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제주
제주살이를 하던 시절,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와 배낚시를 같이 간 적이 있다. 막상 혼자서는 가본 적이 없던 차에 친구를 핑계로 냉큼 그동안 눈여겨 왔던 배를 예약했다. 보통 관광코스로 하는 2시간 체험 낚시는 바늘에 미끼 끼우다가 끝날 것 같아서 (우리는 고기를 많이 잡아야 하니까) 오전이나 오후에 6시간씩 혹은 하루 종일 탈 수 있는 돔 낚싯배를 선택했다. 하루를 길게 써야 하므로 아침 7시 출항으로 예약을 했는데, 혹시나 늦을까 봐 항구 주차장에서 처음으로 차박이란 걸 했었다. 무려 2월에.
멀미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멀미약을 먹고 붙이기까지 하는 친구를 보면서 마치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안타까워하던 나는 배를 타고 약 두 시간 동안 이승과 저승을 셀 수 없이 왕복했다. 이미 바다 한가운데 둥실둥실 두둥실 신나게 통통거리는 작은 낚싯배 위에서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고 차라리 바다로 뛰어내리는 게 편하지 싶을 정도로 괴로워했다. 바다에 뛰어내리면 그냥 물 위에 누워있을 줄 알았나 보다. 한참을 옆에서 지켜보던 낚시꾼이 보다 못해 상비약으로 챙겨 온 멀미약을 내밀었다.
'진작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인간은 이렇게 은혜를 모른다. 하지만 이제라도 주신 게 어딘가. 반나절 낚시 체험이 아니라 멀미만 체험하다가 끝날 뻔했으니 말이다. 옆에서 비틀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워 보였으면 본인도 멀미를 해서 챙겨 온 약을 선뜻 주셨을까.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잠시나마 배은망덕한 생각을 한 자신을 반성하고는 덕분에 살았다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했다. 그때부터 공친 두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 의욕이 충만해서 미끼를 던졌다. 고기를 너무 많이 잡으면 다 어떻게 해야 하나 괜한 걱정도 하면서 만선의 꿈을 키웠다. 사실 잡아도 문제였다. 물고기를 못 만져서 잡아도 오두방정을 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자꾸 낚시를 하냐고 묻는다면 고기가 딱 미끼를 물었을 때의 손맛을 한번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날 내가 낚은 건 '지구'였다. 아무래도 엄청나게 큰 고기가 걸린 것 같았는데 선장님은 낚싯대의 움직임만 보고도 땅인지 고기인지 구분이 가능하다 하셨다. 다른 배들도 조황이 좋지 않다기에 그날 못 잡는 건 당연한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잡은 고기마저도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죄다 방생했으니 결국 아무도 못 잡았다고 하는 게 맞았다. 물론 나는 그마저도 잡지 못했지만. 이 배에서 고기를 못 잡으면 '천연기념물'이라며 자신감 넘치던 선장님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오후 반나절 배를 무료로 태워주시겠다고 하셨고, 아쉽게도 오후 일정이 있었던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승선권을 받아 들었다. 다음 날, 혼자 배낚시를 나간 친구는 참돔 세 마리를 잡고 돌아오는 길 야생 돌고래까지 봤다고 신나서 자랑을 했다.
'아.. 같이 갈 걸'
한 이 주쯤 지났을 땐가 용기를 내서 승선권을 들고 혼자 배를 타러 갔다. 막상 혼자 가니 조금 뻘쭘했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묵직한 가방과 아이스박스를 하나씩 가지고 "낚시 좀 한다"라고 써 붙인 듯한 차림새인 사람들 틈에서 가슴팍에 작은 힙색 하나를 둘러메고 미끼로 쓸 지렁이랑 쓰고 남은 채비가 든 검정 비닐봉지를 달랑 들고 애써 씩씩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날도 역시 내 낚싯대엔 눈먼 고기조차 걸려들지 않았다.
