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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Jan 23. 2021

코로나가 우리 고양이에게 미친 영향

어른 냥이들의 어린양

  애옹애옹. 막내가 울면서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린다. 거실에서 한 번 애옹. 이번에는 부엌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애옹.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또 한 번 애옹. 마주친 막내의 눈에는 졸음이 그득그득 차있다. 막내는 지금 배가 고파서도, 심심해서도 저렇게 우는 것이 아니다. 잠이 와서 저러는 거다.

  왜 엄마들은 아가들 우는 소리만 들어도,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지, 밥을 줘야 하는지, 안아달라는 것인지 다 안다고 하지 않는가. 다른 건 몰라도 막내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잘 아는 나다. 막내는 잠이 와서 저리 칭얼칭얼 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더니, 언제부턴가 막내는 잠이 오면은 꼭 저랬다. 

  우는 막내를 안아주고 놀아주거나, 소파나 침대 한편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면 곧 조용히 잠에 든다. 혼자 자기 심심하다고 재워달라고 그렇게도 울었나 보다. 자다가도 누가 다가가면 슬며시 자리를 옮기고, 형들보다 독립적이던 막내가 근래 어린양이 많이도 늘었다. 아마도 최근 엄마, 아빠랑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지독한 코로나는 지난 1년간 많은 것들을 바꿔놨다. 

  패션 아이템인 줄만 알았던 마스크는 이제 짚 앞에 분리수거하러 갈 때도 챙기는 필수품이 됐고, 화장실 수납장에 자리만 차지하던 비누들은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집에 있는 시간이 엄청나게 늘었다. 원격으로 일처리 하는 시간이 늘었고, 진짜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은 하지 않았다. 거기에 아내가 임신까지 한 터라 나와 아내는 더더욱 나가기가 조심스러웠다. 가까운 곳 여행은 고사하고 마치 집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것 마냥 집에 들러붙어 있었다.

  계속되는 집콕 생활에서 변화는 뜬금없는 곳에서 나타났다. 바로 우리 고양이들이었다. 이것저것 다 해주는 아빠가 항상 옆에 있다 보니 야금야금 어린양이 엄청 늘어버린 것이다.





  둘째는 이제 아예 자기만의 지정석이 생겼다. 둘째의 지정석은 양반다리를 한 나나 아내의 다리 위이다.

  소파에 앉아있으면 둘째가 와서 냐옹냐옹거린다. 다리를 양반 다리로 바꿔달라는 뜻이다. 양반다리를 해주면 눈이 반짝해져서는 포개진 다리 위로 올라와서는 꼼지락꼼지락 자리를 잡는다. 불편해 보이는 그 작은 공간에서 둘째는 일어날 생각이 없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가 저려서 하는 수 없이 둘째를 안아 들어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럴 때면 어찌나 서운하 눈으로 날 쳐다보는지,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다. 그렇게 좀 편하게 있다 보면 또 다가와서는 양반다리를 해달라고 애교를 부려댄다.


  배가 부른 아내에게도 양반 다리를 요구하고는 떡하니 그 위에 올라가 있을 때도 있다. 안 그래도 몸 무거우니까 둘째한테 양반다리 해주지 말라해도 아내는 내 말을 안 듣는다. 아내는 언제 또 이렇게 애들이랑 시간 보낼 때가 있겠냐며 지금이라도 맘껏 해주고 싶단다.

  얄미워서 손가락으로 이마를 콩하고 찍으면, 새초롬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코는 진한 핑크색이 되어가지고는. 귀여우니까 하는 수 없이 넘어간다. 매번을.



  첫째의 어린양은 밥을 안 먹는 것이다. 정확히는 밥을 안 먹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밥을 안 먹는 것이다.

  원래는 출근 전에 한 번, 퇴근 후에 한 번씩 애들 밥을 챙겼다. 밥시간이 되면 냠냠 잘도 먹던 밥이었는데, 첫째는 이젠 제시간에 주는 밥에는 시큰둥하다. 굳이 그 시간에만 밥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매일 집에 있는 엄마, 아빠에게 아무 때고 자기가 밥을 먹고 싶을 때 밥 달라고 애교를 부리면 밥을 준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물 한 잔 마시려 부엌을 향하면, 첫째가 쪼르륵 앞서가서는 사료랑 캔을 꺼내는 싱크대 앞에 자리를 잡고는 어서 여길 열어달라고 무언의 시위를 한다. 안돼! 조금 있다가 제시간에 먹어하고 우선은 무시해본다. 그러면 나한테 머리를 비비면서 애교를 왕창 부린다. 그러다 보면 밥시간 좀 지켜보려는 마음은 금세 무너져버린다. 애교를 어찌나 잘 부리는지, 어느새 밥이고 간식이고 다 내주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처음엔 몰랐는데, 어느 순간 보니 행동 하나하나가 애교이고 어린양이었다. 밥 달라고 첫째의 애교, 무릎에 앉게 해 달라는 둘째의 애교, 재워달라는 셋째의 애교. 변화된 생활패턴에 이렇게 빨리 적응해버리는 거 보면  똑똑한 건지,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게 하니 사악한 건지. 그래도 저리 애교를 부리니 기분은 좋기도 하다.

  아내의 말처럼 또 언제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해보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사라져야 하는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한편으로는 고양이들과 함께 할 시간을 만들어준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 불편한데, 그래도 고양이들에게라도 좋은 점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한편으론 걱정이다. 당장 다음 달이면 이젠 출근을 해야 할텐데, 또 4월이면 아기도 태어날 텐데, 그때가 돼서 우리 고양이들이 왜 예전처럼 같이 있어주지 않냐고 서운해하지는 않을는지. 그래도 이 어린양쟁이들이 그때가 되면 잘 이해해주겠지. 지금은 같이 있는 시간을 맘껏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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