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서 FA 제도가 잘 안 되는 이유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를 만들진 않아...
최근 많은 기업에서 직급 단계의 축소, 절대평가의 도입 등 인사 제도의 굵직굵직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삼성에서도, 올초에 이러한 인사제도의 변화를 꾀하면서 조직의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한 가지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직원들이 직접 자신의 직무를 선택할 수 있는 FA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삼성이 밝혔다.
FA 제도는 근래에 생긴 제도는 아니다. 몇십 년 전부터 직원들의 업무 성과 향상, 몰입도 향상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더 몰입을 하게 되고 성과가 나게 된다는 전제하에 많은 기업들이 시도를 하고 있었던 제도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이 제도가 잘 활성화되고 있는 케이스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이 제도를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다. 종신 고용이 보장이 되는 환경에 있는 일본 기업들은 인력 운영의 유연성, 효율성 등을 감안하여 이 제도를 도입했으며, 아직까지 그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도 꽤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제도를 도입했던 기업들이 많은 내부 잡음을 겪으면서도 경영진의 의지로 그 잡음을 눌러가며 시행을 해보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오히려 조직의 내부 분위기를 망친다는 이유로 이 제도를 폐지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이 제도가 잘 활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적과 의도는 매우 훌륭하지만, 실제 그 의도만큼의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조직에서는 이 제도를 꼭 도입을 해야 할까? 도입을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FA 제도는 원래 프로스포츠에서 기존에 스포츠 구단이 선수의 지명권을 가지고 운영되던 방식에서 프로선수들에게 좀 더 자율권을 두고자 일정 기간의 계약 기간을 채운 선수들에게 본인이 직접 구단과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제도이다. 이를 통해서 선수와 구단이 동일한 선상에서 협상을 하여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러한 FA 제도가 조직에서 적용할 때는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스포츠와 조직운영방식의 차이를 살펴보면 FA 제도가 잘 운영되기 위한 몇 가지 전제 조건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프로스포츠에서는 FA 제도를 통해 이동을 하더라도, 그 전문성이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더 잘 활용되는 형태로 이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동을 하게 되는 팀은 그 선수의 전문성을 인정하여 거기에 몸값을 측정한다. 만약에 FA 자격을 취득한 선수가 가진 전문성이 해당 팀에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면 그 팀은 해당 선수와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조직에서도 이러한 방식의 인력 운영이 가능한지 살펴보자.
영업팀에서 5년간 근무를 했던 직원이 영업이 아닌 다른 업무를 희망할 경우, 조직에서는 이를 그대로 인정하여 직무이동을 시켜줄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많은 장벽이 있다. 영업만 하던 직원이 만일 영업이 아닌 다른 조직, 예를 들면 재무 업무를 희망한다고 할 경우에 재무팀 입장에서는 당장 쓸 수 있는 전력이 아니기에 굳이 그 인력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조직 TO가 비어있다 하더라도, 그 인력은 적임자가 아닐 것이다. 개인 입장에서도 영업이라는 전문성을 버리고 경력이 5년이나 지난 상태에서 새로운 직무 전문성을 쌓아야 하는 상황이면 개인차원에서는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경력이 있더라도 새로운 조직에서는 신입직원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오히려 직장 후배들에게 업무를 배워야 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직무 경험을 쌓기는 어렵다.
또한 조직 내 인력 구조상 실무형 팀장을 추구하는 조직에서는 모든 개인이 각자 중복되지 않게 업무 분장을 하며 최대한 효율적 인력 구조를 지향하기에 팀 내 누군가 새로운 인력이 들어왔을 때, 그를 케어해주면서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모든 구성원들에게 부담이 된다. 결국, 이는 새로운 인력이 제대로 업무를 배우기가 어려운 구조가 되며, 결국 조직의 적응 이슈로 다시 본인이 가장 익숙한 직무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따라서, 조직에서의 FA는 전문성을 유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전문성을 더 활용하기 위해 직무이동을 하는 것이 아닌, 기존 직무의 매너리즘, 또는 직무 외적인 이슈로 직무이동을 하게 되기 때문에, 프로스포츠에서 활용하고 있는 FA와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두 번째, 프로스포츠에서의 FA는 팀을 이동하면서 본인의 몸값을 시장가치에 의해 평가받고, 그 조건에 만족하면 계약을 통해 이동하는 구조이다.
가끔 신문에서 보는 FA 대박이라는 프로야구 선수들을 보면, 그 선수의 실력에 대해 프로야구 구단은 냉정하게 평가하여 계약 기간 동안 그 몸값을 지불하기로 하며 계약을 한다.
