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날에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 [OO동물병원] O월 O일은 고양이들의 예방 접종 예정일입니다."
곧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문자였다.
고양이 세 마리가 한 번에 병원 방문하는 일이 가벼운 일은 아니다. 캐리어에 싣고, 들고 옮기고, 중간중간 엘리베이터도 눌러야 한고, 현관 비밀번호도 눌러야 하고, 차에도 싣고 내려야 하고. 그래도 우리 아들들 건강하려면 꼭 해야 하는 거니 빼먹을 수도 없는 일.
다행인 건 고양이들이 예방접종 자체를 힘들어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집에서는 고집불통에 깡패들이지만 겁은 또 어찌나 많은지 동물병원에 가면 똥그랗게 눈만 뜨고 두리번 두리번하고 있다. 그러니 주사도 어버버 하는 사이에 수의사 선생님이 콕하고 한 방 놔주면 끝이다. 의외로 간단하다.
그런데 이렇게 병원에서는 얌전한 녀석들이랑 동물병원만 갈라치면 한바탕 저질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캐리어에 죽어도 안 들어가겠다는 몸부림 때문이다.
사실 순둥이 첫째는 그냥 엉덩이만 밀어도 캐리어 안으로 잘 들어간다. 가끔 둘째가 들어가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그 고집이 그렇게 길게 가지는 않는다. 둘째가 세상에서 제일로 좋아하는 엄마가 좀만 달래면 금세 쏙 들어가는 것이 둘째다. 문제는 막내다. 죽어도 못 들어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아주 그냥 온몸으로 표현을 한다. 울고 불고 소리를 지르고, 네 발을 다 써가며 캐리어 입구를 꽉 잡고 버티고는 말 그래도 처절한 사투 한 번을 치러야 겨우 들어갈랑말랑이다.
이번 동물병원 나들이때도 우리 막내는 난리도 아니었다.
막내를 백허그하는 것처럼 뒤에서 안고 내 양 손으로는 막내 앞발을 잡고, 내 몸으로 막내를 살살 눌러가며 자세를 낮게 만들어서 캐리어에 밀어 넣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막내는 고개를 치켜들고는 캐리어 입구를 입으로 물고 버틴다. 혹시라도 다칠까 봐 어쩔 수 없이 내가 한 번 물러선다.
다시 시도. 고개를 어찌어찌 캐리어 안으로 넣었다 싶을 때는 뒷발로 캐리어 밀면서 버틴다. 이번에도 내가 진다. 또다시 시도. 이번에는 앞발로 버틴다. 발톱도 세우고, 온몸에 힘을 짱짱하게 주고 버티는 게 누가 보면 어디 납치라도 안 당하려고 몸부림치는 줄 알겠다. 그 조그만 게 힘은 어찌나 센 지. 거기에 유연하기까지 하니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버티면 캐리어로 밀어 넣을 방법이 없다.
몇 번을 하다가 이젠 나도 짜증이 나고, 오기가 생겨서는 부드럽게 달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어떻게든 힘으로 넣어보려는 오기만 남는다. 결국은 아내에게 혼이 났다. 애기 다치면 어쩔 거냐며 좀 살살하란다. 성질만 부리던 나를 비키게 하고는 결국 아내가 막내를 캐리어에 넣었다. 아내라고 쉽게 넣은 건 아니었지만 어찌어찌 어르고 달래면서 캐리어 속에 막내를 담았다.
어쩔 수 없이 캐리어에 들어간 막내는 성질이 났는지, 서럽게도 애옹애옹 운다. 말도 드럽게 안 듣는 막내가 야속해서 나도 씩씩거린다. 저놈의 성질머리가 나를 닮았나 싶기도 하다.
막내가 들어간 캐리어 주변에는 막내의 털이 우수수 빠져있다. 얼마나 들어가기 싫다고 몸부림을 쳤는지 딱 봐도 알 수 있다. 아직은 쌀쌀한 2월 날씨인데 내 이마에도 땀이 뻘뻘 나고 있다. 막내만큼이나 나에게도 치열한 사투였다. 물론 해결은 아내가 해줬지만.
거짓말 조금 보태서 동물병원 가서 주사 맞고 오는 시간이, 막내 녀석 캐리어 안 들어가겠다고 낑낑거리면서 나랑 싸운 시간보다 짧을 것 같다. 고집쟁이 자식.
고양이 관련 유튜브 영상에서 고양이가 캐리어에 들어가 이동하는데 익숙해지게 하는 교육을 하는 것을 봤다. 상황이 이 지경인 게, 막내 어릴 때 그런 교육도 시켜주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내 탓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다. 이번만큼은 막내가 너무했다.
내가 어디 데려가서 버리고 오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라고 병원 데려가는 건데도 저렇게 온 힘 다해 저항을 하고, 서러움 가득 담아 울어대는 걸 보면 야속할 뿐이다. 다시 한번 고양이들이랑 말이 통했음 얼마나 좋을까 싶은 순간이다. 다, 아빠랑 너랑 행복하게 오래 살려고 하는 거니까 쫌만 참으라고.
밀어 넣으려는 자와 버티는 자의 한바탕 싸움이 끝나고, 세 아들들 다 건강하다는 기분 좋은 소리를 듣고 온 식구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들어와 캐리어를 내려놓고 문을 열어주자 마자 세 녀석 다 밖으로 튀어나와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를 총총총 찾아간다. 소파 위, 이불속, 캣타워.
한 두 번 간 것도 아닌데, 이젠 동물병원 한 번씩 가는 거 좀 협조 좀 해주면 안 되겠니?
여기서 하나, 기가 막힌 건... 그렇게 캐리어에 안 들어가겠다 난리를 치던 막내가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은 알아서 캐리어에 들어가 본다는 것이다. 저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모르겠다. 날 괴롭히려고 그랬던 게 분명하다.
그나저나 이번 주에 파상풍 주사 맞으러 동물병원 한 번 더 가야 하는데, 어쩌나...
아직 나와 막내의 캐리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