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연락 오지 않는 삶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하여
내 휴대폰은 최신 기기가 아니다.
더 이상 전화 할 일도 카톡을 자주 할 일도 없다.
그래서 휴대폰은 알람이나 시계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는 용도로 쓴다.
한 때는 쉬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나 카톡으로 피곤했었다.
회사 업무를 카톡으로 주고받거나 보고를 하는 상황도 많았다.
온갖 끼고 싶지 않은 단체대화방에 반 강제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직장 생활할 때 한 번은 기차를 타고 아내와 함께 처가댁에 가는 중이었다.
주말이기에 카톡을 보기도 싫었고 답장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팀 단체방에서 뭔가 대화가 오 갔고, 나는 읽지도 답하지도 않았다.
주말이었고 벗어나고 싶었다.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한 소리 들었다.
단톡방에서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냥 내가 싫었나 보다.
그런 이유로 퇴사 즉시 나는 모든 업무 관련 단톡방에서 뛰쳐나왔고 정말 홀가분했다.
온갖 단톡방에서 빠져나오니 한결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내 카톡에 등록된 사람들을 정리했다.
불필요하고 업무적으로 엮인 모든 인연을 다 정리했다.
덜어 낼수록 마음이 가벼워졌다.
친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전화 온 직장 동료도 있었다 퇴사하고 내 삶이 궁금했나 보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과거 인간관계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고, 형식적인 카톡 인사에 답장하지 않았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무실 내 자리에 돌아오면 잠깐 주목받을 때가 있다.
메신저로 연락이 오고, 잠깐 차 한 잔 하자고 불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궁금했나 보다. 회사를 당장 떠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은 퇴사자의 생각이 궁금할 수도 있다.
어디 가나 호사가는 늘 존재했고, 여기저기 물어온 재미난 이야기로 입담을 과시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런 류의 먹잇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입사 때부터 쭉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했던 회사 사람들이 있었다.
주로 입사 동기였다.
출근하면 메신저에 항상 불이 켜있었고, 언제나 기분 좋은 가벼운 농담이나 서로 잘해보자며 격려를 해주는 그런 대화도 즐겼다.
그래서 그런지 퇴사할 때 제법 친하게 지낸 사람들과 관계과 끝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정도 들었고, 추억도 있고 그랬다.
그런 인간관계가 정리될 생각 하니 어딘지 마음이 무거웠다.
퇴사하고 한 동안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웠다.
습관적으로 회사 가면 아침에 친한 사람과 커피 한 잔 하며 하루를 시작했고, 메신저 대화로 점심 메뉴를 논하며 직장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했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인연이 생기거나 만들 의지도 없었다.
당장 내가 살아야 했고, 나는 내 갈길을 가야만 했다.
고립과 외로움 그리고 인간과계 단절은 결국 내가 수용하고 슬기롭게 넘겨야 하는 과제였다.
시간이 지나니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연락이 줄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서로를 찾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화가 지속되지 못했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이 다르니 공통의 대화 주제가 없었다.
그래서 시절인연에 오히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우리가 웃고 떠들며 서로 도왔던 그 시절만큼은 값진 시간이었고, 그래서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만드는 고마운 동기도 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보는 것 같다. 회사 이야기부터 사는 이야기까지 그때 그 시절의 나눴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육아라는 공동의 테마는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과거 4년 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인생을 살았다.
생각의 폭이나 넓이 관심사 고민거리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해졌다.
그래서 과거의 사람들과 대화가 술술 잘 안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나는 그것을 못 마땅해하지 않는다.
각자가 다를 뿐이다.
시간이 흐르니 그리고 마흔이 되니 인간관계에 딱히 원칙을 세우지 않았지만,
내 곁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 대한 경계가 명확할 뿐이다.
시절인연은 존재했고 그 인연을 붙잡고 싶던 나 또한 그 시점에 존재했다.
상황과 환경은 바뀌었고, 지금 내 마흔 시절의 인연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 새로운 인연을 위해 나는 그저 오늘도 내일도 내 갈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아주 작게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좀 더 나은 인연을 위해 오늘도 인내할 뿐이다.
모두가 나 같을 순 없다. 나는 맞고 누군가가 틀리거나 그 반대일 필요는 없다.
나는 항상 내가 틀렸을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둔다.
아마 조직을 떠나 가장 먼저 뜯어고친 사고방식이 바로 "내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나를 포장했어야 했고, 괜히 억지스럽게 강한 척했다.
뭔가 대립하는 상황이 생겨 내가 양보하거나 물러서면 손해를 보는 경우를 경험했다.
직장생활에서 말하는 일이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단순히 해내는 일과 일을 처리하며 마주하는 인간관계라는 정치영역까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 발 나아간다.
그런 맞물림 속에 수면 아래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서로를 끌어내기에 바쁘기도 하다.
경쟁은 필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나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하나 둘 더해지기 시작하며 사회 속 또 다른 내가 생겼고 그런 나와 관계를 맺는 타인이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허물을 벗고 진정한 내가 드러나면서 자연스레 인간관계가 다시 새롭게 구분된다.
그래서 아쉬울 필요도 없고 그냥 잠시 그때 함께 웃을 수 있어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되새길 뿐이다.
그저 나는 내가 잘 되길 바라고 좋은 인연을 맺는 누군가에게 더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