철저하게 시장논리이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의 직무 이동은 직무 이동을 하더라도 본인의 몸값을 평가받거나 계약을 다시 하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보통은 인사발령에 의해 이동이 된다.
그리고 오히려 이동을 하게 되면, 그 해 성과평가에서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다. (기존 직원들에 대한 평가를 위해 점수를 바닥에 깔아주는 경우가 적잖이 있다.)
또한 직무에 대한 가치를 평가받고, 그 가치에 적합한 연봉이 다시 책정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즉, 시장가치에 의해 직무를 평가받고 그 직무 가치가 나의 몸값이 되지는 않는다.
이는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이 직무가치에 의한 보상 체계가 아닌 연공, 역할에 따른 보상 체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내가 어떤 직무로 이동을 하더라도 보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만약 조직에서도 프로스포츠처럼 FA가 되는 경우는, 조직 내 직무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경쟁사, 동종사로 이동하면서 몸값을 높여 받게 되는 경우가 더 유사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세 번째, 프로스포츠에서는 철저하게 계약으로 관계가 이루어지기에 계약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성적을 보이게 되면, 계약 해지를 하거나, 다른 팀과 선수들을 서로 바꾸는 등의 계약을 새롭게 하게 된다. 하지만, 국내 조직은 직무와 그 직무 수행자가 계약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규직이라면...)
따라서, 직무 이동을 하게 되어 그 조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노무적인 이슈 등을 감안해서 함부로 직원을 이동/배치하거나 해고를 할 수 없다. 그만큼 고용관계에 있어 유연하지 못하다. 때문에 인력을 받는 조직에서도, 이동해 가는 직원에게도 이러한 이유로 직무를 이동하는 건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인력을 받아서 성과가 나지 못한다고 함부로 다른 조직으로 이동을 시켜버릴 수도, 업무에서 배제할 수도 없다.
프로스포츠에서는 이게 가능하지만, 조직에서는 이런 경우, 노무적인 이슈가 제기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프로스포츠에서의 FA와 지금 현재 조직 내에서 자율적으로 직무를 선택하게 하는 FA 제도는 그 결이 완전히 다른 제도이다. 전문성의 유지, 시장가치에 따른 보상, 계약 관계 측면에서 FA 제도를 '프로스포츠'처럼 운영할 수는 없다. 즉, 조직 내에서 FA 제도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는 프로스포츠를 염두에 두어서는 절대 성공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조직에서는 이러한 좋은 의도의 제도를 어떻게 반영하고 운영할 수 있을까?
FA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CDP(Career Development Plan) 관점에서 우리 조직이 CDP에 대한 전략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즉, CDP가 우리 조직 내에서 정착되려면 조직이 CDP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사실 많은 기업에서 CDP를 실패하는 이유는 이러한 고민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보통 CDP는 두 가지 관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조직 관점에서 조직의 전략에 맞추어 인력 육성의 경로를 미리 설정하고, 이에 따라 선발된 인력을 그 경로에 따라 육성을 하는 관점이 하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직원 관점에서 직원 스스로가 본인의 성장 경로를 설정하고, 이를 IDP (Individual Development Plan)에 등록하여 조직장과 협의 하에 직무를 이동하는 형태이다. 두 가지의 관점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 반드시 둘 중 하나의 관점을 선택해야만 한다. 두 개의 관점을 다 취할 경우, 결국 CDP는 여러 가지 이슈 간의 충돌로 흐지부지 운영되게 된다.
이러한 CDP 전략을 먼저 선택하고, 그에 따라 FA 제도를 설계해야만 한다.
그리고 FA 제도를 운영하더라도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사전에 설정하여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인지가 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요약하자면,
우리 조직에서 FA 제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프로스포츠와 같은 FA 방식의 철저한 시장논리가 아니라는 점, 계약/고용관계의 유연성 부족, 전문성의 훼손 등에서 매우 다른 성격의 직무 이동이며, 이에 따라서 결국 조직 내 FA는 CDP 관점에서 매우 섬세하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원하면 직무를 이동시켜준다는 식의 관점, 특정 조직의 TO가 비어있고, 거기에 희망하면 인사팀의 FA 제도 활용 실적을 위해 강제로 이동을 시켜주는 방식은 결국 조직 역량의 Loss를 가져올 뿐이다.
FA 제도는 직원 몰입을 위해 활용할 수도 있지만, 이동을 통한 몰입이 아니라, 이동을 함으로써 성장을 할 수 있게 되고, 그 성장에 대한 자부심으로 몰입을 하게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FA 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조직의 CDP 전략과 섬세한 성장 경로를 먼저 고민해야 함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