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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폴리피자 Jun 07. 2023

육아도 익숙해지나요?

육아 플러스 살림왕이 되어갑니다.

인생은 아이가 생기기 전과 후로 나뉜다.


참 상투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어쩌면 나도 모르게 전과 후의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후 5개월 된 아가를 곁에 두고 있다.


내가 지금 육아를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침에 아이의 울음소리에 나도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러면 하루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된다.


아내는 피곤해서 잠을 더 잔다. 


나는 아가만 조심스레 거실로 데리고 나온다.


아가는 기지개를 켠다. 팔다리를 쭉 펴고 얼굴표정을 찡그리는 건 어디서 배운 거지?


나는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가의 팔다리를 살짝살짝 주물러 주면 방긋 미소를 짓는다. 


잠도 푹 잤겠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다.


아가의 컨디션을 확인하면 나는 화장실로 간다.


머리를 감고 이를 닦는다. 곧장 부엌으로 가 어제 못한 설거지를 시작한다.


설거지를 하면서 늘 같은 생각을 반복한다. 설거지는 너무 싫다. 이건 정말 빨리 해치우고 싶다.


특히 프라이팬 닦는 것은 매번 싫다. 빡빡 문질러야 하고, 무겁고 크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 중에 거실에 누워있는 아이가 소리를 낸다. 


혼자서 그냥 샤우팅 연습 중인지 어디가 불편한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장갑을 빨리 벗고 아기에게 가본다. 


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진다.


나는 다시 가서 장갑을 끼고 접시를 헹군다. 


설거지를 해본 사람은 안다, 어정쩡하게 하면 냄새가 난다는 것을....


나는 뜨거운 물로 빡빡 문지른다. 뽀드득 소리가 나야 마음이 편하다.


부엌을 자주 드나들어서 그런지, 지저분한 꼴을 보기 싫다. 


부엌일은 특히 설거지는 여성보다 남성이 하는 게 낫겠다. 물론 기계가 해주면 베스트다.


식당에 가면 알아서 설거지해주는 그런 거대한 세척기를 한 대 갖다 놓고 싶다.


가정용이 아닌 식당용 말이다. 얼마나 산뜻할까...


냉장고를 열어본다.


한숨을 쉰다. 반찬이 없다. 텅텅 비어있다.


물론 음식이 쌓여서 방치된 것보다는 백배 낫다.


그래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또 싫다. 


뭘 사야 하나, 어디서 장을 볼까. 


어쩌면 산다는 것은 아주 작게는 먹고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회사 다닐 때는 아침식사도 점심식사도 회사에서 해결했다.


더군다나 하는 일이 식품개발 일이니 지겹게 먹곤 했다. 


시장조사를 하다가 먹어보기도 하고, 출시 전 상품 테스트를 하면서 먹는다. 


그리고 집에 와선 소화제를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외식은 상상도 못 한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근처 쇼핑몰 식당가를 가면 사람들이 넘친다.


나만 팍팍한가?


컴퓨터 앞에 앉아 쿠팡에 접속한다.


밑반찬을 사두면 끼니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


역시 한식은 반찬이다.


김치, 깻잎, 콩자반, 장조림. 일단 기본 값이다.


반찬 몇 그램 안 되는데, 생각보다 비싸다. 대용량으로 사야 하나?


매 순간 고민이다.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이게 아닌 거 같은데. 어쩔 수 없구나 익숙해지자....


애가 또 칭얼댄다. 혼자 소리 내는 것을 연습 중인가? 아니면 나를 찾는 것일까?


또 헷갈린다. 


일단 아이에게 또 가본다. 안아주고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 준다.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알아서 운동이 되니, 건강해진다. 정신도 건강해지길 바랄 뿐...


국은 된장국으로 할까 김치를 넣고 끓일까....


국 끓이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냥 다 때려 넣으면 그만이다.


된장 풀고, 두부 넣고, 대파 넣고, 양파도 넣고, 애호박도 썰어주고 그러면 끝이다.


맛은 그냥 된장국이다.


아가는 항상 나를 찾는다. 내가 가까이 가면 소리를 안 낸다.


나를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나를 찾고 좋아해 주는 아가가 있어 행복하다.


회사를 떠나니 모든 연락이 끊겼다. 


퇴직한 임원이 헌신해서 다닌 회사를 떠났더니 모든 인맥이 끊겼다며 우울해하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나야 회사에 헌신하지 않았고, 재직 기간이 임원에 비할 바 아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덜 하다.


그래도 아무 연락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지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아가가 나를 찾아줘 그냥 고맙다.


나의 육아는 계속될 것이고, 언젠가 위임해야 할 가정 살림은 돈을 열심히 벌어 돈으로 발라 버릴 것이다.


그렇게 굳건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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