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쓰는 글은 어떨까? 어떻게 전개가 될까?
회사를 관두고 평일 낮에 대형서점에 가곤 했다.
한가한 매장에서 여유 있게 책을 살펴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스무 살 때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광화문 교보문고를 갔을 때 기분이 떠오른다.
이렇게 큰 서점이 있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문구류 상품도 다양했고 핫트랙에서 신곡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대형서점에서 기분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곤 했다.
대학생 때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에는 괜히 광화문에 들렀다. 아예 수업이 없는 날에는 아침 일찍 서점에 가서 잡지도 보고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눈 호강을 즐겼다.
이런 설레는 기억을 떠 올리며 서점 가서 책 구경하는 건 소중한 습관이 됐다.
무엇보다 매대를 꽉 채운 책을 살피면 요즘 세상사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볼 수 있었다.
작년부터 유난히 "마흔에 읽는 000"시리즈 책이 눈에 띄곤 했다.
꼭 마흔이어야만 하는가? 마흔이 상징적인 나이인가?
괜히 마음이 좀 더 진중해지고, 어깨가 무거워진다. 나는 여전히 눈 뜨면 설렜던 스무 살이고 싶었다.
서른이 됐을 때 20대를 돌아봤다. " 그래! 30대 때는 더 멋지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야지 "
그렇게 서른을 맞이하고 여러 결심을 했었다.
특히 서른 중반에는 반드시 직장을 바꾸거나 직업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유는 졸업 후 여기저기 입사를 위해 취업 원서를 넣었고 그중 합격 한 곳에 와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냥 원 오브 뎀이었지, 무언가 찐하게 갈망하고 미친 듯이 꿈꾸던 그런 곳은 아니었다. 실제 그런 곳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입사와 함께 퇴사를 갈망했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살 수 있게 도와준 회사의 월급에 감사했다. 그 안정감은 참 뿌듯했고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보내 준 출장은 인생에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어려운 소중한 추억이 됐다.
가까운 아시아 국가를 포함해서 멀게는 북유럽까지 다녀왔다.
회사에 지원을 받아 공짜로 해외경험을 해서 소중한 것도 맞지만, 대학생 때 머릿속에 상상했던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마치 꿈이 이뤄진 기분이 들어 더 감동스러웠다.
해외 출장 승인이 나면 숙소를 잡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동선을 짜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논의하고 무엇을 보고 올지 준비하는 그때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나는 주로 협력사 생산 공장을 방문했고, 도심 내 대형 쇼핑몰의 식품관을 둘러보며 시장조사를 했다.
도착하면 운동화로 갈아 신고 미친 듯이 발품 팔며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사진 찍고 기록으로 남기고 필요하면 샘플을 사기도 했다.
협력사와 만나 생산 공장을 둘러보고 상품을 보면서 우리에게 맞는 스펙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를 했다.
저녁에는 맛있는 식사와 가벼운 맥주 한 잔 하며 출장 기분을 더 내곤 했다.
퇴사를 한 지금, 나의 서른에 많은 시간을 보냈던 회사생활을 떠올리니 가슴 설레게 했던 그 순간만 기억에 남는다.
일하다 지치고 짜증 나고 신경질 내며 감정 상했던 순간은 결국 좋은 추억으로 희석이 된다.
코로나 터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갔던 해외출장지에서 나는 어느 정도 마음 정리를 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혼자서 기분도 내고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호텔 라운지에 가서 맥주 한 잔 마시며 차창 밖 도심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늘 머릿속으로 꿈꾸고 상상했던 출장지에서 도심 속 풍경을 보며 느꼈던 낯설고 흥미로운 풍경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실제 마음먹은 생각은 곧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서른 중반을 넘어서 인생의 새로운 경로를 선택했다.
그리고 마흔을 맞이했다.
마흔이 되기 전에 스스로 독립하고 싶었다.
마흔이 넘으면 시행착오를 겪을 자신감이 떨어질지 몰라 무조건 삼십 대에 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서른 중반을 넘어서 마흔이 되기까지 그 기간은 온전히 마흔 이후에 나 다운 인생을 살기 위한 훈련과 연습으로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나날로 가득 채웠다.
후회와 미련도 없다. 너무나 짧게만 느껴진 10년이기에 다만 좀 더 많은 경험과 도전을 했어야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사는 대로 생각했고, 당장 내 앞에 처한 업무적인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시간을 쏟았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회사는 나의 젊음과 에너지를 요구했고 그 대가로 월급을 주고 해외출장을 보내줬다.
마흔이 되어 회사 밖 세상을 마주한 지금, 다시는 못 올 20대와 30대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부름을 받고 그 넘치는 에너지를 가져오는지 알게 되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에너지를 썼어야 했다. 나를 위한 에너지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그게 아닌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 또한 마흔이 되어 알게 된 것이니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그저 지금의 현실을 맞이한 나 자신에 감사하며 마흔을 살고 있다.
딱히 나이를 의식하며 살지 않았는데, 서점가에 유독 눈에 띈 마흔이란 단어가 나에게 생각할 고민을 던져주었다.
마흔 이후의 삶이라 하여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 내며 너무 목표에 집착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