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당신의 반려동물이 한 가지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듣고 싶냐는 기발한 질문이 있었다. 엄마. 아빠. 사랑해. 보고 싶어. 배고파. 안아줘. 듣고 싶은 말이 워낙 많아 하나를 꼭 집어 뽑기 어려운 이 질문에 가장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은 대답은 '아파.'였다.
이야기라는 표현이 맞나? 어쨌든 이 짧은 이야기에 나도 크게 공감을 했었다. 아니 지금도 가슴 깊이 공감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건 괜찮으니까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이라도 좀 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양이들도 컨디션이 안 좋을 때가 있다. 기운도 없고, 하루 종일 축 늘어져있는 날이면 어디가 아픈가, 계속 저러면 병원을 가봐야 되나 하고 걱정이 든다. 그냥 피곤해서 그럴 수도, 기분이 좀 언짢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길이 자꾸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병원에 가도 문제다. 배가 아파요, 다리가 불편해요, 이런 소리를 못하다 보니 고양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면 피검사는 기본이라고 보면 된다. 끌려가다시피 병원에 가고, 몸에 바늘을 꽂는 일이 고양이들에게도 적잖은 스트레스일 게 뻔한데도 별 수 없다. 피도 뽑고, 엑스레이도 찍어서 의사 선생님한테 별 이상 없다는 말을 들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나마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걸 빨리 눈치라도 채고, 병원이라도 데려갔다 오면 좀 덜하다. 그마저도 늦게 발견하거나, 무심코 지나쳤다 나중에 알아챘을 때 죄책감은 말도 못 한다. 나는 그나마 양반이다. 자식사랑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아내는 며칠을 자책하고 미안해한다. 고양이들이 말을 할 줄 알았으면 알았으니까 그만 좀 미안해하라 할 정도로.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아프다고만 알려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둘째는 수다쟁이다. 형이랑 동생은 잘 안 그러는데 이 녀석은 꼭 다가서는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는 냐옹, 냐옹 울어댄다. 냐옹 거리는 둘째에게 배고파? 하고는 밥을 주면 잘 먹기도 하고, 안아줘? 하고는 무릎에 앉혀주면 폭 안겨서 한참을 앉아있기도 한다. 똑 부러진 성격으로 의사표현을 아주 잘하는 녀석이다.
그런데 한 번씩은 둘째가 냐옹, 냐옹 울어 밥을 줘봐도 밥을 먹지도 않고, 안아줘 봐도 불편하다는 듯 품을 떠나버릴 때가 있다.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줘도 하염없이 냐옹, 냐옹 거릴 뿐이다.
이럴 때면 걱정이 먼저 든다. 지금껏 잔병치레도 많았고, 토도 자주 하는 둘째다. 나이도 있는 묘르신이다 보니 건강 걱정이 안 될 수 없는 고양이. 아파서 냐옹, 냐옹 우는 건데, 애먼 밥만 찾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 말이다. 언뜻 보기에 다친 데는 없어 보이고, 몸 여기저기를 만져봐도 이상이 없어 보인다. 별 일 없겠지 싶으면서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그 냐옹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도 걱정이 덜하고, 둘째도 편할 텐데 말이다.
2년 전, 이사를 하고 막내가 한 동안 이불 밖을 안 나올 때가 있었다. 가만히 있는 형들 맨날 괴롭히고, 내 손만 보면 물려고 달려드는 깡패 녀석이 며칠을 그렇게 무서워하는 걸 보니 속이 상했다. 새로운 환경이 낯설어서 그러겠거니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뒷다리를 저는 것 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곧 괜찮아지겠지 했던 마음은, 혹시 이사하면서 캐리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딜 다쳤나 하는 걱정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 졸이는 것도 아니다 싶어 결국은 병원을 갔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한 말은 '너무 건강하다.', '다리도 전혀 이상한 데가 없다.', '걱정할 게 없다.'였다. 아픈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만은, 새집이 별로 맘에 안 들어서 그렇다고, 병원 갈 정도는 아니라고 아빠한테 말을 해줬으면 서로가 편하지 않았겠니 싶었다. 꼬리만 봐도 다 알 것 같은 고양이들인데도, 이런 약간의 의사소통의 문제점이 있다.
며칠 전 아침, 캣트리에 둘째가 올라가 앉아 온 몸으로 햇빛을 받으며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둘째는 어김없이 나를 보고 냐옹 하고 울었다. 나도 둘째에게 아침인사를 하러 둘째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냐옹 하고 소리를 내봤다. 그러자 둘째도 같이 냐옹하고 대답을 해줬다. 그렇게 몇 번 나와 둘째는 냐옹, 냐옹 대화를 했다.
- 왜, 아침부터 애를 놀리고 그래?
- 뭔 소리야? 기분 좋게 아침 인사하고 있는데.
- 여보, 목소리 지금 엄청 애 놀리는 것 같은 톤이거든.
둘째랑 냐옹, 냐옹 거리는 나한테 아내는 놀리고 있는 것 같다면 괜히 목소리로 트집을 잡았다.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둘째를 보고는 냐옹하는데 갑자기 둘째가 냥냥 펀치로 내 뺨을 퐁퐁하고 때리더니, 나한테 하악질을 했다. 너무 놀라서는 몸이 굳었다. 아들한테 한 방 맞아 서러운 눈으로 아내를 바라봤다. 아내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 거봐, 내가 놀리는 것 같은 목소리라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
자기 말 안 들어서 그런 거라고 아내는 날 놀렸다. 난 정말 놀린 게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놀리고 있던 걸까? 내가 뭔가 고양이 말로 둘째에게 심한 욕을 한걸까? 뭔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나 보다. 한참을 생각했다. 둘째의 냐옹과 나의 냐옹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아침부터 둘째에게 한 방 먹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프다는 신호만 알 수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 고양이들도 더 건강하고, 내 걱정도 덜하고 좋을 텐데.
아예 애들의 냐옹 소리를 알아들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그러면 기분 좋게 아침 인사하다가 난데없이 냥냥 펀치를 맞을 일도 없을 텐데. 얼마를 더 같이 있으면 아빠가 니들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