 책은 나에게 또 다른 부담감을 줄 것 같았다. 꿈인데도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이 평온하고 즐거워 보인다는 것에 나는 왠지 모르지만 안도했다. 어릴 적 내가 만들어놓은 비밀본부에서  나 혼자만의 작업을 하며 느끼는 쾌감 같은 것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내 안의 무언가가 변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진짜의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잠에서 깨고 꿈속의 이야기나 다른 장면은 흐릿해졌지만 책을 읽는 그 장면만은 내게 강렬한 여운이 남았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많이 읽지는 못한다. 더군다나 요즘은 마음이 심란하다는 핑계로 몇 달 동안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마음이 어수선하고 불편할 때에는 가벼운 소설을 읽으며 책으로 도피하는 것이 순간을 모면하는 가장 쉽고도 편리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책은 나의 처지나 환경을 벗어날 환상 속 배경을 마련해 주었고, 그 안에서 놀다 보면 나의 여러 갈래의 생각 중 최선의 길을 찾아주었다. 이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기분전환이 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최근에 내가 책을 왜 읽지 못했던가 생각해 보니 그것이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도피했던 현실이 책이 끝나면 한순간에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현실 속 고민과 괴로움이 독서를 통해 잊힌다고 생각했던 예전과는 달랐다. 이제는 책을 덮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에 고달픔이 전보다 더 커진다고 느껴졌다. 책을 읽고 싶지 않았고 읽히지가 않았다. 이렇게 책이 재미없고 구닥다리 취미로 느껴졌던 적이 있었나 싶어졌다. 소설책은 환상 속 쓸데없는 이야기 조각들이고 철학책은 오래된 생각들의 무덤 같았고 과학책은 현실에서 실제로 써먹지도 못하지만 잘난척하며 읽는 허영심 같았다. 아, 큰일이네, 앞으로 책을 못 읽을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집에 많이 쌓아뒀을까. 거대한 짐들에 파묻혀 사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던 때라서 내게 그 꿈은 너무도 생경하고 어색했을 것이다. 나는 책과 이별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비밀스러운 만남을 유지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책이 내게 주는 위로를 잊고 있었다. 눈을 뜨며 다시 꿈속의 설레지만 편안한 그 만남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 책이 내게 무언가를 전달해 주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것이 즐거움이든 편안함이든 복잡한 현실세계에 대한 답이든 다시 찾고 싶었다. 나는 씻지도 않고 커피 한잔을 만들어 식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이상하기도 하지, 왜 그동안은 이 책이 그렇게도 어렵고 힘들었을까. 그동안 잘 읽히지 않았던 소설은 내게 너무도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문장은 왠지 내게 길을 열어줄 것만 같았다. 주인공의 여정처럼 나도 천천히 책을 읽어가야지. 나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 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