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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느림 Aug 29. 2020

혼자의 식탁

그릇이 담는 것들

그릇을 샀다. 예쁜 것을 보면 사고 싶은 사람의 심리가 요즘 부쩍 그릇으로 내 시선을 이끈다. 습관처럼 자주 들어가는 쇼핑몰에서 그릇들을 보는 순간, 어떤 요리를 해서 어떻게 담아 먹으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게다가 할인까지 한다니 망설이기엔 이미 마음에 드는 몇 개는 품절이라 더는 늦을 수 없었다. 고작 그릇 4개를 샀을 뿐인데 괜히 설레었다. 며칠 후, 그릇을 받자마자 사진을 찍어 자랑하는 나에게 친구가 한마디 했다. 


"1인 가구 아니야?"


1인 가구라고 그릇이 하나만 있다면, 매일 같은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면, 그게 매번 다른 음식이라 해도 식사가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 게다가 설거지는 항상 귀찮고, 설거지를 안 해도 배는 고플 텐데 말이다.


음식에도 그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한식, 양식, 중식, 간식 그리고 그 안에서도 많은 종류의 음식들이 각자 갖고 있는 개성이 있다. 와인을 양은 대접에 담아 먹고, 막걸리를 맥주잔에 담아 먹는 상황을 상상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음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음식들은 각자 어울리는 그릇에 담겼을 때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살아난다. 



하얀 면기에 담길 쌀국수를 상상하고, 도라지꽃이 그려진 면기에 담길 덮밥과 그냥 라면만 담아 먹어도 맛있어 보일 그릇들을 보면서 어떤 요리를 해볼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소비는 확실한 행복이라던데 일단 이번 소비는 성공적이다.


같은 음식을 다른 그릇에 담아도 그 맛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보는 사람이 느끼는 그 음식의 이미지가 미리 음식의 맛을 판단한다. 난 요란하지 않은 잔잔한 느낌의 그릇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옷을 입히듯 음식에 그릇을 맞춘다. 


사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다른 누군가의 취향과 다르더라도, 굳이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맞추려 하지 않아도 내 눈에 먹음직스럽고, 내 입맛에 맞으면 대충 그걸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가 된다. 그럼에도 내가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을 사는 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듯 나를 대하는 나의 시선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그릇을 사진 못하겠다.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기 전 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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