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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윤로윤 Jun 17. 2023

[괜찮은 인생을 살고 싶어] 나의 더 좋은 상어와 고래

고작 승진이 뭐라고


승진에 미끄러졌다. 코끝 시려오는 계절이 되면 항상 조바심이 생기고는 했는데, 올해만큼은 평소에 드러내지 않던 욕심에, 갖은 애를 써가며 기대했던 탓인지 속상함과 서러움이 끝끝내 가셔지지가 않는다.


나의 승진 누락으로 첫 번째 애꿎은 화살은, 남편 만두 씨에게로 돌아간다. 나보다 세 살 많은 만두 씨와 나는 회사생활 경력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만두 씨는 어느덧 회사에서 팀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해 나갈 뿐 아니라, 밤을 새워가며 자기계발 마저 열심히 하고 있다.

누가 봐도 성실히 사는 인생이라 모두의 응원을 받는 모습에 반면, 시간적인 여유 없이 살아가는 나의 워킹맘 이름표가 비교되어 내심 배가 아팠나 보다.​


그리고 이렇게 코끝 시린 계절이 돌아올 즈음에, 스스로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받고 나면, 나는 괜히 만두 씨를, 가정보다 본인의 만족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아가보곤 했다.

그러나 심성이 여린 만두 씨는 나의 애꿎은 탓을 들어줘야지만, 추운 초겨울의 싸늘한 공기가 빨리 지나간다는 걸, 어느새 터득한 모양이다.

그날 저녁도 싸늘한 공기 속의 조심스러운 위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는데, 만두 씨를 똑 닮은 여섯 살 미니만두씨의 예상치 못한 위로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엄마, 엄마는 요즘에 제일 힘들었던 일이 뭐야?”​


“응? 엄마 요즘에 힘든 일 없는데? 너는 힘든 일이 있어?”​


“아이, 그냥 솔직하게 말해도 돼, 엄마 요즘 힘든 일 있는 것 같은데 나한테 말해봐”​


“흠…, 그럼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사실 이번에, 회사에서 친구들은 다 승진했는데 엄마만 승진 못한 것 때문에 너무 속상하고 힘들었어…“


고민하다 내뱉어버린 나의 속상함에 대해 여섯 살 꼬마는 머라고 답해줄지 걱정하며, 짧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리고 돌아온 미니만두씨의 예상치 못한 답변은, 나를 펑펑 울게 해 주었다.


“엄마,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 엄마랑 엄마 회사 친구들이 다 같이 바다에 빠졌는데, 엄마 친구들만 구해주고 엄마는 구해주지 않은 거야.”​


“어? 그럼 엄마는 어떻게 해야 돼?”

“연습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걱정하지 마, 엄마는 엄마친구들보다 더 좋은 고래가 구하러 올지, 더 좋은 상어가 구하러 올지는 아무도 모르거든!”


여섯 살 꼬마의 눈동자 속에서 크고 멋진 고래와 상어가 헤엄쳐 갔다. 그 커다란 파도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 나는 참지 못하고 나의 서러움과 속상함을 꺼이꺼이 끌어내며 바닥까지 비어 냈다.​


고작 승진이 머라고…, 나에게는 이렇게 따뜻하고 든든한 세상의 울타리가 있는데…,


세 식구 도란도란 앉은 식탁 너머 창문에는 환한 보름달이 비춰준다.

그리고 나에게 조용히 속삭여 준다. 이 모든 것 이 과정이니 힘들어하지 말라고,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이 있으니 내일은 오늘보다 더욱 멋진 날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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