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한 회사에서 데이터 분석이라는 일을 집중해서 하려면
그 회사에 충분한 데이터 플랫폼과 분석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지,
그 회사의 비전에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이 포함되어 있는지,
그 회사에 그런 포지션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는지
등이 중요할 수 있다.
근데 뭐,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분석 목적이 있느냐"였다.
내가 운영하는 과정 중 데이터 분석이라는 포지션을 바라보고 관련 학습에 평일 밤낮 할 것 없이 매진해야 하는 과정이 있다.
이 분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다.
아니, 나보다 더 치열하게 사시는 분들이다.
이 분들에게 드리고 싶었던 역량은 딱 이런거다.
우린 무엇을 분석하지?
왜 분석하지?
분석해서 어디에 쓰지?
이런 역량을 드리려고 노력하는 나는
정작 난 그러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절망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절망감과 패배감에 빠질 순 없다.
내게도 나만의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근데, 잠깐 다시 생각해보니
내겐 이미 원석이 있고, 가공법을 알고 있고, 가공할 이유가 있다.
사내 데이터도 있고,
언어와 툴도 어느 정도 다룰 줄 알고,
분석 목표와 방향성도 있다.
필요한건 환경. 분석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다.
솔직하게 교육 PM 업무를 하며 느꼈던 점은,
데이터 분석을 위해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임시 도피처라는 것이었다.
러닝스푼즈의 PM이 된 목적을 그저 트렌드의 폭넓은 이해에만 머물러왔던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고, 내가 여기서 분석 업무를 해야하는 이유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사내 데이터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뜯었던 데이터들로부터 새로운 인사이트를 낼 수 있는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거기에 필요한 플랫폼, 라이브러리, 언어, 툴 할 것 없이 배우고 있다.
아니, 배우려 했다.
22년 6월,
나는 돌연 퇴사를 결심했다.
최근 많은 일을 경험했다.
교육 프로덕트를 기획하고, B2B 제안을 준비하고, 마케팅을 서포트하고, 미팅하고, 그리고 또 교육 프로덕트를 기획하고..
정작 내가 해보고자 했던 '어떠한 업무'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회사의 성장과 비전을 응원하는 직원으로서, 이 경험들이 매우 소중했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내게 그런 도전을 허락해주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의 성장은 '교육 기획과 운영'에서 멈췄고, 앞이 두려워 나아가고자 하지 못했다. 나 자신이 나태해진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제 정말로 내가 가야할 길을 명확히 하고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에,
대표님과 진지한 이야기한 끝에 8월 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어려운 결정에 동의해주신 대표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쌓여있던 휴가가 많아, 당분간 인수인계와 휴가를 반복할 것이고
그렇게 이 회사에서의 동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또 이 자리를 빌어, 러닝스푼즈와 모든 뛰어난 동료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다시 말씀드리고 싶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것을 하기를 좋아할까.
그리고 내린 내 다음 커리어,
바로 서비스 기획과 PM.
솔직히, 앞으로 남은 경제활동에 있어 언제까지나 교육 시장에서 PM을 할 생각은 없었다.
교육 시장에서 내 커리어의 첫 스타트를 시작한 이유는
'비즈니스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다행히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한 느낌이 든다.
적어도, '비즈니스 트렌드를 볼 수 있는 역량과 습관'이 갖춰졌다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 눈 뜨면 보는 아티클, 링크드인에서의 포스팅, 오픈카톡방에서 현업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먼저 본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논문이라도 뒤져서 찾아보고, 현업자와 직접 이야기도 나눠본다.
그럼, 저번 글에서는 데이터 분석에 대해 고민하다가
뜬금없이 갑자기 서비스 기획자 또는 PM으로 내 방향을 설정했을까?
난, 어쨌든 데이터 분석이 하고 싶어.
같은 해 3월, 직장동료와 커피챗을 나누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었다.
"어떤 서비스를 분석하고 싶어요.
크게는 전체적인 전환율 향상을 위한 분석,
작게는 '이게 낫냐 저게 낫냐'에 대한 비교 분석이라도 말이죠."
직장동료는 물었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 실제 정량적인 분석을 한 경험이 있나요?"
...
...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었겠지만,
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관리한다는 핑계로 내 교육에 대해 제대로 분석해보진 못했으니까.
분명 회사에서 해볼 수 있도록 격려와 지원까지 해줬는데 말이다.
그 때 난 뒤통수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마냥,
어떠한 생각이 머릿 속에 쿵 하고 박혔다.
실제로 정량적인 분석을 회사에서 직접적으로 진행해보지 못했다.
내가 해온 것은 정성적인 분석.
교육생들의 편의 및 목적 달성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의미있는 액션을 취했고,
아이디에이션 과정에서 트렌드 키워드를 뽑기 위해 리서치하고,
또는 어떠한 수치들을 보고 "이 경우에는 이럴 것 같다"는 암묵적인 정성 분석까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어떤 회사든 비슷하겠지만 이 곳도 데이터 인프라가 아직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았고,
업무조차 정성적인 부분에서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내게는 2개의 조건이 필요했다.
1. 데이터 분석을 위한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2. 수치화가 가능하고, 좀 더 객관적인 인사이트가 발생하도록 프로덕트가 구성되어야 하는 것
그렇기에 선택한 내 결론은,
이전의 교육 컨텐츠(프로덕트) 기획의 경험을 살려
웹 또는 앱 서비스 기획자로서 어떠한 서비스를 직접 기획 및 설계하고,
가까운 미래에는 직접 설계 구축한 서비스에 대해 Product Analysis를 진행해보고,
그리고 먼 미래에는 진짜 Data-Driven한 PM이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기획한다는 것,
그 안에서 유의미한 가설과 데이터를 발견하고 새로운 어떤 인사이트가 도출되는 것.
이 생각들이 나를 잽싸게 사로잡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획자, PM으로의 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당연히 기회가 된다면, 틈틈이 분석도 함께 해보려고 한다.
내 새로운 결심, 나를 위해 응원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