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알코올 중독자, 좌 CCTV
우 알코올 중독자, 좌 CCTV
터덜터덜 영혼 없는 걸음으로 사무실에 도착한 나를 맞이하는 건, 강 차장과 임 과장이었다. 강 차장은 내 사수였는데, 나는 그에게 알코올 중독자라는 별명을 붙였을 만큼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들은 바로는, 매년 승진에서 밀려나, 내가 입사하기 훨씬 전부터 계속 차장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 행실로 보아 그럴만했다. 강 차장은 업무 시간에는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빈둥대다가 퇴근 시간만 다가오면 눈이 반짝였다.
"우리 다 같이 딱 한잔만 하고 집에 가자고." 집에 돌아가 봐야 반기는 사람 없는 이혼남인 강 차장은 하루 걸러 한 번씩 회식을 제안했다. 동갑내기의 물렁한 부장도 거의 제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있었으니, 법인카드도 제 맘대로 긁어댔다. 덕분에 괴로운 건 팀원들이었다. 나는 퇴근 시간만 다가오면 쥐구멍에 라도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또다시 암흑이 가슴을 파고드는 듯했다.
"임 과장 콜?" 강 차장이 임 과장을 향해 술잔을 꺾는 시늉을 했다. 임 과장도 딱히 반색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매일 자랑하는 세 살 난 아들을 보러, 얼마나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연화 씨도 오늘 퇴근하고 뭐 별일 없지?"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대전에 올라와 살고 있는 내 사정을 알고 있는 강 차장은, 그걸 이용해 매번 술자리에 나를 끼고 다니려고 했다. 엊그제도 회식을 했던 걸 상기하며, 나는 강 차장의 얼굴에 침을 뱉어버리고 싶었지만, 신입사원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답했다.
한우 구이집으로 향했다. 하필이면 꼭 내가 치마를 입고 온 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좌식 식당을 고르는 것 같았다. "자, 다들 한 잔씩 말고, 다 같이 건배!" 억지웃음으로 응해주는 척하며, 들어가지 않는 술을 억지로 털어 넣었다. 아무리 비싸고 맛있는 한우라지만, 나에게는 그저 지우개를 씹는 것과 다름없었다.
"기분도 좋은데, 2차로 노래방 어때? 다들 콜?!" 거나하게 취한 강 차장이 외쳤다. 이런 강 차장보다, 말리지 않고 묵묵부답인 박 부장과 임 과장이 더 야속했다.
노래방에 들어서자마자, 강 차장이 모두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그, 연화 씨는 좀만 있다가 집에 먼저 들어가. 우리는 좀 더 놀다 갈 건데, 뷔페 가는데 도시락 싸들고 갈 수는 없으니까." 음흉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강 차장을 보자, 아까 들어오기 전 노래방 입구에서 검은색 밴에서 내리던 야한 옷차림의 또래 여자들이 우르르 들어가는 것이 생각났다. '아, 그 도우미들이 뷔페 음식들이고, 내가 도시락인 거네? 이런 더러운 새끼!'
그때, 강 차장이 마이크를 내밀며 말했다. “연화 씨! 소녀시대 노래 불러줘!"
반주가 나오고, 겨우 입을 떼서 노래를 시작하자 강 차장이 합세했다. 헤죽거리는 강 차장의 얼굴을 보니 아까 먹은 소고기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적당히 불러주다가, 다들 노래에 취해 정신없는 틈을 타 슬쩍 룸 밖으로 나가보았지만, 갈 곳이 없어 일단 화장실로 들어갔다.
가방을 룸에 놓고 나와버렸다. 설사 이대로 집에 간다 하더라도, 내일 출근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룸에는 절대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연화는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하고 처량하게 느껴져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암흑의 냉기가 나를 더욱 차갑게 끌어안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까, 임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화야. 연화야. 너 거기 있니? 너 화장실 안에 있어?"
조심스레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임 과장이었다. 가방을 내주며 자기가 잘 말하겠다며, 나를 다독여 집에 보내주었다. 이럴 때는 가끔 강 차장의 손아귀에서 나를 구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 과장도 나를 괴롭히는 데는 강 차장 못지않았다.
임 과장의 별명은 CCTV였다. 대각선에 앉아 수시로 내가 무얼 하는지 체크하기에 붙인 별명이었다. 이제는 업무 중에도 시도 때도 없이 암흑이 가슴을 후벼 팠다. 잠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일단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사무실을 나섰지만 딱히 숨을 곳이 없는 회사 안이었다. 노래방에서나 회사에서나 숨을 곳이라곤 화장실뿐이었다.
