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룰때 Aug 02. 2023

방해받지 않는 힘

인생 몰입을 이끌어 낼 때


지익~~ 책상가운데를 빨간 줄 하나가 가로지른다.  

“이거 3.8선 이디. 니 여기에 머리카락 하나도 넘어오지 마레이. 넘어오면 다 내 거 데이.”

지금이라면 ADHD로 진단받았을 법한 초등학교 내 짝꿍. 수업시간에도 하도 찝쩍대며 나를 못 살게 굴던 녀석에게 내가 내린 나름의 금쪽 처방이었다. 짝꿍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상처 하나 받지 않는 표정이다. 이 3.8선 덕분에 수업시간에 짝꿍의 방해에서 나의 집중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다 종이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아쉬운 건 늘 내 쪽이었다. 심심했다.  

“쉬는 시간에는 3.8선도 잠시 쉬는 거 데이. 인자 내랑 같이 놀자~.”

이후로도 책상 위로는 색색깔의 3.8선이 몇 번 덧입혀졌다. 


수십 년이 지나 나에게는 그런 짝꿍이 수없이 많이 생겼다. 나뿐 아니라 이 인류 전체가 내가 가진 짝꿍과 똑같은 짝꿍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본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인터넷 기사, 카톡, 넷플릭스, 전국 팔도의 맛난 디저트 가게들, 게임 등. 이 무수히 많은 짝꿍들 덕에 우리는 더 이상 심심하지 않다. 심심할 틈이 없다. 아마도 인류에게 “심심하다”라는 단어는 잊힐 단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인류에게 심심함은 점점 생소한 감정, 그렇기에 대처하기 어려운 감정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 결과 심심함이라는 단어는 결국 불안이나 두려움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심심함이 사라지면서 생겨나는 문제도 문제지만 가장 우려할만한 일은 우리에게 집중할 힘도 점점 약해져 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 속으로 수많은 정보들이 밀려들고 있다. 그 정보들의 가치나 신뢰성은 둘째치고 어마어마한 정보의 양 때문에 우리의 뇌는 정작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에 집중할 힘을 잃고 있다. 이 길지 않은 글을 쓰고 있는 1시간의 시간 동안에도 나는 네이버 기사를 몇 번이나 훑어보았는지 모른다. (한국인의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2019년에는 하루 평균 3시간이었지만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에는 평균 5시간까지 치솟았다.) 심심할 때가 아닌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해야 할 동안에도 이 짝꿍들은 우리의 의식을 압도해버리고 만다. 우리는 이 짝꿍들의 방해에 익숙해져 방해 없이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인류가 되어가고 있다. 


이 정도쯤 되면 이제는 때때로 이런 짝꿍들 앞에서 과감하게 3.8선을 그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번 긋는 것으로 완벽한 차단을 이뤄내긴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 역사 속에서 인류의 마지막 집중력을 부여잡고 사는 시대의 사람들 일지 모른다. 이 실오라기처럼 마지막 남은 집중력을 부여잡고 짝꿍들의 방해를 넘어 우리네 인생 몰입을 이끌어내야 한다. 자신의 인생의 최후의 몰입을 이끌어내야 하는 시기다. 


 나는 우리가 그간 어떤 식으로 철저하게 방해받아왔는 지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방해의 덫에서 벗어날 노력을 시작할 수 있다 믿는다. 이 책은 나를 방해하는 것들에 대한 관찰의 기록이며, 그리고 그 방해 속에서도 온전히 나를 지켜내고자 하는 내 일상의 노력에 대한 기록이다. 이 공간에 머무는 이름 모를 당신도 부디 인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집중력을 부여잡고 인생 최고의 몰입을 이끌어내길 바란다. 수많은 방해에 가려져 우리가 잊고 있는 분명한 사실. 그것은 “우리에게 삶은 단 한번뿐이며, 우리 삶의 끝이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방해들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부디 깨닫기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나라도 꼰대가 되기로 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