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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핑거 Jul 13. 2023

10화. 죽음의 코스, 라오스/캄보디아 국경 넘기

30시간 동안 버스에서 살아남기

치앙마이를 끝으로 태국을 떠나, 라오스로 넘어갔다. 고즈넉한 마을인 루앙프라방에서는 탁발 체험을 하고, 액티비티 천국인 방비엥을 거쳐, 수도인 비엔티안까지 순탄하게 여정을 이어나갔다. 


루앙푸라방 탁발 현장 



사실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치앙마이에서 루앙프라방까지 14시간 정도 걸린 육로 여행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비엔티안에서는 국수를 먹고서는 물갈이를 해서 3일 동안 구토와 설사에 시달리며 죽다 살아나기도 했다. 



다시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고, 비엔티안에서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까지 육로로 국경을 넘어 가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다른 나라를 갈 수 없는 우리나라와 달리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묘하게 낭만적이기 까지 했다. 그래서 14시간 동안 버스에서 겪었던 고통도 금세 잊은 채,  장장 2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 버스 여행 패키지를 덜컥 예약하고 탔던 것이 화근이었다.



비엔티안에서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팍세까지는 11시간 동안 침대버스에 누워 잠만 잤다. 중간에 속이 울렁거리고, 골반이 아파 잠을 설쳤지만 옆에 뚫린 창으로 별을 보며 누워 갈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팍세에 도착해, 침대버스에서 내려 미니밴을 탔다. 이때부터 생고생이 시작되었다. 한 5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내려서 툭툭으로 갈아탔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가더니, 또 다른 미니밴으로 바꿔 타야했다. 얼마나 더 갈아타야 하는 건지, 프놈펜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볼라 치면,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그저 “기다려라. 타라.” 는 말만 돌아왔다. 



비포장 도로를 엄청난 속도로 달려서 미니밴은 심하게 덜컹거리고 온몸이 들썩거렸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더 달려 드디어 라오스와 캄보디아 국경에 도착했다. 먼저 라오스 출국 사무소에 갔다. 출국 도장을 찍어주는 명목으로 뇌물($2)을 요구했다. 국경에 서식하며 여행자들의 돈을 갈취한다는 그 유명한 ‘투달러 도둑’들이었다. 옆에 있던 외국인 커플도 F단어를 썩어가며 대들어 보다가 어쩔 수 없으니 내고 만다. 사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지만,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을 내는 거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지갑에서 2만 낍(약 $1)을 겨우 찾아내 내밀었지만, 요구 금액에 못 미치자 “원달러(1dollar)!”를 외쳐댔다. 가방을 뒤지다가 말레이시아 화폐가 보여, 남아있던 16링깃을 다 내주었다. 경황이 없어서 환율 계산도 제대로 못했다. 대체 얼마를 낸 건지 나중에 계산 해보니 16링깃은 5천원 쯤이었다. 두 배를 낸 셈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치르고 겨우 출국 도장을 받고 나와서, 5분 정도 걸으니 바로 앞에 캄보디아 입국 사무소가 있었다. 동남아의 다른 나라와 달리 캄보디아는 비자가 필요했다. 비치된 신청서에 기재를 하고 입국 수속을 받았다. 그러자 비자발급 비용으로 35달러를 요구했다. 공식 비용은 $30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 또 바가지를 씌우고 있었다. 



어쨌든 비자를 발급 받은 후 다시 줄로 막아놓은 경계선을 따라 걸어갔다. 다시 직원이 비자가 날인된 여권을 검토하면서 어김없이 뇌물($2)를 요구했다. 돈이 없다고 우기자, 만약에 뒤져서 돈이 나오면 두 배를 내야 할거라고 협박까지 했다. 그때 버스 기사가 와서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어쩔 수 없이 10달러를 내고 9달러를 거슬러 받고 나왔다.



