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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룰때 Apr 19. 2023

복직이 두렵습니다.


이게 다 난방비 때문이다. 겨울 내내 3번의 고지서 폭탄을 맞았는데 그때가 첫 폭탄이었다. 중간에 3, 4개월 잠깐 복직한 것만 빼면 무려 7년 동안의 휴직이었다. 강산도 칠 할은 변해있을 시간이다. 이러저러 구구절절한 인생사도 큰 몫 했겠지만은 전처럼은 다시 일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레 먹은 겁 때문에 한 해, 또 한 해 그렇게 2023년이 될 때까지 몇 번의 복직을 미뤄뒀었다. 그러다 자칫 복직이 아닌 퇴직을 결정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몇 년의 고민이 단 1초 만에 결정 났다. 지난겨울을 훈훈히 보내고 난 후에 치러야 할 냉혹한 대가가 고지서에 적혀있었다. 그걸 펼쳐들자 마자 남편에게 말했다.


“나, 복직해야겠는데?”




폭탄 맞고 등 떠밀려 한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복직을 위한 나름의 준비는 하고팠다. 난방비가 복직을 할까, 말까의 망설임을 화끈히 날려주었지만 ‘과연 내가 복직하면 전처럼 일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은 100% 다 날려주지 못했다. 그런 나의 불안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었다.


일단, 내 업무는 태반이 전화상담, 대면상담인 일인데, 일단 말이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 7년여 세월 동안 줄곧 내 입이 말한 말은 “빨리 먹어!” “빨리 옷 입어!” “얼른 유치원 가야지!” “얼른 눈 감고 자!” 정도인데 하루아침에 “고객님. 불입하시는 금액이 10년이 넘어서 ~~ 해서 연금지급 대상이 되시고요. 어쩌고저쩌고”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리 없었다. 말은 구강근육운동이다. 안 움직여본 근육은 퇴화되기 마련이다. 다른 건 몰라도 입 터는 일만은 자신감 뿜뿜이 있던 내가 이젠 말이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복직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쉐도잉이었다.


영어공부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 사십 년 넘게 줄 곧 사용해 왔던 한국말 훈련을 위해서다. 산책을 할 때면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입으로 씨부렁씨부렁 진행자의 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열심히 구강근육을 단련했다. 들어주는 이는 우리 남편밖에 없지만 남편을 상태로 TV방송 비평 따위나 가끔 정치, 경제 같은 낯선 주제로 입도 털어보았다. 그러다 보니 전성기의 한 60프로 정도는 입근육이 제 기능을 하는 듯하다. 나머지 30,40%는 회사 일에 젖어들다 보면 자연스레 원복 되리라 믿는다. 믿어본다.


또 하나의 문제는 머리... 한때는 평균 시속 7, 80킬로로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던 머리였다. 쉽사리 멈출 줄 몰랐다.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지금은 시내도로를 4, 50킬로로 서행하는 수준이다. 잠깐의 신호나 보행자 등 사소한 방해에도 머리에는 브레이크가 걸린다. 다시 시동을 걸기까지의 시간은 말해 무엇하리. 세월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나한테는 이런 일은 없으리라 근거 없이 믿은 무지함을 탓하겠다.


하루는 초2 아들의 사고력 수학 문제집을 몇 문제 풀었다. 문제 풀다 막혀서 엄마에게 물었는데, 엄마한테서도 막히니 답답하게 막힌 아들 속 좀 풀어줄 요량으로 미리 몇 문제 풀어보기로 했다. 쉽고 단순한 문제들이었지만 마치 오랫동안 안 쓰던 근육을 푸는 듯 머릿속이 개운하고 시원해짐을 느꼈다. 뇌를 일깨우기 위해서는 낯선 것,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데, 아들의 초2 수학문제가 나에게는 낯설고도 신선한 자극인가 보다.


그 후로도 며칠 동안 매일 아침 수학 문제를 몇 문제 풀었는데 나름 성취감도 있고 머리가 맑아지며 나름의 속도로 머리가 제법 잘 굴러감을 느꼈다. 속도야 어찌 되었든 운전대로 방향 잘 잡고 나만의 속도대로 여유 있게 굴러갈 수 있음 그걸로 되었다. 빛의 속도로 거침없이 무작정 앞으로만 달리고 달리기만 했던 2, 30대가 이제는 그렇게 부럽지만은 않다.


그렇게 제하고 제하고도 한 가지 가장 큰 불안이 남았다. 바로 육아와 집안 살림이다. 태어나 내가 해본 일 중에 육아와 살림이 가장 초고난이도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라는 것이 있다. 끝! 끝이 있어야 비로소 “아! 끝났다.”라는 휴식의 시작점이 있고 그와 동시에 성취감을 느낀다. 그러나 세상에. 이 육아와 살림에는 끝이라는 것이 없다. 무한이다. 무간지옥처럼 시지프스처럼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똑같은 일이 매일 무한 반복된다. 성취감, 자존감 따위 충전할 필요 없는 로봇이라면 좀 나았을까? 하나 이 사람은 로봇이 될 재간이 없다.


이걸 도대체 어찌할까. 복직을 하게 되면 육아와 살림을 전처럼은 할 수는 없다. 일을 줄이고 줄여보아도 육아는 줄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집안 살림인데. 매일의 잠으로 딱 하루씩 만큼의 체력을 보충하는 나의 위태한 체력으로는 회사일 하며 살림살이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살림살이를 외주를 주려고 했다. 어떤 집안일을, 주 몇 회로 외주 줄지 곰곰이 따져보았다. 일하는 방식이나 마음에 맞지 않는 이모님을 만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렇게 며칠 고민을 거듭한 결과, 결국 외주를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전에도 하지 않았던 청소를 이제와 왜 굳이 돈을 써가며 해야 하냐?”


어수선한 집에서 잘 참고 살아주는 남편의 말이었다. 명쾌한 그의 말에 그냥 어수선한 대로, 덜 깔끔한 채로 견디며 살아보기로 했다. 정 힘들 때는 남편이 나서서 청소를 하겠다 한다. 믿음은 가지 않는 약속이지만 믿어보기로 해본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불안했다. 과연 회사에서는 전처럼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그 무렵 회사 선배와 통화를 했다. 고민하는 내게 선배가 말했다.


“몇 년씩 일을 쉬었는데, 못하는 게 정상이지. 잘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아…! 그간 복직하면 잘해야 된다며 그렇게 비정상적이고 유별난 요구를 나 자신에게 하면서 그렇게도 불안에 떨고 있었구나. 못하는 지금이 지극히 정상인 것인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데... 무심결에 한 선배의 말이 난방비 폭탄처럼 세차게 내 안의 불안의 찌꺼기마저 남김없이 날려버렸다. 그 후로는 그 ‘4월 3일’이 두렵지 않았다. 첫 출근일이 공포의 날이 아닌, 그저 담백한 복직의 날로 느껴졌다.


좀 많이도 둘러왔지만 원래 있던 그 자리로 아주 자연스레 돌아와 앉았다. 부족한 지금의 나를 인정하니 모든 게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이제는 기대감마저 생긴다. 내일의 나는 분명 오늘의 나보다 더 잘 해낼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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