정말 어복은 타고나게 없는 모양인지 어쩜 이렇게 안 걸리는 걸까. 요령이 없다고 하기엔 처음 하는 사람들도 잘만 잡던데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밥이나 먹고 가라며 위로해주시는 선장님이 처음 사주신 밥은 전복이 푸짐하게 들어간 성게 미역국이었다. 희한하다며 내가 용왕님의 딸은 확실히 아닌 것 같다는 농담을 하시면서 앞으로 그냥 잡을 때까지 오라시던 김선장 님은 그렇게 나의 "제주 아빠"가 되셨다.
오징어 철엔 오징어를 잡으러 갔다가 공치고, 오징어를 얻어 와서 오징어 먹물 라면을 끓여 먹었다. 이쯤 되면 일부러 안 잡는 거 아니냐며 주변에서 의심할 정도였으나, 이 정도로 못 잡는 게 노력한다고 가능하긴 한 걸까.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자주 안부를 묻고, 초보 낚시꾼이 물고기라도 낚으면 내 생각이 나셨는지 약 올리듯 연락을 하셨다. SNS에 새로 올라온 게시물을 보고 왠지 연락이 올 것 같은 날이면 어김없이 전화가 울렸다. 그런 선장님의 연락이 반갑고도 아쉬웠다. 분기마다 제주에 가리라 다짐했지만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마음 편히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 11월 큰 마음을 먹고 홀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김없이 선장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물때가 안 좋아서 예약을 모두 취소했다고 우리끼리 흘림낚시를 가자시며 흔쾌히 제주 친구와의 동행까지 허락하셨다. 이번엔 제발 좀 잡으라는 신신당부는 덤이었다.
흘림낚시는 처음이라 설명하고 채비를 세팅하는 데만 한 시간 넘게 걸린 것 같다. 새우를 한 움큼씩 집어 바다에 던지고 이름 그대로 낚싯줄을 흘려보내면서 물고기를 유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박한 배가 자꾸 물살에 흘러갔다. 이젠 닻까지 말썽이었다. 덕분에 그날도 나의 "꽝조사" 타이틀을 지킬 수 있었다.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던 선장님은 다른 배에서 잡은 긴꼬리벵에돔으로 우리의 배를 불려주셨다.
다음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농업용 가위를 들고 감귤밭에서 열심히 감귤 꼭지를 따고 있었다. 밥값은 해야 하니까. 선장님은 감귤밭 주소와 가위만 쥐어 주시고는 마음껏 따서 가져가라며 다 따면 더 좋다고 하셨다. 이듬해 감귤이 열리려면 귤을 모두 따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너 시간 동안 인당 무려 5-60kg을 넘게 딴 것 같다. 사람들은 돈 주고 감귤체험도 한다는데 난 정말 운이 좋다. 진심이다. 육지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노지귤을 잔뜩 보내고 나니 뭔가 뿌듯함이 밀려왔다.
"어복은 없어도 인복은 있구나."
여유 있게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간단한 먹거리로 끼니를 때우고는 바쁜 일상에 지쳐 잠들기 일쑤인 요즘 같은 날이면 제주에서의 생활이 유독 그리워진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자며 나에게 집중하고 싶어 떠났음에도 처음 두어 달은 외로워 미칠 것 같았던 타지 살이. 하나 둘 친구가 생기고 도시에서 느낄 수 없던 자연 속에서의 여유로움이 생활 속에 녹아들 즈음 북적거리는 도시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이른 새벽 바다 위로 피어오르는 해를 가까이 맞이하는 게 좋아서 고기를 잡지 못해도 배를 타는 게 그저 행복했고, 바다 냄새 그득한 길을 따라 달릴 때면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이 풍경 속에 내가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월척을 낚았더라면, 운동에 취미가 없었더라면, 애초에 뭔가 시도할 용기조차 없었더라면 지금 기억에 남아있는 제주는 외로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