여기서 부터는 캄보디아로 넘어왔으니, 또 다른 버스를 타야했다. 배낭을 싣고 버스에 오르니 만석이었다. 운전 기사는 옆에 조그만 사이드 자리를 가리켰다.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시간 뒤 몇몇 사람들을 내려주고 다시 출발했다. 타기 전에 분명 기사가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었는데, 종착지를 말한 게 아니었나보다. 다시 두 세시간을 더 달리더니, 시엡림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내려주고는 또 바로 출발했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휴게소에서 쉬어 가겠다고 했다. 버스를 탔을 때 시간을 확인했었는데, 오전 11시였다. 몇 시간째 공복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휴게소에서 무언가 먹어야 하긴 하겠는데, 속이 메스꺼워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다시 출발 하기 전에 프놈펜에는 언제 도착하느냐고 물으니 6시간이 걸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잘못들은 것이라 생각해서, 6시에 도착하는 것이냐고 다시 물어 보았다. 역시 6시간 이라고 했다. 사실 버스를 예약하기 전에 누군가 라오스 - 캄보디아 국경 지대 육로 구간이 ‘죽음의 코스’라고 했었는데, 그 말을 흘려들은 건 내 잘못이었다. 



버스는 어찌나 낡았는지, 구석 구석 먼지가 찌들어 있었고 거미줄이 보이기도 했다. 쌩뚱맞게 ‘자동문’ 이라고 한글이 적혀 있었다. 어딘가에서 들었는데, 한국에서 한 10년 넘게 쓰던 버스를 태국에서 10년 동안 더 쓰다가, 캄보디아로 가져와서 한 20년을 더 쓴다는 말이 있었다. 정말로 그런 것 같았다. 버스가 다 부서질것 같았다. 달리는 게 용하다 싶었다. 게다가 비포장 도로를 달렸는데, 창문이 다 닫혀 있었는데도 어디서 새어 들어오는지 바깥에서 흙먼지와 매연이 차 안으로 다 들어와서 퀴퀴했다. 에어컨은 먹통인건지 땀이 줄줄 흐르고 속은 울렁거리고, 이러다 딱 죽겠다 싶었다. 


이 오래되고 낢아빠짐이 전해졌으면...



‘내가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젊을 때 이런 고생 해보는 거지, 언제 해보겠어? 나이들어서는 이런 후진국에 와서 이런 경험하기엔 더 힘들테니까, 젊을 때 이런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인내심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 거야.’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 안에서 긍정과 부정이 계속 싸워댔다.





이미 바깥은 어둠이 짙게 깔렸다. 기사가 말한대로 라면 프놈펜에 거의 다 왔을텐데, 여전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승객들이 목이 빠져라 도착하기만을 고대했다. 드디어 프놈펜에 도착해, 숙소를 겨우 찾아 체크인을 하고 보니 비엔티안을 출발해서 여기까지 꼬박 30시간이 걸렸다. 서둘러 양치부터 했다. 



비엔티안에서 버스를 타기 전 부터 화장실을 갈 때 마다 양치를 도전했지만 다 실패로 돌아갔다. 그 흔한 세면대와 수도꼭지 하나가 없었다. 양치 한번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딱 볼일만 보고 나와야 하는 다 쓰러져가는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2천 킵(약 260원)을 내야 했다. 어디서든 공짜로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있는 한국이 그리웠다. 평소 당연하다 여기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니, 새삼 사소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 



그렇게 온갖 고생을 하며 라오스, 캄보디아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방콕으로 돌아와 찐짜이와 민을 다시 방문했다. 동남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민과 둘이서 ‘칸차나부리’라는 근교로 1박 2일 기차 여행을 다녀왔다. 찐짜이에 따르면, 이렇게 민이 카우치 숙박 게스트와 하룻밤을 지내다 올 수 있도록 허락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나를 믿어줘서 고마웠다. 사실 내가 민을 케어했다기 보다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어른스러웠던 민에게 내가 의지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찐짜이와 민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끝으로, 3개월 간의 동남아 여행을 마무리하고 호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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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배낭 여행을 다녀온 이 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블로그에 쓰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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