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서를 쓸 일이 있어서 한동안 찾지도 않던 USB를 꺼냈다. 휴대폰에도 인증서가 있어 웬만한 일은 폰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라 노트북에 USB를 꽂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별생각 없이 인증서를 찾고 나서는 USB에 무슨 파일들이 들어있었나 하고 쭉 훑어봤다.
이런 일도 내가 했나 싶은 예전 업무파일들 사이에 옛 사진들이 모여있는 파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말이 옛날이지 고작해야 3~4년 전 사진들. 아내와 난, 그땐 무슨 사진들을 찍었나 하고 사진을 하나씩 넘겨보았다. 그러던 차, 우리 부부가 소리를 지르게 만드는 사진 한 장이 노트북 화면에 보였다.
털이 삐죽삐죽하고, 눈 색깔도 나오지 않았던 막내의 아깽이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 보이는 막내는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작은 고양이었다.
지금은 형들보다 더 덩치가 좋고, 몸무게도 더 많이 나가는 막내. 우연히 길 가다 마주치는 산책하고 있는 아담한 크기의 개들에게 밀리지 않는 우람함을 가진 막내. 그렇게 뚠뚠해진 막내를 보면서 살다가 갑자기 아깽이 시절의 막내를 보게 되니 입 밖으로 탄성이 안 터져 나올 수가 없었다.
한 때는 나도 예쁜 식당이나 유명한 여행지에 가면 인생샷 한 장을 건져보려고 별 짓을 다 해봤던 것 같다. 나 이렇게 잘 살아요 하고 프로필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아등바등 사진 한 장 건져보려 하다가, 깨달은 것이 여타 다른 것도 그렇듯이 사진의 완성도 얼굴과 몸매라는 것이었다. 그간 내 사진들은 왜 그렇게 성에 차지 않았는지 그때 알았다.
씁쓸하지만 큰 깨달음(?)을 얻고는 인생샷에 미련 없이 지냈다. 폰에는 그 흔한 카메라 어플 하나 깔려있지도 않고, 어디에서 뭘 하더라도 사진을 크게 염두에 두고 다니진 않았다. 사진을 안 찍는다고 해서 내가 먹은 게 안 먹은 게 되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다녀온 것이 안 다녀온 것이 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아기자기한 사진을 매번 남기지 않고 지나온 시간들이 불편하지도 않았었다.
사진에 시큰둥했던 이런 마인드가 오래된 USB에서 우연히 찾은 아깽이 시절 막내의 사진을 보고 살짝 바뀌려고 한다.
사진을 너무 예쁜 모습을 남기는 데 의미를 두려고 했던 건 아닌가 싶다. 사진이란 게 어떤 모습, 어떤 장면이 됐던 훌쩍 지나버린 시간 뒤에 사진 속 시절을 기분 좋게 떠올릴게 할 수 있으면 되지 않나 싶다.
아무리 봐도 우연히 본 막내의 사진은 막내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지도 않았고, 구도가 이상적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아내와 나는 한참을 웃었고, 막내가 처음 우리 집에 오던 시절 이야기를 했고, 지금 막내와 첫째, 둘째 이야기를 했다.
그저 얼짱각도만 찾으려고 했던 때는 몰랐던 진짜 사진의 역할이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 고양이처럼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어디 있겠냐만은 어찌 내가 이 녀석들의 하루하루를 다 기억하겠는가. 어떤 모습이 됐든 무심코 막 찍은 사진들이 나중에 나중에, 웃음을 터트리고 그때의 아련함을 가져다 줄지 모르니까 귀찮더라도 사진을 더 많이 남겨봐야겠다. 그래야 우리 아들들의 다양한 모습을 또 찾아볼 수 있을 테니까. 깜빡할지도 모르는 이 놈들의 매력을 자세히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와는 다르게, 우리 고양이들은 어떻게 찍어도 매력 있게 나는 외모라서 사진 찍는 맛도, 프로필에 올려서 자랑할 맛도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