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옷을 입은 단풍의 이야기
하늘이 연신 뿌옇다. 미세먼지가 좋지 않았던 날이지만 주말이 지나고 나면 빨간 잎도 노랑 잎도 모두 끝날 것 같아, 세 식구 마스크를 챙겨 서둘러 상당산성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나와 만두 씨는 애주가인 만큼 동동주 한잔을 위해 택시를 타고 산성 입구까지 간다. 산성에 다다랐음을 알려주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르막길에는 마치 빨간 물감을 그대로 흘려 짜놓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려고, 고운 색 자랑하는 단풍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쉬운 계절의 색을 알려주기 위해, 울긋불긋 줄지어 서있는 단풍나무의 색깔로, 다섯 살 미니만두씨 에게 말을 건네 본다.
“저기 저 빨간색 나무가 단풍나무야, 너무 예쁘지 않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시야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뻔한 대답 정도만 기대하며 던져 본다. 그러나 돌아오는 다섯 살 미니만두씨의 대답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와~정말 예쁘다! 엄마, 단풍나무가 사랑에 빠져서 빨간색 옷을 입은 것 아닐까? 내가 오늘 여기에 오는 걸 알고, 일부러 빨간 옷을 입은 것 아닐까?”
만두 씨와 나는 서로의 놀란 눈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잊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에 대한 공감의 마음만큼은 재보지 않아도 똑 닮은 키를 가지고 있는 우리다.
짧은 순간 서로의 놀란 눈동자 속에서 많은 것들이 보인다. 다섯 살 인생에서 어쩌면 이리도 생각지도 못한 훌륭한 표현이 나올까? 만두 씨와 나도 서로의 다섯 살 인생 즈음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를 키우기에는, 커다란 세상을 숨기기라도 하려는 양, 조금이라도 들킬까 꽁꽁 묶어 두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스쳐간다.
오늘부터는 아이의 대한 나의 바람에 애쓰는 일을 반 정도는 줄여야 할 것 같다.
알려줄 수 있는 것들만 조금 느리게, 조금 천천히만 알려줘도, 이미 아이는 지구의 반 바퀴 정도는 가뿐히 날아다닐 수 있을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알려 줄 수 없는 것을 굳이 애써가며 알려주려 하지 않아도, 아이는 이미 빨간색은 사랑에 빠지는 색깔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사랑에 빠진 단풍잎들이 계절의 시기를 못 이겨 바람결 등에 타고 여행을 떠난다. 그 단풍잎들의 여행을 바라보며, 한 잔이었던 동동주는 두 잔 되고 석 잔 되어, 나와 만두 씨의 얼굴에 작별 인사라도 하는 듯 그 빛깔을 띄어 보낸다.
다섯 살 미니만두씨의 마음으로, 단풍나무도 우리도 사랑에 빠지는 빨간색을 띄워 보냈던, 늦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