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eIssue Feb 19. 2021

고양이는 고양이 편

그래... 여기서 나만 나쁜 놈이지.

  전에도 글에 담은 적이 있는 이야기지만 우리 막내와 두 형들은 좀처럼 친해지질 못하고 있다. 첫째와 둘째가 꼭 안고 자고 있는데, 막내는 멀찍이 혼자 웅크리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맘이 너무 짠하다. 터울 많은 형들을 두고 데려와서 막내를 외롭게 한 건 아닌지 미안할 때가 많다. 같이 산지도 5년째인데 도대체 언제 친해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소박한 소원 하나가 있다면 막내가 형들이랑 친해져서 셋이서 옹기종기 모여 자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는 것이다.



  


  아주 가끔씩 사진처럼 막내랑 첫째, 둘째가 가까이 붙어있는 모습이 보일 때면 사진 한 장 남겨보려고 허둥지둥 폰을 찾아 헤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며칠 전에도 막내는 깡패같이 형들에게 툭툭 시비를 걸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첫째 형에게 다가가서는 괜스레 눈을 부릅뜨고, 목덜미를 앙 깨물려고 하고 있었다. 똑같은 행동을 보이면 하악질이라도 하며 쫓아내는 둘째와 달리, 순둥이 첫째는 야무지게 반격도 못하고 낑알대고만 있었다.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하지 마!'라고 경고를 해도 소용은 없었다. 계속 그러고 있자 자리를 박차고 나서 다가가면 눈치 빠른 막내는 자길 혼내러 오는 줄 알아채고는 총총총총 도망을 가버렸다. 첫째와 좀 떨어졌다 싶어서 다시 자리에 앉으면 다시 첫째한테 다가가서 귀를 뒤로 젖히고, 반항적인 눈빛을 하고는 첫째를 괴롭혔다. 내 새끼지만 그렇게 밉상일 수가 있을까.

  하지 마라고 말하며 내가 일어나면 도망가고, 내가 다시 앉으면 와서 형을 괴롭히고. 그 콩트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됐다. 그러다 나도 순간 욱했나 보다. 도망가는 막내를 기어이 쫓아가서 잡아 세우고는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찰싹하고 때렸다.


  화가 났는지, 힘 조절이 안 됐나 보다. 막내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막내가 놀라 지르는 소리가 컸는지, 아내도 놀라 너무 아프게 때린 거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잔뜩 움츠려있는 막내의 모습에, 괜찮냐고 놀라 묻는 아내의 말에 나도 순간 당황스럽긴 했다. 그렇지만 매번 이렇게 형들을 괴롭히는 막내가 그땐 어찌나 얄밉던지, 이번만큼은 물러나지 않고 단단히 혼을 내야겠다 싶었다. 물론, 내 잔소리가 먹힐리는 없겠지만, 분위기로라도 막내에게 '너가 지금 잘못하고 있어.'를 똑똑히 알려주고 싶었다.




  잠깐이었지만,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막내를 째려고 보고 있는 나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쫄아있는 막내 사이에 갑자기 둘째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러고는 막내 앞에 늠름하게 자리를 잡더니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내게 시원하게 하악질을 날려버렸다. 

  '내 동생 괴롭히지 마!'라고 말하는 듯한 둘째의 용감한(?) 행동에 이어서 첫째도 막내 앞을 막아섰다. '내 동생 괴롭힌 게 너냐?" 라는 듯한 두 형들의 행동에 모든 일이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지금까지 모습을 보면 전혀 친하지 않은 둘째와 막내. 어떤 때는 막내가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냥냥 펀치를 날리고 하악질을 하는 둘째였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도 막내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첫째가 아닌다. 그런 두 녀석이 막내를 혼내고 있는 나를 막아서고 있다는 게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자기들을 자꾸 괴롭혀서 혼내고 있는 건데, 왜 첫째와 둘째는 여기서 막내 편을 들어주는 건지. 좀 지나니까 당황스러움에 서운함까지 더해졌다. 이게 뭐야. 나는 너희들 때문에 그런 건데. 그래... 그런 거구나... 이 집에서 나만 나쁜 놈이지... 

  뭐래도, 고양이는 고양이 편인가 보다.



  그래... 여기서 나만 나쁜 놈이지. 그래... 여기서 나만 나쁜 놈이지.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에 아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상황도 웃기고, 세 형제에 기막히게 당하고 풀이 죽어있는 내 모습도 웃기고, 은근히 동생을 챙기는 듯한 형들의 모습에 웃음이 난단다.

  '막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아팠나 보네. 쫌 이따가 잘 달래줘.', '우리 둘째가 평화주의자네, 우리 집에서 폭력은 절대 안 된데.', '저것들이 안 친한 척 연기한 거였네.' 등 아내는 아들들에게 서운해하는 날 달래려고 이런저런 말을 건네면서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의기양양해진 고양이 삼 형제와 나라 잃은 표정으로 기죽은 나, 그 모습에 계속 웃어대는 아내. 

  그래... 이 집에서 나만 나쁜 놈이지.




  난리 아닌 난리가 한바탕 끝나고,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소파에 앉아있는 내 옆으로 막내가 와서는 내 허벅지를 베고 눕는다. 콧잔등이를 쓰다듬으면서 '아빠가 미안해.' 라고 말하니까, 막내는 골골송을 부르면서 괜찮다고 온갖 애교를 부리다 잠에 들었다. 으이구, 고마운 내 새끼.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렀다. 막내가 둘째 옆을 그냥 살살 걸어가고 있는데 둘째가 막내에게 냥냥 펀치를 날리면서 눈을 흘긴다. 저... 뭐 하는 거지? 저럴 거면 왜 아까 막내 편을 들면서 나한테 뭐라고 한 건지.

  하여튼 성격 차-암 희한한 놈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냐옹 소리를 알아들으면 좋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