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느림 Mar 03. 2021

혼자의 식탁

라면 먹고 잘래요


평소에 굳이 찾아 먹지 않던 라면이나 과자는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안 먹었던 게 아니라 없어서 안 먹었던 게 된다. 그러다 어느새 군것질은 습관이 되고, 배가 안 고파도 해만 지면 그렇게 뭔가가 먹고 싶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먹지 말라면 더 먹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보니 그런 습관이 자리 잡힌 상태라면 다이어트의 최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나처럼.


특히 라면은 배는 고픈데 해 먹기 귀찮을 때 아주 적당하다. 라면 강국 대한민국에서 웬만한 면요리는 인스턴트로 만들어져 10분이면 맛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심지어 같은 라면을 먹는 방법들도 각양각색이라 지루할 틈이 없다. 얼마 전엔 순두부를 넣은 매운 라면을 끓여 먹었다가 물개 박수를 쳤다. 라면에 넣을 줄 아는 건 달걀뿐이던 나에겐 신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두 종류 이상의 라면을 섞어 새로운 라면을 만드는 참신한 발상들을 발견할 때면 나도 괜한 모험심이 꿈틀꿈틀 하곤 한다.


예전에 장어로 라면을 끓인 적이 있다. 장어, 쑥갓, 콩나물, 양파, 어쩌고랑 저쩌고 재료들을 넣고 볶다가 물을 붓고 끓여 라면을 넣었었다. 분명 혼자 먹으려고 끓였던 라면이었는데, 이것 저것 넣다 보니 한 3인분 쯤 되어버린 장어라면. 흔한 해물라면 같은 맛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공이 부족해서 장어 특유의 풍미를 잘 살리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장어는 구워 먹는 게 제맛이니 재도전은 과감히 포기하겠다.



라면에 필수인 달걀은 누가 뭐래도 반숙이다. 누군가 라면을 끓여주면서 달걀을 풀어 휘휘 저으려고 하면 기겁을 한다. 흰자부터 노른자 겉만 살짝 익은 달걀 가운데를 톡 터트려 흘러나오는 노른자를 면발과 함께 호로록 먹으면 고소함이 배가 된다. 적당히보다 조금 더 익은 김치를 한입 곁들이면 아삭아삭하면서 매콤한 김치가 느끼함을 잡아준다. 김치는 겉절이를 좋아하지만, 라면은 살짝 신김치랑 궁합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이번 라면은 좀 더 신경을 써보기로 하고 냉장고를 팠더니 청경채가 나왔다. 잠자던 청경채를 꺼내고, 홍고추를 송송 썰었다. 한동안 금값이라 사지 않았더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달걀도 야심 차게 꺼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꼬들꼬들함을 살리기 위해 면을 뒤적이다가 달걀을 터트렸다. 왜 달걀을 벌써 넣었을까 아마추어처럼. 냄비가 생각보다 작아서 넘치려는 국물을 막아서며 조심스럽게 면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었는데, 순간 노른자가 라면 국물에 퍼지는 게 보였다. 한 3초 동안 그대로 멈췄던 것 같다. 달걀 하나를 더 넣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비록 달걀은 터졌을 지라도 면발은 살렸으니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며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라면이 잘 끓여진 날이면 뭔가 괜히 기분이 좋다. 라면을 잘 끓인다는 칭찬도 참 별 거 아닌데 어깨를 으쓱하게 만든다. 이번에 청경채를 넣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감도 그렇고 청경채 특유의 달달하고 고소한 향과 아삭함이 더해져 자칫 지루할 뻔했던 라면을 살린 맛이랄까. 사실 라면은 뭘 넣어도 맛있지만, 굳이 뭔가 첨가하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이 있어서 더 좋다. 왜냐면 그냥 '라면'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혼자의 식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