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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룰때 Oct 24. 2023

오늘도 스트레스를 받고야 말았습니다.

감각 VS 사고

"뭔 이따위야?! (뚜...뚜..뚜)"






제 답변이 시원찮았나 봅니다.

자기 화풀이만 해대다 그냥 전화를 끊습니다.

저도 실수할 때가 있지만 민원인들도 잘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사과를 합니다.

그러나 민원인들은 대체로 사과하지 않습니다.

두 번 볼일 없는 사람에게 굳이 다음을 위한 사과는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어떨 땐 이 분이 그냥 내 화를 돋우기 위한 목적으로 이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상대의 기분을 자극하는 우월감을 느끼며 자신의 화를 해소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오늘 그 어르신은 대성공입니다.

덕분에 저는 퇴근 후 집에 와서도 긴 시간 화가 사그러 들지 않습니다.

그 두 번 볼일 없는 사람들을 저는 매일을 얼굴로, 전화로 만납니다.




사진: Unsplash의Anthony Tran



아이들과 저녁으로 먹을 된장찌개를 준비합니다.

혼자 씩씩대며 양파와 애호박을 듬성듬성 썹니다.

엄마의 심기 따윈 괘념치 않는 우리 아이들은 또 거실에서 야구놀이를 합니다.

불현듯 장난감 야구공 하나가 날라옵니다.

제 머리를 콩 치고는 썰어둔 양파와 애호박 위로 떨어져 버립니다.

"야!!!!!!!!!!!!!!!!!!!"

어디서 그런 발성이 나오는 걸까요?

단전? 40년 치 인생 분노? 아님, 전생?

아마도 쥐라기 시대 공룡으로 살던 기억으로 내지르는 게 아닐까요?

"엄.마.가  집.에.서.  야.구. 하.지. 말.랬.지!!!!!!!!!!!!!!!!"

첫째는 화들짝 글러브를 바닥에 던져버립니다.

둘째는 화들짝 장난감 배트를 바닥에 던져버립니다.






일상의 사소한 스트레스는 받는 그 순간보다도 그 이후가 더 고통스럽습니다.

지속적으로 당시의 트라우마를 반추하면서 그때의 괴로움을 현재로 계속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식은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으면 여기저기 자유롭게 방랑을 합니다.

과거로, 미래로 실존하지 않는 시간 위로 떠도는 것이지요.

의식의 멍 때리기 상태를 뇌과학적으로는 디폴트 네트워크 모드라고 하는데

대개 의식이 이리저리 방랑하다 자신에게 트라우마로 각인된 기억에 붙들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디폴트 네트워크 모드의 반추 기능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부정적 기억이 긍정적 기억보다 훨씬 강렬하기 때문에 쉽게 그 기억에 머물게 되는 것이죠.  






지금은 오후 6시이지만 아직도 내 머리는 오후 2시 그 어르신과의 통화에 머물러있습니다.

오후 2시는 이미 지나가버린, 사라져버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지만 그때의 감정은 여전히 살아서 제 의식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걸 피하고자 하는 게 스트레스이지요.

어차피 받는 거라면 부정적인 영향만큼은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제 의식으로 들어오는 것을 원천봉쇄할 수 없다면 방법은 한 가지, 가급적 빨리 이 스트레스가 빠져나가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화를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지요.

반추의 상태는 현실이 아닌 사고가 지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실재 현실은 저녁 6시이지만 내 사고가 나를 그때 오후 2시로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저녁 6시로 살고 싶다면 몸을 이용하세요.

신체의 감각은 지금, 현재에 내 몸으로 느껴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와 가장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각을 일깨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호흡입니다.

일단 숨을 길게 내쉬는 것이죠.

길게 내쉬고 비워내고 나면 깊게 들이마실 수 있게 됩니다.

깊게 들이마시면 더 길게 내쉴 수 있게 됩니다.

그 긴 호흡에 부정적인 생각을 실어 날려보내는 것입니다.

내 속의 화로 뜨거워진 호흡이 밖으로 나가고

맑고 시원한 새 공기가 내 숨으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호흡을 통한 감각으로 의식을 '바로 지금'으로 소환해 내는 겁니다.






반추가 주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지만, 그것이 현재를 제압할 정도로 과도하다 느껴진다면 감각을 일깨워주세요.

그래서 오후 6시로 돌아오세요.

지금은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여야 할 시간입니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을 준비할 시간입니다.

지금, 오후 6시로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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