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즈 밴드. 걸즈 밴드는 가끔 들으십니까. 이렇게 누구에게 향하는지도 모르겠는 질문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어느새 툭 하고 내 앞에 놓여 있는 음악들이 있다. 챠토몬치의 음악들도 그렇게 불쑥 나를 찾아왔다. 챠토몬치는 일본의 여성 록밴드다. 2005년에 3인조 걸밴드로 메이저 데뷔 후 2인조 체제를 거쳐(드러머의 탈퇴) 2018년 공식 해산할 때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챠토몬치를 처음 들었을 때 와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밴드 내에서 보컬과 기타를 담당하며 거의 모든 곡을 작곡한 하시모토 에리코 씨의 팬이 된 것도 사실상 그 시기를 같이한다. 당시에는 일본 음악을 듣는 사람도 적었거니와 챠토몬치가 일본에서는 유명했지만 한국에서는 일본 음악 마니아가 아니라면 거의 인지도가 없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혼자서 길쭉한 공원 벤치 끝에 앉아 조용히 듣곤 했던 기억이 난다.
챠토몬치가 출연한 공연이야 정말 많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을 꼽아보자면 2012년 록인재팬 페스티벌에서 2인조 체제가 된 후 보여준 퍼포먼스를 고르고 싶다. 2011년 드러머가 탈퇴했지만 2012년 대형 록 페스티벌에서 챠토몬치가 (사운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전히 건재함을 알렸다. 남은 2명이 번갈아서 드럼을 연주하며 비어있는 드러머의 자리를 메꾸었다. ‘우리 둘이서 어떻게든 한다’는 그 정신과 그 모습만으로도 팬으로서 감동이었지만 무엇보다 대표곡 ‘연애 스피리츠’에서 기타 루프 스테이션(연주를 녹음한 후 반복재생할 때 쓰는 장비)을 이용해 기타 리프를 돌려놓고 드럼을 힘껏 치며 말 그대로 ’록한‘ 외침을 들려준 하시모토 씨. 정말 멋있었다.
하나의 현상으로서 존재하는 음악가들은 정말 흔치 않다. 챠토몬치는 해산했지만 그들의 음악은 이미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고 나는 본다. 해가 바뀔 때마다 그들의 소식을 찾아 나섰고 그때마다 ‘와 이런 음악도 하는구나’하고 놀라움을 선사해 준 챠토몬치. 그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런 곡 전개는 어떻게 생각해 내는 것인지, 역시 하시모토 씨는 천재가 아닐까 하고 진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가 한 말처럼 마치 음악의 도깨비가 인간의 탈을 쓰고 나온 것 같은 하시모토 씨의 저력에 공연 영상을 돌려볼 때마다 흠칫 놀라게 된다.
챠토몬치가 해산한 해인 2018년 록킹온재팬 인터뷰를 보면 그녀들도 챠토몬치가 영원히 남을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곡을 카피하는 분들이 많아 이미 어느 정도 영원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 베이시스트 후쿠오카 아키코 씨의 말대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5년이 지난 지금도 챠토몬치를 추억하고 있다. 물론 한편으로 한 밴드의 이야기가 (이미 5년 전에) 끝났고 스스로 지은 완결에서 비롯되는 ‘사람으로서의 자유’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인터뷰 속 하시모토 에리코 씨로부터).
2012년의 공연을 다시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이 가장 록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하시모토 씨의 복장이라고 답할 것이다. 빨간 트레이닝 바지와 풍성한 퍼프소매의 흰 반팔 블라우스가 보여주는 이질적인 조화는 말 그대로 ‘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