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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느림 Aug 19. 2020

혼자의 식탁

복숭아를 먹는 방법

복숭아를 너무 많이 사서 어떻게 먹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유독 예뻐 보이는 메뉴를 발견했다. 한번 만들어보려고 폼을 잡았는데 가위가 부러질 뻔했다.


잘 익은, 그러나 너무 익지 않은 적당히 몰캉몰캉한 복숭아를 골라야 했고, 씨앗의 크기를 가늠해 칼집을 내서 주방용 가위로 씨앗을 잡고 돌리면서 빼내고, 그 안을 그릭 요거트로 채우면 완성. 취향에 따라 그래놀라나 견과류와 함께 먹으면 나름대로 괜찮은 아침식사가 완성된다. 나처럼 실수를 거듭하면 생각보다 배부를 수 있다는 점만 조심한다면.


처음엔 덜 익은 다소 단단한 복숭아를 고르는 바람에 씨앗이 과육에 너무 붙어 있어서 떨어지지 않아 가위만 망가질 뻔했고, 너무 무른 복숭아를 골랐을 땐 잡고 있던 손가락에 힘이 너무 들어가 반은 으스러졌다. 생각보다 번거로운 과정을 지나 겨우 완성한 "그릭모모". 결과적으로 완성된 건 하나였지만 덕분에 세 개 정도의 복숭아를 먹어 치웠다. 이 아이의 이름이 "요거복숭아"나 "복숭아요거트"였다면 어땠을까? 이름의 발단까진 굳이 찾아보진 않았다. 일본의 디저트 카페에서 보고 국내로 들여왔다거나 뭔가 입에 착 붙는 이름을 생각하다 나온 이름이겠지.


이 작은 녀석이 청담 브런치 카페에서 만 원이 넘는다니, 자주 가는 시장 과일가게에서 마지막 남은 복숭아 한 상자를 14,000원에 산 걸 생각하면 아무리 청담이지만 엄청난 차이다. 아마도 이 작고, 탐스럽고, 촉촉하고, 달콤한 녀석을 만들기 위한 시간과 정성과 청담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반영됐을 것이다.



예쁜 음식, 인생 사진, SNS를 위한 투자비용. 만들어 보면 별거 없어 보이는 간단한 음식이라도 어디서, 어떤 분위기를 느끼며 먹는지가 요즘엔 꽤나 중요하게 여겨진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채광이 없어도, 모던한 테이블과 형형색색 테이블웨어가 없어도, 가장 아늑하고 편안하기로 치면 아무래도 우리 집 만한 데가 없다. 에어컨이 있다면 조금 더 아늑하겠지만. 이렇게 여름을 만끽하며 겨울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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