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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윤로윤 Jun 09. 2023

[괜찮은 인생을 살고 싶어] 사랑에 빠지는 빨간색

빨간색 옷을 입은 단풍의 이야기

하늘이 연신 뿌옇다. 미세먼지가 좋지 않았던 날이지만 주말이 지나고 나면 빨간 잎도 노랑 잎도 모두 끝날 것 같아, 세 식구 마스크를 챙겨 서둘러 상당산성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나와 만두 씨는 애주가인 만큼 동동주 한잔을 위해 택시를 타고 산성 입구까지 간다. 산성에 다다랐음을 알려주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르막길에는 마치 빨간 물감을 그대로 흘려 짜놓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려고, 고운 색 자랑하는 단풍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쉬운 계절의 색을 알려주기 위해, 울긋불긋 줄지어 서있는 단풍나무의 색깔로, 다섯 살 미니만두씨 에게 말을 건네 본다.


“저기 저 빨간색 나무가 단풍나무야, 너무 예쁘지 않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시야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뻔한 대답 정도만 기대하며 던져 본다. 그러나 돌아오는 다섯 살 미니만두씨의 대답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와~정말 예쁘다! 엄마, 단풍나무가 사랑에 빠져서 빨간색 옷을 입은 것 아닐까? 내가 오늘 여기에 오는 걸 알고, 일부러 빨간 옷을 입은 것 아닐까?”


만두 씨와 나는 서로의 놀란 눈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잊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에 대한 공감의 마음만큼은 재보지 않아도 똑 닮은 키를 가지고 있는 우리다.

짧은 순간 서로의 놀란 눈동자 속에서 많은 것들이 보인다. 다섯 살 인생에서 어쩌면 이리도 생각지도 못한 훌륭한 표현이 나올까? 만두 씨와 나도 서로의 다섯 살 인생 즈음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를 키우기에는, 커다란 세상을 숨기기라도 하려는 양, 조금이라도 들킬까 꽁꽁 묶어 두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스쳐간다.

오늘부터는 아이의 대한 나의 바람에 애쓰는 일을 반 정도는 줄여야 할 것 같다.


알려줄 수 있는 것들만 조금 느리게, 조금 천천히만 알려줘도, 이미 아이는 지구의 반 바퀴 정도는 가뿐히 날아다닐 수 있을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알려 줄 수 없는 것을 굳이 애써가며 알려주려 하지 않아도, 아이는 이미 빨간색은 사랑에 빠지는 색깔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사랑에 빠진 단풍잎들이 계절의 시기를 못 이겨 바람결 등에 타고 여행을 떠난다. 그 단풍잎들의 여행을 바라보며, 한 잔이었던 동동주는 두 잔 되고 석 잔 되어, 나와 만두 씨의 얼굴에 작별 인사라도 하는 듯 그 빛깔을 띄어 보낸다.

다섯 살 미니만두씨의 마음으로, 단풍나무도 우리도 사랑에 빠지는 빨간색을 띄워 보냈던, 늦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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