잠깐 숨을 돌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기가 무섭게 임 과장이 불렀다. “연화야, 잠깐 얘기 좀 하자. 저기 회의실로 와”
회의실에 마주 앉은 임 과장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너 오늘 벌써 4번을 나갔다 왔네. 그리고 아까 오전에는 나가서 18분이 지나서 들어오더라.”
그걸 다 일일이 체크하고 있었단 말에 어이가 없었다. 겨우 진정시켰던 암흑이 더욱더 커져서 내 숨통을 옥죄여오는 듯했다.
“내가 쉬러 나가도 10분 넘기지 말라고 했잖아. 연화야, 널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특히 여기는 남자들이 많은 회사라서 몇 안 되는 여사원들한테 늘 관심이 많다고. 몸가짐을 조심해야 돼. 네가 튀는 행동을 조금만 해도 우리 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온단 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내가 해야 할 대답이라곤 "네, 알겠습니다" 밖에 없었다.
짧게 혹은 길게, 진지하게 혹은 흘러가 듯, 이런 대화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어졌다. 임 과장은 남중, 남고, 공대를 나와 ROTC 출신이었다. 전 직장도 이와 마찬가지로 남성들만 다니는 제조업에 다녔다. 여태껏 상명하복 체계가 명확한 문화에서 살아왔기에, 나도 그걸 맞춰주길 바랐다. 하지만 상명하복과 군대 문화가 찌들어 있는 남자들 틈에서의 회사 생활이 나에게는 버겁게만 느껴졌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던 나의 첫 사회생활은 이렇게 우 알코올 중독자, 좌 CCTV가 번갈아 가며 살포시 지르밟아 주고 있었다. 3개월 전만 해도, 취업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대학 4년 내내 취업 준비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취업할 때 인맥에 도움이 된다는 학술 동아리 가입, 각종 공모전 수상, 매 학기 토익 점수 업그레이드, 기타 자격증 준비, 취업 스터디, 영어 회화 스터디 등등.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마지막 학기 종강 때까지도 취업을 못해서 안절부절못했다.
아무래도 졸업자 신분보다는 예비 졸업자가 취업에 더 유리할 것 같아, 한 학기 더 등록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경비실을 지나 차들이 다닥다닥 늘어선 곳을 지나고 있을 때쯤,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이번 2011년 신입사원 공개채용에 응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삼성전자는 이번 기회에 귀하를 모실 수 없게 되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귀하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하루에만 벌써 6번째 불합격 통보 문자였다. 어디 하나 써주는 곳 없이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서러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경비 아저씨도 있고 동네 사람들도 보는 앞에서 울 수는 없었다. 주차되어 있는 흰색 아반떼와 검은색 쏘렌토 사이에 몸을 숨겼다. 쪼그려 앉아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겨우 틀어막았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붉게 눈물을 머금은 눈을 누구에게 들킬 새라 고개를 숙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14층. 현관문을 열고 재빠르게 방으로 들어갔다. 방 문 너머로 꺽꺽 우는 소리가 새어나갈 새라 이불을 덮고 두 손바닥을 겹쳐 입을 막았다. 이불속, 발 밑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음 날 오후, 한 군데에서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다. 5일 뒤 면접이었다. 갈 때 입고 갈 검은색 단정한 치마 정장과 흰색 블라우스를 다시 한번 다림질했다. 취업 스터디에도 참석해 면접 시뮬레이션을 했다.
면접을 보러 가는 당일 아침, 아버지가 말했다. 지난밤 꿈에 현관문이 열려 있었는데,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집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왠지 예감이 좋았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전날 면접을 망친 것 같아, 풀이 죽어 밥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혹시 기다리던 전화일까 살짝 기대를 하며,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전화를 받았다. 면접 때 안내해 주던 인사 팀원이었다. 자동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서 연신 감사하다고 외쳤다. 통화가 끝나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곤 다시 벌떡 일어나 온 집안을 방방 뛰어다니며 외쳤다. "합격했다!"
이튿날 아침, 집 앞으로 꽃 바구니가 배달되었다. 알록달록 화려한 꽃들 사이에 편지가 꽂혀 있었다.
자녀분의 미래 오토모티브(주)신입사원 공채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자녀분을 훌륭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야, 딸내미 덕분에 이런 꽃 바구니도 받아보네!"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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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배낭 여행을 다녀온 이 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블로그에 쓰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