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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Apr 19. 2021

너희들은 내 맘을 다 알고 있는 고양?

  우리 집은 작은 다락방과 옥탑 공간이 있는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이다. 다락방은 내가 바로 서기에는 약간 부족한 높이다. 뭐 건축법상 높이를 이 정도밖에 못한다고는 하는데, 아쉽긴 해도 살짝 수구리고 돌아다닌다면 충분히 적당한 취미방 정도로는 활용 가능하다. 옥탑도 화분을 가꾸기나, 한 식구 고기를 구워 먹기엔 충분할 만큼 널찍하고 무엇보다 집 근처 호수공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맘에 쏙 든다.

  반대편에 보이는 다른 꼭대기 층 집들 옥상엔 텐트가 나와있기도 하고, 간이 풀장이 보이기도, 화분이 나란히 줄 서 있기도 하다. 그럼 우리 집엔? 애석하게도 아무것도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게을러서. 그리고 귀찮아서. 다락방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널찍한 공간에 그저 공기만 가득하다.

  영영 이대로 둘 건 아니다. 처음 이사를 올 때부터 계획은 있었다. 이번 달에 태어난 우리 아들이 좀 크면 나도 옥탑에 텐트도 치고, 간이 풀장도 펼칠 생각이다. 다락방엔 아이의 작은 놀이공간도, 내가 조용히 게임을 할 수 있는 취미공간도 만들 계획이다. 물론 이 집에서 얼마나 살 지는 모를 일이고, 정말 실현 가능할지는 더 모를 일이지만.


   처음 지금 집에 이사 오기로 마음먹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다락방이었다. 그런데 왜 여태까지 쓰지 않았냐고? 다락방은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 집의 핵심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생각보다 아이가 늦게 태어나서 다락방이 노는 시간이 좀 길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우리 부부의 소중한 아들이 태어나면서 이젠 다락방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고양이 삼 형제가, 그것도 틈만 나면 우다다다 달리는 활기찬 고양이 삼 형제가 사는 집에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고양이 털이다. 거기에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해도 고양이 화장실 모래가 바닥 여기저기에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냥이들이 내게 주는 사랑과 기쁨, 위로가 워낙 커서 크게 티가 안 나긴 하지만 사실 흩날리는 털이나 모래가 긍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사랑하는 고양이들이라 해도 옷이 걸렸있거나, 침대가 있는 방에는 되도록 못 들어가게 하고 있다.

  비슷한 이유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한동안은 고양이들과 아이가 있는 생활공간을 좀 분리해야겠다 싶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날리는 고양이 털이 아무래도 우리 아이에게 좋을 것 같지만은 않아서. 그래서 그때, 고양이들만의 방이 될 곳이  바로 다락방이었다.


  2021년 4월 2일. 세상 예쁘고 잘생긴 아들, 축복이가 태어났다. 축복이는 태어나고 이틀은 산부인과 신생아실에, 10일은 산후조리원 신생아 실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왔다.


  산후조리원에서 아내와 축복이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다락방을 완벽한 고양이 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육각 렌츠로 캣 트리를 작게 분해해서 옮긴 후 다락방에 다시 조립했다. 막내가 늘 잠을 자는 흔들의자도 분해해서 다락방으로 옮겨줬다. 우리 냥이들 밥그릇과 물그릇도 다락방으로 옮겨줬고,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토퍼, 이불, 담요들도 여기저기 적절한 곳에 깔아줬다. 마지막으로 다락방을 올라가는 계단에 혹시 몰라 방묘문까지 설치를 했다. 캣 트리나 흔들의자가 나무로 된 무겁고 큰 가구들이라 그런지 꼬박 반나절은 걸렸다. 그래도 다 옮겨놓고 보니 나름 아늑한 공간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방 자체는 고양이들이 생활하기 딱 좋아 보이는데, 우리 고양이 삼 형제들이 좀처럼 다락방에 있으려고 하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우리와 같이 거실이며 부엌을 누비고 살다가 난데없이 방 하나에서 지내라고 하니 자기들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나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당장은 축복이가 집에 오려면 며칠 남아있어 다락방 문을 열어두고 적응 기간을 갖고 있지만 안되면 억지로라도 문을 닫아 고양이들이 다락방에 머물게 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적응이라도 해보라고 다락방에 고양이들을 밀어 넣고는 방 문을 닫았다. 처음엔 조용하더니 시간이 좀 지나가 문을 열어달라고 안에서 어찌나 애옹애옹거리던지. 안쓰럽고 미안해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다락방을 고양이 방으로 만들어주고 며칠이 지났다. 아내와 축복이가 집으로 오기 이틀 전 날. 집안 어디에도 첫째가 안 보였다. 혹시나 하고 다락방으로 올라가 보니 이불에 폭 파묻혀서 곤히 자고 있는 첫째가 보였다.

