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의 착각
오이시스에서 소고기 치맛살 행사를 했다. 누군가가 새벽잠 설쳐가며 기껏 새벽 배송을 해주셨건만 게으른 아줌마라 까맣게 잊고는 냉장고 구석에 5일간 방치해 두었다. 구석에 있는 김치통을 꺼내려다 불쌍한 고기를 발견했다. 혹시나 상해서 핀잔이나 듣진 않을까 가슴 졸이며 식탁 위에 올렸는데, 우리 집 세 남자들은 연신 고기가 연하고 너무 맛있다는 의외의 찬사를 늘어놓았다. 나도 한입 먹어보니 기가 막혔다. 23년도 최고의 고기 맛이다. 다시 오아시스 앱을 열었다. 감사하게도 여전히 행사 중인 똑같은 치맛살을 주문하고 신선하게 도착한 고기를 냉큼 그날 밥상에 올렸다. 또 한 번의 찬사를 기대했건만 남편의 입에서는 " 왜 이렇게 질겨"라는 불평이 질겅거리며 새어 나온다.
같은 판매처, 같은 부위의 고기이고 며칠 뒤에 주문했다고 맛이 이렇게 다를 쏘냐.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방치된 5일"이 생각났다. 5일간 까마득히 잊고 방치해 둔 것이 고기를 연하고 풍미 있게 해 준 것이다. 숙성은 고기만 연하게 풍미 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라는 것을 두고도 숙성이라는 것이 가능하다. 두고두고 생각하면 생각은 깊고 풍부해지고 보다 유연해진다. 그러나 요즘은 좀처럼 생각의 숙성의 맛을 볼 일이 잘 없다. 숙성보다는 속성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책으로 정보나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올 때는 기존의 내 경험과 생각이 머릿속에서 한번 휘저어져 잘 섞이려 애쓰며 읽게 된다. 그렇기에 느리게 읽힌다. 그 과정에서 숙성이 일어난다. 그러나 지금은 블랙홀과 같은 네이버, 구글의 검색창으로 문제의 답을 찾아낸다. 손안에 든 스마트폰에서 원시시대 석기부터 현대의 양자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지식과 정보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여기 내 손바닥 위에서 자유롭게 넘나 든다. 최근에 참으로 느리게 읽고 있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의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디지털 기술은 삶의 작은 질문(보이시에서 가장 맛있는 부리토가게가 어디지? 사무실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뭐지?)에 답하는 능력이 무척 탁월해서 우리는 이 기술이 삶의 커다란 질문에도 쉽게 답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속도에 쉽게 편승하며 빠르게 복제, 유통될 수 있는 지식과 정보의 양과 영향력은 어마무시하게 거대해졌다. 궁금한 것, 알고 싶은 것을 검색어로 잘 압축하면 일순간에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알고리즘이 곧 소크라테스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되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지식과 정보를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필요한 지혜마저도 검색창 앞에 다 얻어낼 수 있으리라 쉽사리 착각에 빠진다.
내가 10년째 결론 내리지 못하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대학원을 갈지 말지다. 처음에는 어마한 학비를 부담하고 학위를 따는 것이 나에게 의미 있을까가 고민의 시작이었고 이후로는 육아로 인한 절대적 시간 부족으로 그 고민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는 이제는 40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내 커리어에 큰 변화가 부담스러워졌다. 그러데 내가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무심결에 스마트폰을 들어 초록창을 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동탄에서 00 대학교 가는 가장 빠른 길(대중교통, 자동차)을 검색하거나 00 대학교 모집요강이나 합격 후기를 검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흘려보낸다. 정작 나는 대학원에 갈지 말지조차 결정하고 있지도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검색의 간편함으로 쉽사리 회피하고 만다. 검색만으로도 무언가 행동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다. 지혜는 실천하는 것이다. 지혜는 기술이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지혜를 운으로 얻으려는 것은 바이올린을 운으로 배우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릭 와이너)
바이올린 켜는 법을 검색하는 것이 마치 바이올린 켜는 연습, 노력을 하고 있다는 착각. 그것이 지식 검색의 간편함이 낳은 가장 치명적인 착각이다. 우리가 살면서 제일 크게 직면하는 인생의 숙제나 문제는 정보나 지식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푼다. 이 지혜는 검색, 탐색으로는 얻어낼 수 없는 경험과 실천이라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우리 삶의 문제들을 적합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삶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세상에 가장 중요한 답은 스마트폰 안에 없다. 가장 값진 인생의 지혜는 스마트폰이 답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그가 답하지 못하는 문제에 더 몰두하고 집중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가 나에게 필요한 지혜로 완성될 때까지 숙성하고 숙성시켜 본다. 제대로 숙성된 인생의 참 맛을 즐길 때를 기다리고 인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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