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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achyoo Aug 05. 2015

수세미

짧은 채소 이야기3




엄마가 돌아가신게 엊그제 같은데... 큰언니는 저소리를 반복하곤 했는데, 이렇다 할 말이 없으면 가져온 소주를 갈대밭에 뿌리곤 했다. 우리 자매는 거의 만나지 않지만 어머니 기일이 되면 특별한 연락이 없이도 모였다. 큰언니, 시월에 상히가 결혼을 한담서? 막내가 괜한 침묵을 깨면서 물었다. 소주 뚜껑을 닫던 큰언니는 막내가 깬 침묵이 애석하단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혼기가 꽉 찼응께. 별다를 것 없이 갈대밭을 나왔다. 네녠 잘지내는 것 같으니 큰언니는 마음이 편하다며 형식적인 말들이 오갔고 형편이 힘든대로 막내에게 봉투를 쥐어주었다. 막내는 혼삿길 앞두고 내사 이런걸 받아야쓰겠냐면서도 나는 막내의 안심한 미간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침에 청소를 해둔 그대로였다. 띠리링, 엄마 집에 있었네? 오늘 이모들 만난다면서? 만나고왔지. 너는 어인일로 일찍이야? 성격이 나와 똑닮은 큰 딸이 토끼눈을 뜨며 방으로 들어간다. 네 할머니 보고싶지 않으냐? 어릴적 기억이 나지않으냐? 묻는 말에 핸드폰만 쳐다보며 응, 기억안나. 할머니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잖아. 아, 그건 기억난다. 할머니 살아계셨을 때 우리집으로 이상한 물건 보내셨잖아.

어머니에 대한 내 기억을 회상해보면 참으로 '불쌍한 인생' 으로뿐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한번 다녀온 아버지와 새살림을 차리면서도 축복 받지 못했다. 딸 셋 혹을 달았다며 구박하던 시어머니 등살에 늘 배겨 살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치매를 앓아왔고, 어머니는 우리 딸들을 출가 보내고도 아이하나를 다시 키우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마당에 상추니 깻잎이니 고구마 등을 심으셨고, 새벽 버스 첫차를 타고 읍내 장을 도셨다. 자신만큼 조막만한 소쿠리에 고구마줄기를 담아놓고 쭈구려 앉아 아무개를 기다리다가 점심때가 되면 밥을 고추장에 아무렇게나 비벼드셨다. 과일트럭이 그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데도 어머니는 등에 햇살을 맞으며 조용히 졸고 계셨다.

'이것이 수세미니깨 쓱어라' 어머니가 87세가 되던 해, 우리집은 이사를 했다. 우리는 읍내에서도 30분정도 거리에 살아서 전에 살던 집은 어머니를 자주 뵐 수 있었지만 큰딸과 한살 터울 작은 아들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우리부부는 학교를 전학시키기로 했고, 이참에 남편회사 근처로 옮기기로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우리집에 갖가지 것들을 부쳐오셨다. '도시에는 일넌것이 업으니 알아서 쓰어라' 상자 안에는 멸치똥과 대가리를 다듬은 마른 멸치, 깐마늘, 부서진 다시다, 그리고 손질해놓은 수세미가 있었고 어머니는 이것을 한달에 한번씩 보내셨다. 손도 애린 사람이 몸좀 생각하라며, 말리는 나였지만 사실 나는 그것을 참 요기나게 썼었다.

이상한 기운이 들었던 그 날,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큰이는 잘살아 남이 된 기분이고 막내는 오지게 못살아 짐이 되는것 같아 전화를 못하겠다며 평소 같지 않은 어머니 말투에, 무슨일이 있냐며 묻는 내게 어머니는 동문서답이셨다. 수세미는 잘쓰고 있는겨? 그럼, 엄마 보내준 거 잘써. 내심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컸지만, 그렇게만 대답했다.

수세미들이 한여름에 얼마나 잘 크는지 모른다. 고것들이 첨에는 말도 않고 어디 뵈지도 않다가 꽃이 피구 배때기 내놓으며 대롱대롱 매달리는디, 그게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자식을 또 키우는 맛이지. 어머니는 미세한 너털웃음을 짓더니 숨을 가다듬는다. 수세미 잘 쓰거라. 애미가 늙어서 살갑게 니네랑 붙어있고싶어도 다 짐인거를 내가 다 안다. 보내준 돈으로 전세방 얻어가 잘 살고 있어 고맙다. 짐이 되기 싫어 네가 들어오라는데도 나는 맘이 그렇지 못하더라. 가서 설거지나 빨래나 하더라도, 늙은이 돌아댕기면 손자 손녀딸들 공부하는데 올매나 맘이 불편하겠냐. 그래, 수세미가 엄마 손이다 생각하고 쓰라고 보냈다. 남사시러 글로 쓰더라도 머리가 아파 맘대로 안되는걸. 그래가 전화남겼다.

나는 애써 울음을 참았다. 전화를 끊은 뒤 한숨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날 어머니 집으로 곧장 가보니 한 풀 여름이 꺾인 후엔 읍내도 나가지 않으셨는지, 어머니 신발에는 모래니 잡풀들이 가득했다. 들어가보니 어머니는 뽀얀 얼굴로 잠에 들었다. 손을 만져보니 차가웠다. 어머니 옆에 누워서,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잠이 들었다.

바람이 여러차례 불었다. 깻잎이니 상추니 뜯어먹은 것은 벌레들 뿐이었고, 마당에 매달린 수세미들이 엄마의 자식처럼 흐드러지게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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