  이런 천사 같은 녀석. 언제나 내가 바라는 행동을 척척 눈치채고는 가장 먼저 해주던 건 우리 사랑둥이 첫째였다. 장난감을 사다 주면 동생들보다 먼저 와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가지고 놀아줬고, 박스로 집을 만들어주면 제일 먼저 들어가서 자리 잡고 눕는 것이 첫째였다. 언제나 엄마 아빠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채고 예쁜 짓만 하던 첫째는 이젠 다락방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다음 날, 그러니까 아내와 축복이가 집에 오기 하루 전 날. 세 고양이가 다 다락방에 올라가서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았다. 밤새 첫째가 동생들한테 말이라도 해준 것인지, 아니면 둘째도, 막내도 이젠 알아서 아빠 맘을 알아준 것인지. 다락방에 있는 캣 트리에, 흔들의자에, 토퍼에 오손도손 모여있는 세 고양이를 보는데 세상 이런 효자들이 또 있을까 싶었다. 내 맘을 어떻게 저렇게 잘 알고 이해해주는지.




  4월 13일. 축복이는 드디어 집으로 왔다. 코로나 때문에 아빠도 산후조리원에 못 들어가는 시국. 나도 일주일 넘어서야 내 눈으로 아들 얼굴을 보게 되었다. 채 일주일도 안된 초보 아빠지만, 아직까진 아들 기저귀 갈고, 밥 먹이고, 트림시키는 매력에 푹 빠져있다. 중간중간 날 향해 무심코 씨-익하고 짓는 미소는 너무 큰 보너스다. 물론, 잠이 많이 모자란 것 같긴 하지만.


  축복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걸 보는 것도 기쁜데, 요즘 날 기쁘게 하는 또 다른 하나는 우리 고양이들 보여주는 배려와 효도(?)이다.

  삼 형제들은 그렇게 다락방 싫다더니 이젠 다락방 활용법을 100% 이해하고 있다. 산후관리사님이 계시는 낮에는 다락방 문을 닫아놓는다. 산후관리사님이 가시고, 축복이가 안방에서 곤히 자고 있으면 다락방 문을 살짝 열어준다. 그러면 우리 삼냥이들은 가만히 나온다. 나와 아내가 반가워서 머리를 우리에게 부비기도 하고,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기도 한다. 자고 있는 동생, 그러니까 축복이를 멀찍이서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오면 총총총하고 다시 다락방으로 알아서 올라간다. 며칠 전까지 다락방 문 좀 열어달라고 서럽게 울어대던 녀석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젠 다락방을 자연스레 드나든다. 

  남들이 그건 억지다고 말할지 몰라도 내 생각엔, 우리 부부와 우리 축복이 때문에 우리 고양이들이 다락방을 쓰는 것 같다. 여태껏 놀았던 그 편한 거실을 두고, 그것도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다락으로 올라가는 것이 꼭 날 위해서 그런 것 같다. 사랑스러운 녀석들. 저 효자들을 어쩌면 좋냐.



  우리 첫째, 둘째, 막내. 말만 못 했지, 내 맘 제일 잘 알아주는 건 이 녀석들이다.

  아니 어쩌면 말을 안 해도 내 맘 다 알 수 있는 건 우리 고양이들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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