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냥이들이 밥을 먹는 시간은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씩이다. 내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리고 퇴근을 하고 집에 왔을 때인 셈이다. 아침엔 건식사료를, 저녁에는 일명 캔이라고 불리는 습식사료를 먹는다.
원래는 아침, 저녁 모두 건식사료를 먹었다. 그러다가 하루 한 번씩은 습식사료를 먹는 이유는 첫째와 둘째가 발치를 하고 나서부터다. 아무리 양치를 해도 첫째, 둘째의 이에 치석을 쌓여갔고, 잇몸 주변이 조금씩은 붉어졌다. 스케일링도 한두 번은 해봤지만 갈수록 커져가는 치주질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낼 수가 없어서 수의사 선생님과 상의 끝에 부분 발치를 했다.
나이 먹은 것도 서러운데 거기에 이빨도 없는 짠한 첫째, 둘째가 딱딱한 건식사료를 먹는 게 너무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캔을 하루에 하나씩 따주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야 매 끼를 캔으로 주고 싶은데 돈이 문제였다. 습식사료가 건식사료보다 비싸다 보니 습식사료로만 챙겨주기엔 경제적인 부담이 컸다. 아들들 캔도 맘대로 못 사주다니. 돈 없는 아빠의 설움이랄까. 오죽하면 소박한 꿈(?) 중 하나가 바로 돈 걱정 없이 우리 아들들에게 맘껏 캔 한 번 줘 보는 거겠는가.
밥 얘기를 하다가 괜히 이런저런 말이 많아졌는데, 우리 냥이들의 지독한 편식 얘기를 하려고 한다.
딱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냥이들은 엄청난 편식쟁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습식사료로 N사의 캔을 먹었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인지 인터넷에서 N사의 캔을 구할 수 없게 됐다. 코로나 때문에 수입이 막힌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냥이들이 늘 먹던 캔을 못 구하게 됐고, 하는 수 없이 다른 제조사들의 캔을 이것저것 사기 시작했다. 자식 사랑이 남다른 아내는 인터넷을 뒤지고, 이것저것 검색을 하더니 가격이 좀 나가도 좋다는 회사들의 캔들을 조금씩 주문했다.
문제는 그렇게 좋은 캔을 가져다줘도 우리 냥이들은 쳐다도 안 본다는 거다. 그릇에 예쁘게 담아 앞에 내밀어도 반응이 시큰둥하다. 셋 중에 한 녀석이 먹어도, 나머지 둘이 안 먹으면 그 캔은 재구매 대상에서 탈락. 그나마 한 녀석이라도 먹으면 다행이다. 어떤 캔은 셋 다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들 좋은 걸로 만들어졌다는 비싼 것들인데, 우리 고양이들에겐 관심 조차 못 받고 말라비틀어져서 버려졌던 캔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렇게 두세 달은 고양이들 입맛에 맞는 캔을 찾아, 이 회사 저 회사 캔들을 조금씩 샀던 것 같다. 제발 좀 먹으라고 말해도, 마음에 안 들면 입도 안 대고 그저 배고프다고 야옹야옹거리기만 하는 녀석들이 어찌나 얄미운지. 다른 고양이들은 캔 따는 소리만 들려도 눈빛이 바뀌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먹는다는데, 우리 집 고양이에겐 딴 세상 이야기였다. 눈에 띄게 살이 빠질 만큼 몇 달간 지독한 편식과 단식투쟁은 계속됐다. 독한 놈들. 내가 배가 고프고, 살이 빠질 망정 먹기 싫어도 절대 먹기 싫다는 강인한 정신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드디어 세 녀석이 다 잘 먹는 습식사료를 찾게 되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캔을 구입하다가 결국을 찾아낸 것이다. 이젠 캔 꺼내는 소리만 들려도 세 녀석 다 총총총 몰려와서는 땡글땡글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입도 안 대고 말라비틀어져가는 습식사료도 이젠 없다. 요새는 그릇 바닥까지 깨끗하게 먹어치우기까지 한다. 그 비싼 캔들 다 남기고 버릴 땐 그렇게 얄밉던데, 이렇게 잘 먹으니까 그저 뿌듯하다.
사실 우리 냥이들은 심한 편식쟁이들이다. 오죽하면 건식사료도 각자 먹는 게 다 다르다. 첫째와 둘째는 K 사료를 먹고, 막내는 N 사료를 먹는다. 그릇에 K 사료가 있어도 막내는 그건 쳐다도 안 보고 N사료 내달라고 한다. 첫째, 둘째도 마찬가지. N 사료는 먹지도 않고 그저 K만 달라고 한다. 심지어 둘째는 자기가 먹는 K사료도 항상 새 걸로만 달라고 한다. 그릇에 담아진 지 오래됐으면 먹지도 않고 다시 사료통에서 새로 사료를 꺼내 달라고 야옹야옹거린다. 죽어도 식은 밥은 싫고, 새 밥만 먹겠다는 모습에 기가 막힌다.
입맛에 맞는 캔을 찾아 헤매는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전에 잘 먹던 N사의 캔을 찾을 때도 여러 회사 캔들을 주문해서 먹여보기도 했고, 이번처럼 입도 안 대고 버리는 캔을 보면서 속상해하기도 했었다.
츄르나 각종 간식들도 마음에 안 들면 절대 안 먹는 우리 고양이들. 엄마, 아빠가 너무 애지중지 키워서 버릇이 나쁘게 든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한 동안은 좋은 걸 줘도 안 먹으니 그저 답답했다. 없어서 못 먹는 것도 아니고, 있어도 자기가 안 먹겠다고 저렇게 시위 아닌 시위를 하니 별 수도 없었다. 어릴 때, 편식한다고 야단치던 엄마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래도 나는 엄마 야단이 무서워서 먹는 척이라도 했지, 저 고양이들은 그런 것도 없다. 그냥 야옹야옹해버리면 그걸로 끝. 천하에 불효자식들.
그래도 그렇게 얄밉던 놈들이 이젠 잘 먹으니까 됐다 싶다. 한동안 부실하게 먹던 저녁을 이젠 잘 먹어서인지, 첫째가 좀 똥실똥실해진 느낌이다. 다행이다. 다시 그릇에 코를 박고 짭짭 대면서 캔을 잘 먹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뭐가 됐든 잘 먹는 걸 보고 안심이 되는 걸 보니 어쩌면 좋은 거, 비싼 거 사줘도 몰라주고 안 먹는다는 얄미웠던 마음보다는 괜히 안 먹어서, 아니면 못 먹어서 탈이라도 날까 봐 하는 걱정이 더 컸었나 보다.
지금부터라도 잘 좀 먹자, 이 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